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하기가 어려운 것은
충신(忠臣-법술지사(法術之士)의 길은 어렵고 험난하다. 그들은 총명한 재능과 현명한 인품으로 한 나라의 통치자를 보필하지만 그 통치자의 총신들이 총명하고 현명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통치자가 총신들과 법술지사의 등용여부를 의논하는 것은 사실상 바보와 함께 천재를 논하고 부덕한 자와 함께 덕 있는 자를 논하는 격이니, 이는 다소 우스운듯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근거로 삼으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송두리째 뒤바뀐다. 총명함은 우둔함으로, 덕스러움은 부덕함으로 인식된다. 좌우의 총신들과 친밀한 접촉을 유지하면서 통치자의 기준도 그렇게 변해버리므로 법술지사(충신)는 당연히 등용되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자를, 부덕한 자가 덕 있는 자를 평가하는 상황에 처하면 법술지사는 마음의 균형을 잃는다. 아울러 자신이 그런 자들에게 부당하게 인식되고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자로 취급된다는 사실에 치욕을 느낀다. 할 수 없이 그는 통치자를 멀리하고 등용되지 못한다.
이것은 참으로 첨예한 모순이다. 이것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물론 지혜로운 자, 덕 있는 자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 부덕한 자가 잠자코 자리를 넘겨줄 리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리석고 부덕하면서도 자신들이 법술지사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통치자의 능력밖에 없다. 통치자는 자신의 견해와 기준을 바탕으로 국가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며,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는 한편 다른 사람에게 기만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러나 통치자가 이렇게 하지 못할 때 법술지사는 통치자 주변의 총신들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물론 총신들에게 뇌물을 풀어 통치자에게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해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법술이 변질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뇌물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총신들은 그에 대한 비방을 떠들어댈 것이다. 그 결과, 법술지사는 등용되기는커녕 일신의 화(禍) 조차 피하기 힘들 것이다.
거듭된 말이나 간신이 권력을 쥐고 흔들면 국가와 통치자의 이익과 손해의 관계가 완전히 전도(顚倒)된다. 좋은 정책을 세우고 법을 엄격하게 집행한 충신이 상을 받기는커녕 빈곤에 빠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화를 당한다. 반대로 통치자를 기만하고 뇌물을 뿌려 권력을 매수한 간신이 명예와 부를 얻고 애비와 자식이 함께 통치자의 은덕을 누리는 일이 벌어진다.
나라와 통치자를 위해 일한 충신은 손해를 보고 자신만을 위해 일한 간신이 이익을 보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이해(利害)관념까지 바꾼다. 충성을 바치고 법을 준수해도 이익은커녕 손해만 본다면 누군들 방향을 바꾸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음모를 꾸미면 자신도 음모를 꾸미고, 다른 사람이 간악한 짓을 하면 자신도 간악한 짓을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직한 품행과 나라의 법은 송두리째 폐기되고 말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에는 규율과 도의가 실종되고 사람들은 더 이상 나라와 통치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게 된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일은 뭐든지 하면서도 나라와 통치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풍토가 일반화된다. 통치자가 치켜든 나라의 기치아래 이기적인 자들과 간신의 도당만이 우굴 대는 꼴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럴 때 통치자에게 충성하고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신하는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하기 어렵다. 세속에 영합해 이익을 쫓길 꺼려하는 그들을 간신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자칫 자신들의 악행을 저지하고 이익에 손해를 끼칠까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치자는 마치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간신의 조종을 받는 한심한 처지가 되니 간신은 기고만장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처리하여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적폐의 원흉이요 국정농단의 주범인 이명박과 박근혜가 간신적자(奸臣賊子)들과 함께 한 분탕질은 만고역적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