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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상불유시(賞不逾時)..
오피니언

[이정랑의 고전소통] 상불유시(賞不逾時)

이정랑 기자 입력 2018/09/17 09:40 수정 2018.09.18 12:44

상을 줄 때는 때를 넘기지 않는다. (上)

상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주어서 백성들이 빨리 선행의 이로움을 알도록 해야 한다.

▲ 이정랑 중국고전 연구가

상을 주어서 부하를 장려하는 것은 역대 병가들이 군을 다스리는 중요한 제도로 인정해왔다. 상의 목적은 투지를 북돋우고 사기를 고무시키는 데 있다. 적절히 활용해서 장점을 살리면 장수와 병사들의 적극성을 자극해 부대의 전투력을 높일 수 있다.

삼국시대 조조는 상벌 제도를 잘 활용해서 군을 효율적으로 다스린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적을 공격해서 노획한 재물들을 모두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큰 공을 세워 마땅히 상을 받아야 할 병사들에 대해서는 천금이라도 아끼지 않았다. 공도 세우지 않고 상을 받으려는 망상을 가진 자들에게는 ‘국물도 못 돌아가게’ 했다. 그래서 장수와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공을 세우려 용감하게 분전했다. 특히 조조는 상을 주고 좋은 의견을 수렴하는 데 능했고 또 공평무사했다.

207년, 조조는 원소를 물리친 후 북으로 오환(烏桓)과 요동을 정벌할 준비를 갖추었다. 정책을 결정할 때 일부 장수들이 너무 깊이 진군해 들어가면 고립되어 불리할 것이라며 출병에 반대했다. 그러나 조조는 반대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벌은 단행되었다. 도중에 적의 초소가 곳곳에서 길을 가로 막고 있었고, 비가 계속 내려 진흙탕 속을 행군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길을 바꾸어 산을 뚫고 계곡을 메우는 식의 고생스러운 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물과 양식이 끊기는 바람에 군마 수천 필을 잡아 식량으로 충당해야 했다. 행군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환 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2백여 리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조조의 군대는 적의 주력부대와 잡자기 맞닥뜨렸다.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조조는 몸소 진의 선두에 서서병사들을 독려하여 일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개선하여 돌아온 후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조조는 이번 북벌에 반대했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당시 조조에게 반대 의견을 말했던 장수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조조 앞에 무릎을 끓고 벌이 내려지길 기다렸다. 그러나 조조는 껄껄 웃으며 그들을 벌주기는커녕 각자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번 북벌은 하마터면 전군이 전멸할 뻔했으나 다행히 모험을 감행한 것이 성공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당초 그대들의 의견이 정확했다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조조의 논공행상은 확실히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진 독특한 것으로, 상을 받는 자로서 감사를 느끼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로부터 부하들은 적극적으로 의견과 계략을 건의했다.

영웅주의적 명예감과 개인주의적 욕심은 흔히 한마음의 바닥에 동시에 깊이 숨겨져 있다. 적절한 상은 명예감을 자극하는 데 있지 탐욕의 씨앗을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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