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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단식 36일째 설조스님을 뵙고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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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단식 36일째 설조스님을 뵙고 와서

정운현 기자 onlinenews@nate.com 입력 2018/07/25 09:56 수정 2018.07.25 10:18

설조스님이 불교계 정화를 요구하며 36일째 단식하고 계시는 곳. 바로 옆에 조계사가 있다.

한낮의 무더위를 뚫고 잠시 외출했다. 이 더위에 25일 로 36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계시는 설조스님을 찾아뵙고자 해서였다. 일전에 MBC ‘피디수첩’을 통해 불교계 몇몇 인사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보도된 바 있다. 현 조계종 총무원장, 해인사 주지 등 소위 힘 있고 돈 있는 권승(權僧)들이 문제다. 이전에도 늘 이런 인물들이 불교계를 욕 먹였다.

언론의 의혹제기에 대해 조계종 측은 진상조사 후 자체 처리하겠다고 하는 모양인데 부지하세월에다 자기들 수장의 문제를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당수의 사회 여론은 청와대나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 등이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불교계 내에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들의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자칫 불교계 탄압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교계 역시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원인 만큼 실정법에 저촉된 부분은 정부가 나서서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로선, 또 결과론적으로는 정부는 ‘오불관언’ 식이다.

3호선 안국역에 내렸다. 안국동 로터리를 건너 조계사 쪽으로 향하자 거기서부터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어 단식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불과 20여 미터 거리에 있는 갑신정변의 현장, 옛 우정총국 건물 바로 뒤에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식장 주변에 나무가 있어서 그늘 속이었다.

길가의 돌계단을 올라가 단식장 안쪽 천막에 계시는 설조스님께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어 말 그대로 “스님께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88세의 상노인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데 현 사태의 근원적 해결 말고는 무슨 말이 소용이 있겠는가?

절을 한 후 나는 스님 가까이 가서 꿇어앉았다. 그리고는 설조스님의 손을 한번 잡아보았다. 스님도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올해 88세, 영락없이 노인의 손 그것이었다. 마음이 아파오고 왠지 내가 죄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잠깐 뵌 설조스님은 그냥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다. 수염이 덥수룩한, 인자한 모습의 그런 할아버지. 이런 분이 한 달 넘게 단식투쟁을 하고 계시다.

▲ 스님의 손을 잡고서도 나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었다. 죄스러웠다. (사진: 최명철 )

뜻밖에 반가운 얼굴들을 단식장에서 여럿 만났다. 현장에서 만난 순으로 적어보면 한 때 서울신문에서 같이 근무했던 최명철 선생, 불교개혁에 앞장서온 김영국 법사,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 선생(현 <사상계> 대표), 만화가 박재동 화백,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요즘은 불교계 정화에 힘을 보태고 있는 신학림 위원장 등.

늘 해온 생각이지만 현장에 가면 약속 없이 가도 동지들은 저절로 만나지더라는 것이다. 오늘도 또 그랬다. 특히 최명철 선생과 김영국 법사께서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스님을 보살펴 드리고 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설조스님 단식장에서 불과 50여 미터 거리에 조계사 대웅전이 있다. 그곳 스님들의 깊은 속마음까지야 알 순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때 되면 법당에 모여서 염불하고 부처님께 공양 올릴 것이다. 입으로는 대자대비 부처님, 나무아미타불을 외면서. 대체 그 입에서 부처님 얘기가 나오며 밥이 넘어가는가? 또 잠이 자지는가? 나 같은 심정적 불교도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노심초사하는데. 참으로 나쁘고 잔인한 사람들이다.

내가 빌고 비는 것은 오직 하나다. 비보(悲報)가 전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부디 그런 일이 없이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

▲사진: 왼쪽부터 정운영, 최명철 선생, 정영철 선생, 장호권 선생, 박재동 화백, 신학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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