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기자간담회는 여러모로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언론이 ‘김혜경 트위터’ 사건에 대한 이 대표와 당의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좀 더 주목할 만한 발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답변 말이다.
이날 이 대표는 “(현행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이 약화되는 것을 보정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 100% 비례대표를 몰아준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과거 민주당의 선거 공약에 대해서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며 정의당을 비롯해 소수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와의 차별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앞서 지난 16일 이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지지율로 볼 때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다수확보해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이 대표는 “비례의석을 통해 직능대표나 전문가들을 영입할 기회를 민주당이 갖기 어려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운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말 바꾸기란 비판과 절충형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애초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던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에 가까운 논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23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심상정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는 이러한 이 대표의 입장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한편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거대 정당의 입장을 살피는 동시에, 국민 여론으로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반영하는 스탠스라고 할까.
이해찬의 ‘오해’와 심상정의 고민
“(이해찬 대표의) 그 말씀은 연동형 비례대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명을 하셨고요.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말씀하신 게 이런 표현을 하셨어요. 어떤 연동형을 해야 할지 아직 당론이 없다. 다만 100% 비례를 다 소수당에 양보할 수는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그게 결국은 소수당한테 얼마만큼을 양보를 할 것인지 이런 접근법인데. 제가 볼 때는 소수당, 다수당의 유불리 문제로 접근하면 답이 없다. 결국 그것은 또 진실도 아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민심 그대로 국회의석이 구성될 수 있는 큰 원칙 속에서 방향을 잡고 그 방향이 전제된 후에 당익을 가지고 미세조정을 하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중하면서도 향후 조정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자간담회 직후 이해찬 대표가 나서 “오보”라고 해명하고, 추후 따로 입장을 표명하겠다 밝힌 만큼, 더욱 더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요즘 벙어리처럼 삽니다.”
진행자가 “위원장 맡으시다 보니까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공격도 안 하시고 비판도 안 하시고”라는 물음에 심 위원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한 답변이다. 어떻게든 제도 개혁이라는 현실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입장이 그대로 드러나는 질문과 답변이랄까. 심 위원장은 그러면서 두 당의 결단을 촉구하는 동시에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강조하고 있었다. 마치 현실적인 카드가 그것 뿐이라는 것을 자백하듯이.
“그러니까 그동안에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많은 특혜를 누려온 두 당이 이제 어떤 결단을 해 주느냐 그게 중요한 건데 이제 전부 지금 이런 국민적 대의 그러니까 선거제도라는 게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는 절차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대의 민주주의의 첫 단추와 같은 거란 말이에요. 이게 이제 왜곡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자 하는 대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자는 대의와 각 정당의 유불리 사이에 지금 논의가 멈춰서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1%대 신뢰도 국회가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
“저도 답답합니다. 원래 셀프개혁이 쉽지 않죠. 그런데 이번에는 저는 지난 촛불이 이제 정권교체를 지나서 청와대를 지나서 지금 국회 앞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고 또 이것이 어떤 내 거 서로 기득권 내려놓는 것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대의민주주의를 바로세우고 지금은 국민들이 1.8% 신뢰도. 거의 불신임 상태의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거냐에 대해 그 질문 앞에 있는 거거든요.
얼마 전에 리얼미터에서 여러 기관들 신뢰도 평가를 했는데 1.8% 꼴찌를 했습니다. 사실상 그건 불신임 상태를 말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선거제도 개혁을 비롯한 정치개혁을 또 정치개혁이 기득권 앞에서 좌초된다면 아마 주권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래 주시기를 바라요.”
국회라는 기관을 신뢰하는 국민이 100명 중 2명이란다. 그런데도 선거제도 개혁은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내건 선거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과 관련, 24일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익명의 평가 기사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국정치의 대표성 왜곡 문제, 곧 유권자의 투표와 실제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동안 거대 정당들은 당리당략적 유불리에 매몰돼 소극적이었다. 이번 (이해찬 대표의 발언과 같은) 해프닝은 앞으로도 극적인 상황 변화 가능성이 적다는 걸 보여준다. 기득권 타파가 이렇게 어렵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정당 득표율 50%를 넘긴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의회의 92%인 102석(전체 110석)을 차지했다. 이러한 쏠림현상에 여당에 투표를 했거나 진보진영 지지자라고 할지라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다수일 수밖에 없었다. 여당의 유불리를 떠나, 당리당략을 넘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야의 결단을 촉구하는 바다. 1%대 신뢰도의 국회가 사는 가장 빠른 길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