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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돈 ‘도덕주의’ 의 서글픈 역설..
오피니언

정치인의 돈 ‘도덕주의’ 의 서글픈 역설

온라인뉴스 기자 onlinenews@nate.com 입력 2018/07/27 00:31 수정 2018.07.31 16:04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평생을 약한 자들 편에 서 싸워왔던 노 의원의 급작스런 죽음은 너무나도 참담하고 황망한 일이어서 낯설기까지 하다.

노 의원은 드루킹이 이끌었던 경공모로부터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정치자금 4,000만원을 받았지만 어떤 부정한 청탁도 없었다고 유서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 후원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며 깊은 후회를 드러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 이를 부인했던 노 의원은 적법하지 않게 돈을 받고, 피의사실을 제 때 시인하지도 못한 것을 너무나도 수치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최근 TV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왔던 노 의원의 얼굴은 무언가 평소와 달라 보였다. 무표정에 특유의 에너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느낌은 괜한 게 아니었다.

노 의원은 소위 ‘진보정치의 스타’였다. 그의 뛰어난 해학과 논리는 진보정치가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이 일관되게 보여 온 정의와 청렴 이미지도 한몫했다. 그는 이런 트레이드마크에 충실한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 노 의원에게 드루킹 정치자금 문제는 자신의 도덕적 기반을 뿌리 채 흔드는 뼈저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단죄하고 처벌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도덕적 결벽증에서 비롯된 선택을 통해 노회찬 개인은 구차하지 않게 삶을 정리했을지 몰라도 한국사회는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제대로 된 정치인은 절로 탄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오랜 시간 수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성원이 뒷받침돼야만 썩 괜찮은 정치인 한 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리석은 선택과 부끄러운 판단을 한다. 정말 불법청탁이 없었다면 그것을 적극 소명하고 정치자금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면 될 일이었다. 잘못은 사과하고 최악의 경우 정계를 은퇴하면 그만이었다. 정치가 아니더라도 그가 한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너무나 쉽게 모든 걸 포기하고 몸을 던졌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지적했듯 “우리가 가장 손쉽게 속일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기합리화에 너무나도 능하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살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런 인간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른바 ‘태도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전두환의 뻔뻔함과 이명박의 끝 모르는 탐욕, 그리고 트럼프를 둘러싼 각종 추문에도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강력한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범생 이미지의 정치인들은 작은 스캔들 하나에도 치명상을 입는다.

뻔뻔해서는 안되겠지만 노회찬이 아주 조금이나마 자기합리화를 할 줄 알았다면 이런 비극적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도덕’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괴로워하는 정치인들은 대개 ‘보다 더’ 도덕적인 인물들이다. 정작 비도덕적인 정치인들은 아예 이를 무시하거나 그냥 밟고 지나간다. 이런 ‘도덕주의의 역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노회찬의 비보를 접하면서 ‘의롭지 못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한국 정치판에서 ‘수오지심’을 찾아보기 힘들어진지는 아주 오래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노회찬이 몸을 던져 동료 정치인들에게 남기려 했던 마지막 당부이자 유언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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