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최저임금이 올해(7530원)보다 10.9%(820원) 오른 시급 835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용자단체와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결정한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노사의 반발이 크다.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노사의 불만이 표출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노동조합의 반발이 컸으나, 최근에는 사용자측의 반대가 완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의 인상 폭이 과거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금불평등 완화와 저임금노동자의 최소 생활 보장을 위해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하였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지난 19대 대선 당시 5개 정당 후보들이 모두 약속한 것이다. 유력 대선후보 모두 1만원을 공약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임금은 노사 간 자율 협상으로 결정되지만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2%로 턱없이 낮아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은 노사협상이 아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저임금노동자들의 임금을 사실상 결정하는 최저임금은 그동안 낮게 인상되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은 1999년에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1525원이었고, 2만 달러를 넘게 된 2010년에도 4110원에 불과했다. 노동자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00년까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가 2016년에야 50.3%까지 올라왔다.
그 결과 한국의 저임금노동자(전체 노동자 임금 중위값의 3분의 2 미만인 경우)의 비중은 23.7%로 경제협력개발(OECD)국가 중 아일랜드와 미국에 이어 셋째로 높다. 전체 노동자 중 4명 중 1명꼴이 저임금노동자들이다. 통계청의 2016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 1968만 7000명 중 월수입 200만원 미만 근로자는 45.2%였다. 월수입 100만원 미만 근로자는 11.4%, 100만∼200만원은 33.8%로 나타났다. 이렇듯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저임금노동자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 정치적인 합의였고, 시대정신이었다. 그런데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정책으로 실행되자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 갈등은 복잡한 양상으로 변화하였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로 인상되면서, 최저임금 인상은 엉뚱하게도 경제적 취약계층인 최저임금을 지불해야 할 영세자영업자와 한 달 꼬박 일해도 150만원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노동자인 ‘을과 을’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턱없이 낮았던 최저임금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 대책을 선제적으로 내놓지 못하여 을과 을의 갈등은 더욱 확대되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경기불황에 따른 매출감소와 연동되면서 심화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직원 5명 미만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숙박·음식점업 소상공인들의 사업체당 평균 영업이익은 1845만원(2015년 기준)으로 전국의 동종업계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평균임금 2160만원보다 14.8%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바 청년, 여성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삶도 개선해야 하지만 우리도 문 닫기 일보 직전이라는 호소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구조적인 문제는 자영업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높아 경쟁력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25.5%(무급 가족종사자 포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8%보다 훨씬 높다. 자영업 중 가장 많은 것이 소규모 식당이고 치킨집, 편의점, 빵집 등의 프랜차이즈 업종이다. 음식점 업으로 비교하면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미국은 0.6개인 데 비해 한국은 10.8개이다. 편의점 수도 마찬가지다.
인구 비례로 한국이 일본에 비해 두 배가 많다. 음식업과 편의점의 과다 경쟁은 자영업자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결국에는 폐업으로 내 몬다. 이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연착륙 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갈등 해결을 위한 노사정간 인식 전환과 대타협이 요구된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소생계비를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에만 의존하면 소상공인이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같은 직접적 분배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상공인들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당연히 힘들지만, 진짜 문제는 점주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돈을 벌 수 없는 편의점 프랜차이즈 산업의 수탈구조라고 말한다.
과도한 임대료 인상이나 원·하청 간 불공정 거래,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수수료·납품단가 폭리 같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사회적 지혜와 합의이다. ‘을과 을’의 갈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갑의 횡포를 막아내기 위한 법을 마련하고 취약계층도 살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마련하고 확충해야 한다. ‘돈보다 사람’이 귀한 사회가 진정 선진 국가이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우리 모두 조금씩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나누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