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기무사가 ‘해편’(解編?)되고, ‘국방개혁 2.0’이 추진되고 있다. 이 중에는 당연히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개혁하느냐”를 질문해보면 우려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군을 개혁하는 목적은 외침으로부터 적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 즉 강군육성인데, 개혁의 방향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있고, 군 간부들은 자존감을 상실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점점 군은 신뢰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위협은 전혀 사라지고 있지 않은데, 군의 대비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대답만 해) 식으로 군이 무시되고,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당하는 것” 같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강한 군대는 국가의 상징
누군들 강군(强軍)을 바라지 않을까? 가끔 말썽을 피우더라도 적에게는 전율(戰慄)의 대상이 되어 곳곳의 전쟁에서 무적의 신화를 쓰는 강력한 군대가 좋지 않은가? 그러나 현 정부는 강군보다는 말 잘 듣는 군인, 조용한 군대를 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순종하는 군대는 우선은 편하지만, 적이 쳐들어오면 제일먼저 도망칠 것이고, 그러면 정부의 요인들은 물론 국민들이 직접 적의 총포를 상대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면 온순한 군대만 선호하다가 계속 외침을 당하고, 나라를 짓밟히지 않았는가? 일부 사람들은 적과 내통을 하고 있어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로지 군대와 국가만 믿고 있는 우리 같은 민초는 강군이 없으면 너무 불안하다. 옷가지 없이 엄동설한에 내몰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군이요! 이제 안심하시오.”포로의 절망 속에 있는데, 어디에서 우리 국군이 이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심정이 될까? 울컥하지 않겠는가?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부르고 싶지 않겠는가? 6.25전쟁 때 북한군에게 온갖 고초를 겪던 우리 선조들, 2011년 1월 21일 삼호주얼리호에 피납되었던 우리 선원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국가에 얼마나 감사했겠는가? 그러할 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에서 우리의 대부분은 포로로 잡혔든, 적지에 고립되었든, 납치되었든 국군에 의하여 구출되지 못하였고, 대부분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은 채 각자도생에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국가는 겉으로는 국가였지만, 실제는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율곡선생이 임진왜란 전에 통탄했던 “기국비국(其國非國)”이었다. 겨우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 가는데, 또 과거 역사의 ‘나라이나 나라아닌’ 상황으로 되돌아 가려는가?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 중에서 단 한가지만을 남겨야 한다면 그것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국가는 그 기원 자체가 다수가 힘을 합쳐서 방어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대국일수록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영세중립국으로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스위스도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군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수한 외침을 받았고, 국권을 수차례 빼앗겼으며, 영토를 축소시켜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군을 일단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사랑하면서 매를 들어야 한다. 그냥 개혁과 변화를 강요하고, 군의 실정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정말 특이한 국방
북한은 2017년 9월 3일 수소폭탄의 실험에 성공하였고, 11월 28일에는 대륙간탄도탄(ICBM)에 준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능력을 과시한 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북한은 현재 30개 이상 60개 정도에 이르는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계속하여 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북한은 이미 1,000기 정도의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를 탑재하여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 『2016 국방백서』에 의하면 북한은 병력 120만명, 전차 4,300대, 전투함정 430척, 잠수함 70여척, 전투기 810대 등으로 양적으로 볼 때 한국군의 2배 이상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20만명의 특수전 부대들도 유사시 한국 후방으로 침투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정부의 책임있는 분들에게 묻고자 한다. 이러한 북한의 핵 그리고 재래식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어떻게 보호하겠다는 복안인가? 정말 대화만 하면 이러한 모든 위협이 사라진다는 것인가?
일부에서 제시하는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결정적인 조치는 하나도 취하지 않았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계속 생산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국과 정전선언을 추진하여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의 철수를 유도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군을 감축하고, 전방의 경계태세를 완화시키고 있다. “국방개혁 2.0”은 몇 달을 재검토하여 공세적인 작전개념을 제외하였고, 북핵에 대한 3축체계는 유지한다면서 내용상에서는 별로 강조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한미연합사를 해체하여 한국군이 한미연합사령관을 한다는 데 들떠있다. 또다시 묻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떤 역사책이나 전쟁사책에서도 현재 우리 군대가 하는 방식으로 국가안보를 달성해온 사례가 없다.
정치권에서 군의 전문영역 존중해야
더욱 심각한 것은 군인 특히 군 수뇌부에 대하여 정치권에서 갖는 절대적인 불신이다. 국방부장관보다는 외교안보 특보의 말을 더욱 신뢰하고, 장군들의 말은 아예 경청하지도 않으며, 장군들의 숫자 감축이 국방개혁의 주안이다. 군 내부에서 지금까지 전통을 이뤄 적용되고 있었던 모든 규칙이나 관행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군은 정치권에서 제시하는 방향대로 변화해야하는 객체이지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 현 정부를 책임지는 분들에게 묻고자 한다. 우리 군대가 외인부대인가? 일부 주변사람들의 견해가 군인들의 견해보다 더욱 타당하다고 확신하는가? 군의 군기, 사기, 단결을 이렇게 고려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가?
