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진주=정병기 기자]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진주시 옥봉동 뒤벼리 입구에 세워져 있던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은 민족반역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고 10일 밝혔다.
지회는 보도 자료를 통해 “뒤벼리는 진주8경의 하나로 남강의 명승지이다. 그러나 절벽에 음각된 민족반역자들의 이름을 지울 것인지, 역사로 보존할 것인지 문제는 해방이후 지속적인 논란거리였다”며, “이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 진주시민들은 ‘뒤벼리 민족반역자 이름 처리를 바라는 시민의 모임(이하 시민모임)’을 만들었다. 시민모임은 논란이 된 민족반역자들의 이름들을 처리하기에 앞서 그들의 악행을 담은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은 민족반역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안내판을 1999년 12월 28일 뒤벼리 절벽 앞에 시민들의 힘으로 세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회는“이후 뒤벼리의 음각된 이름들은 모두 가려져서 지금은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민족반역자들의 악행을 알리기 위해서 시민들이 세운 “민족반역자 안내판”의 고난은 시민들의 기억에서 절벽의 이름들이 잊혀진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밝히고”길가에 세워져서 신호 대기하는 차량에서 볼 수 있었던 안내판은 누군가에 의해서 뽑혀졌고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었었다. 누가 왜 “민족반역자 안내판”을 뽑아서 치워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시민모임은 해산되어 “민족반역자 안내판”을 원상 복구할 수 없었고 몇몇 시민들이 근처 절벽아래에 비스듬히 세워 둘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지회는 “그렇게 푸대접받으며 그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민족반역자 안내판”이 며칠 전 다시 추가훼손된 것으로 확인되었다“며”10월7일 밤에 뒤벼리를 지나던 시민이 찍은 안내판 사진을 다음날 전송받았고 10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회원들이 현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반제국주의 항일투쟁의 심장이었던 진주에서 최근 벌어진 친일미화 공연(KBS ‘가요무대’) 등 지역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무분별한 민족반역행위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가 “민족반역자 안내판” 훼손 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민족반역행위자에 무관용의 원칙을 다시 한 번 명확히 진주시민들에게 알리고자 “민족반역자안내판” 훼손 사건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지회는 “‘민족반역자 안내판’ 훼손 같은 참담한 일이 다시 벌 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회 각계의 명확한 입장발표가 필요하다”며 진주시에도 이와 관련한 입장 발표를 요구했다.
▲민족반역자안내판 전문▲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은 민족반역자입니다 여기 뒤벼리는 진주8경의 하나로 옛날부터 남강의 명승지로 알려졌습니다.
1930년대 이후 일제와 민족반역자들이 더렵혔습니다. 일제에 부역하면 이름이 새겨진 바위처럼 영구히 빛나리라는 생각에서, 경술국치를 맞게 한 천인공로할 반역자와 그 친족 이름까지 이곳에 새겼던 것입니다.
이재각은 일왕으로부터 후작 작위와 수백억원에 해당하는 15만원의 은사금을 받았고 일장기가 그려진 훈장을 받았습니다.(국사대사전, 인명대사전) 이재현은 군수와 관찰사 재임 중 조선말에 일어난 애국의병들을 회유, 토벌, 재판한 주동자였습니다.(고종·순종실록, 관보) 성기운은 경남 전남 충청관찰사로서 의병을 토벌, 재판했고, 일왕으로부터 수백억원에 해당하는 15만원의 은사금과 남작 작위를 받았던 대표적인 일제 부역자였습니다.(매일신보, 사법휘보)
이들 민족반역자의 이름을 제거하기에 앞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교훈으로 삼고자 그들의 반역행위를 담은 안내판을 시민의 힘으로 세웁니다.
1999년 12월 28일 뒤벼리 민족반역자 이름 처리를 바라는 시민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