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결혼하면서 혼전 출산 사실을 숨겼더라도, 성폭행 등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출산한 것이라면 혼인 취소 사유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민법은 이혼과 별개로 결혼 전에 중대한 사유가 있었다면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합통신넷=김종태 기자]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남편 A씨가 베트남 국적 부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22살이던 베트남 새댁 A 씨는 2012년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나이가 15살이나 많은 지적장애 남편과 정을 쌓을 틈도 없이, 악몽에 시달리다 몇 달 만에 집을 나와야 했다. 시아버지가 자신을 2차례나 성폭행했는데도 남편은 물론 시댁식구들이 자신보다는 시아버지를 감싸고 돌았기 때문다.
시아버지는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형이 확정됐지만 재판과정에서 A 씨가 13살 때 성폭행을 당해 출산했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시련은 이어졌다. 결혼 전 이를 몰랐던 남편은 A 씨와 결혼 중개업자에게 혼인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1·2심은 혼인을 취소하고 수백만 원의 위자료까지 지급하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1·2심 재판부는 A 씨가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혼인 결정의 중대한 사유인 출산 경험을 숨긴 것인 만큼, 민법이 혼인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사기에 의한 결혼'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 씨의 출산이 성폭행으로 인한 피해였고, 또 출산 이후 가해 남성이 자녀를 데려가 8년 동안이나 교류가 없었던 점에 주목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범죄 피해였던 만큼,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고, 이를 결혼 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혼인을 취소할 수는 없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혼인 취소와는 별개로 A 씨와 남편은 각각 이혼과 함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