기무사에 관하여 정치권에서는 일사천리로 결론을 내리고, 일사불란하게 해편을 결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아마 잘 조치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무사 문제의 본질은 야전의 군인들에게 먼저 물어봤어야 했었다. 기무사가 어떤 활동을 해왔고, 어떻게 지휘관이나 간부에게 영향을 끼치며, 어떻게 군의 사기, 군기, 단결을 저해해왔는지를 그들에게 내밀하게 물어봐서 결정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결론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해편’이라면서 거창하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무사를 살려서 정치권에서 계속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군인들을 존중하거나 군인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군을 개혁해야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군의 경영에서 효율성을 강화해야할 것이 많고, 군대 문화도 더욱 민주화되어야 하며, 전투지향적인 군사문화를 확충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를 위한 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 부쳐서는 곤란하다. 국방장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장군들의 격을 낮추고, 간부들의 사기를 위축하면서 정치권에서 생각하는 방향이 최선이라고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로 개혁해 나가야지, 돈 적게 쓰고, 고분고분하고, 사고내지 않는 군대로 만들어가서는 곤란하다. 다소 미운 점이 있더라도 군대를 잘 다독거리면서 스스로 강군으로 거듭나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서양에서도 군대에 대한 정치권의 통제는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였다. 외부의 침략에 대해서는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야했지만, 그렇게 강력한 군대를 육성해두면 정치적 영향력도 커져서 개입할 수 있다고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키는 자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말이 민군관계 토론장에서의 핵심적인 주제였다. 다만, 이에 대하여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인 헌팅톤(Samuel P. Huntington)은 “객관적 문민통제”(objective civilian control)라는 개념을 통하여 정치권에서는 군대의 전문성(professionalism)을 인정하고, 그 대신에 군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하게 천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였고, 따라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개념 하에 정치와 군대가 조화롭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대한민국 국군은 과거의 정치개입을 반성하면서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그 방향으로 확실하게 변모하였다. 지금 군의 고급장교 중에서 과거와 같은 쿠데타를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고급지휘관이 그러한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중간 또는 하급제대에서 따르지 않도록 교육되어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군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군의 인사나 진급, 세부적인 전력증강 방향, 예산 사용의 우선순위, 군대의 문화 등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간섭하는 정도가 늘어나고 있다. 정치권에서 훈련축소, 병력감축, 복무기간 단축 등의 조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군은 시행만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군은 오히려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적에 대해서는 싸워 이기지 못하면서 정치권의 눈치대로 움직이는 로봇 군대가 될 것이다.
강군육성에 매진할 때
이제 정치권은 군에 대한 적대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군대의 헌신을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불신하거나 폄하에서는 곤란하다. 대장을 무시하면 중장 이하 모든 군인들의 격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국방장관과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격도 함께 떨어진다. 반면에 하사와 소위를 존중하면 주임원사와 대장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고, 당연히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위상도 높아진다. 한국의 헌법 제66조 2항에서는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하에 강한 군대가 없을 경우 대통령이 어떻게 위 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인가?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위한 외교적 노력은 전개하되 그것이 확실하게 구현될 때까지는 군대에게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확실히 갖추도록 지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군대는 “홍길동전”과 같은 어려움에 빠져 있다. 북핵 위협을 드러내놓고 대비하면 뭔가 잘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방부와 합참을 비롯한 우리 군대에서는 핵무기를 핵무기라고 부르지 못하고, 비대칭무기, 대량살상무기라고 한다. 가급적이면 핵위협과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군대는 만일의 사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에게 한 가지 실제적인 주문을 하자면 “싸워 이길 수 있는 지휘관”선발에 노력해달라는 부탁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보직과 진급을 직접 결정하기보다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전문성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을 선발하여 요직을 담당시키고, 진급을 시키라는 지침을 하달했으면 한다. 그리고 실제 누구를 선발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국방부장관에게 위임했으면 한다. 정치권에서 선호하는 인물들의 상당수는 처세에 밝아서 대부분 싸워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참모들이나 신원조회 전문가들이 어떻게 국방부장관보다 선발을 잘 할 수 있겠는가? 보직과 진급심사를 믿지 못할 국방장관이면 아예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군의 전문성도 보장되고,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로도 발전해 나갈 것이다. 평소 행동이 거친 강한 부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이다.
<북핵 전문가 4인 공동기고>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원장 /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박휘락·김태우·송대성·신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