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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부전이굴인(不戰而屈人)..
오피니언

[이정랑의 고전소통] 부전이굴인(不戰而屈人)

이정랑 기자 입력 2018/11/12 16:37 수정 2018.11.12 16:43

싸우지 않고 굴복시킨다.

이정랑 중국 고전 연구가

손자병법의 모공편(謀攻篇)에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만이 최상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다.”

여기서 ‘싸우지 않는다’고 한 것은 무장을 포기하고 전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적과 직접 맞붙어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전쟁에 대해 손자가 갈망하고 있던 가장 이상적인 경지다. 그래서 손자는 다음과 같은 고도의 전쟁론을 제기하고 있다.

전쟁하는 방법 중에 최상은 적국을 온전한 채로 굴복시키는 것이고. 적국을 쳐부숴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이다.

‧‧‧‧‧‧따라서 전술이 우수한 자는 적군을 굴복시키려 싸우지 아니하며, 적의 성을 함락하기 위해 공격하지 아니하며, 적국을 부수는 데 지구전의 방법을 쓰지 않는다. 반드시 책략으로 적을 굴복시킨다. 다라서 병력을 손상하는 일이 없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책략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전쟁법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은 정치‧외교상의 ‘벌모(伐謀)’‧‘벌교(伐交)’와 군사상의 ‘벌병(伐兵)’ 등으로 표현된다. 벌모‧벌교‧벌병을 구체적으로 실시할 때는 많은 구체적인 방법이 따르지만, 총체적으로 보아 ‘천하를 다툴 때’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익을 보전할 것을 요구한다.

손자의 이러한 ‘부전이굴인’이라는 계략은 춘추시대라는 시대적 특징과도 들어맞는다. 춘추시대는 대국들이 세력을 다투면서 전쟁이 잦았던,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제후국들 사이의 모순과 갈등은 복잡하기 그지없었고, 정치‧외교 투쟁도 격렬하고 복잡했다. 국가의 멸망을 피하고 강대국에 항거하기 위해 중‧소국들은 여러 방면으로 군사 동맹을 맺거나 아니면 대국을 떠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다.’는 ‘부전이굴인’ 사상은 바로 국가와 군대를 완전하게 보전하는 상책으로서, 통치자와 군사 전문가들이 매우 중시해왔다.

기원전 630년, 진(秦)‧진(晉) 연합군이 정(鄭)나라를 포위했다. 정나라는 두 나라 대군에 의해 국경을 압박당하는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나라 대부 촉지무(燭之武)는 진‧진 두 나라가 이익을 놓고 근본적인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교묘하게 파악하여, 진(秦)나라의 앞날과 이익에 관심이 있는 척 꾸며 진(秦)목공(穆公)에게 이해관계를 일깨워 줌으로써 두 나라의 동맹 관계를 이간질 시켰다. 그 결과 진(晉) 문공(文公)이 주도적으로 계획한 정나라 정벌은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나라는 진(秦)나라 와 동맹관계를 맺고 정나라 안에 진나라의 대장군 세 명을 체류시켜 혹 있을지도 모를 진(晉)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로써 정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원전 627년, 정나라를 습격한 진(秦)나라 군대는 중도에서 정나라 상인현고(弦高)를 만난다. 현고는 자기 군주의 명을 받고 군대를 위문하러 왔다며 네 장의 쇠가죽과 열두 마리의 살찐 소를 진나라 군에 주면서 정나라는 일찌감치 충분한 전쟁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했다. 이처럼 현고는 정나라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이상은 모두 외교 수단으로 ‘부전이굴인’의 목적을 달성한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부전이굴인’은 결코 무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실력도 없이 그저 입만 놀려서 전쟁과 혼란을 막으려 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끝까지 전란을 피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 계략을 운용하려면 ‘전승(全勝)’의 사상을 갖춘 다음, 강력한 군사실력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부전이굴인’은 군사‧정치적으로 이상적인 경지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계략에 대한 수양이 성숙되어 있고, 원대한 정치적 포부와 넓은 포용력을 가진 장수만이 장악할 수 있는 경지다. 이러한 경지는 공과 이익을 탐내고 그저 승리만을 추구 하는 잔인한 자는 결코 얻을 수 없다. 힘으로만 이기려하고 계략으로 승리하려 하지 않으며, 성과 땅만 공격할 알았지 군을 온전하게 하는 도를 모르는 지휘관은 절대로 이 경지를 터득할 수 없는 것이다.

‘부전이굴인’의 계책은 새로운 역사시기에 새로운 의의를 갖는다. 세계적인 군사 대국치고 이 전략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특히 핵무기의 출현은 전략가들로 하여금 국가와 군을 안전하게 지키는 도를 더욱 중시하고 새로운 역사적 조건아래서 ‘부전이굴인’ 의 이상적인 길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문재인대통령의 주선으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간의 대화 또한 이 ‘부전이굴인’의 고차원의 전략적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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