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괴로움을 같이 한다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에서는 “장수는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배고픔과 추위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병사들이 죽을힘을 다한다”고 했다. ‘의시육언(醫時六言)’ ‘장편(將篇)‧권1’에서는 “위급한 정세에서는 상하가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장수가 병사와 동고동락하며 함께 수고하고 쉬며 질병과 상처를 위문하고 어루만지는 것이 마치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사이 같아야 민심이 비로소 돌아온다.”고 했다. 또 “무릇 장수된 자의 도리는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는 데 있다. 위험한 처지에서 혼자만 살자고 부하들을 버려서는 안 되며, 난관에 임해서 구차하게 빠져나가려 해서도 안 된다. 두루두루 호위하며 공생공사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삼군의 병사들이 어찌 장수를 잊겠는가!”
◉ 무릇 장수된 자는 병사들과 음식의 맛을 같이하고, 안전과 위험을 함께 해야만 적에게 더 큰 위협을 줄 수 있다. ‘상략(上略)’
◉ 병사와 동고동락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따르는 자가) 많아지며, 그 반대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잃으면 (따르는 자가) 적어진다. ‘경무요략(經武要略)’
◉ 이른바 음식 맛을 함께 한다는 것은 비단 어렵고 힘들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기효신서(紀效新書)’
‘울료자(尉繚子)’ ‘전위(戰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병사를 수고롭게 하려면 장수 자신이 앞장 서야 한다. 축축한 더운 여름에 깔개를 깔지 않으며, 추운 겨울에 속옷을 더 껴입지 않으며, 험한 곳은 먼저 발을 디디며, 병사들의 우물이 만들어진 다음에 물을 마시며, 병사들의 밥이 다 된 다음에 밥을 먹으며, 병사들의 보류가 완성된 후 막사를 지으며, 일하거나 쉬는 것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전쟁이 길어져도 병사들의 힘이 무디어지지 않는다.
이 밖에 ‘국어(國語)’ ‘제어(齊語)’에서는 “함께 동고동락하고 공생공사하면 지킴에서 튼튼하고 싸움에서 강하다”고 했다. 그리고 ‘병뢰’‧‘연병실기(練兵實紀)’‧‘병경백자’ 등과 같은 책에도 ‘동감동고’에 대한 논술이 있는데, 이 문제는 군을 다스리고 부하를 통솔하는 계략으로써 역대 군사 전문가들이 중요하게 여겼다. ‘황석공삼략’ ‘상략’에서는 이것을 이른바 ‘장수의 기본 예의’라는 뜻에서 ‘장례(將禮)’라 했다.
고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서자 누군가가 술을 한 병 보내왔다. 구천은 그 술을 냇물에 쏟아 흐르게 한 다음 병사들과 함께 그 흐르는 물을 마셨다고 한다. 술 한 병을 냇물에 쏟아봐야 술맛이 제대로 날 리 없겠지만, 장수들과 병사들은 왕이 자기들과 함께 ‘동감공고’한다는 데 감격하고 흥분해서 기꺼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자 했다. 이때 구천은 ‘군참(軍讖)’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병사들의 우물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장수가 목마르다고 해서는 안 되며, 병사들의 막사가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장수가 피로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병사들의 취사용 솥에 불을 지피지 않았는데 장수가 배고프다고 해서는 안 되며, 겨울에 겉옷을 껴입지 않고 여름에 부채를 잡지 않으며 비가와도 덮개를 펴서는 안 된다. 이를 장수의 예라고 한다. (‘황석공삼략’ ‘상략’.)
이 계략의 요점은 장수와 병사의 ‘동감동고’‧‘공생공사’에 있다. 그럼으로써 장수는 병사들을 감화시켜 자발적으로 전투에 나서게 하고, 삶과 죽음을 함께 하면서 적과 싸운다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기원전 279년, 즉묵(卽墨)이라는 작은 성에서 노약한 잔병으로 강력한 연나라 대군을 물리친 바 있는 제나라의 명장 전단(田單)은 보잘것없는 적읍(狄邑) 하나를 놓고 3개월 동안 함락시키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었다. 전단은 노중련(魯仲連)에게 그 원인을 물었다 노중련은 이렇게 대답했다.
“즉묵에서 싸울 때는 앉으면 가마니를 짜고 서 있을 때는 호미를 들고 일을 하면서 병사들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스스로를 희생할 결심을 가지고 있으면 병사들도 구차하게 살려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그 옛날 장군이 연나라 대군을 물리친 원동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국이 되어 많은 세금을 거두고 금띠를 두르고 화려한 수레를 타고 다니며 그저 향락만 좇고 희생할 마음이 전혀 없으니, 병사들이 어찌 장군과 함께 죽을힘을 다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전단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다음날 그는 친히 말을 타고 북을 울려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며 전쟁터로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화살과 돌이 빗발치는 곳에서 친히 북채를 잡고 병사들을 지휘했다. 제나라군은 용감하게 싸워 이내 적읍을 점령했다.
75년, 한나라 장군 경공(耿恭)은 유중성(柳中城-지금의 신강성 선선 서쪽)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마침 명제(明帝)가 세상을 떠나고 장제(章帝)가 즉위하는 국가 대사가 발생하는 바람에 구원병이 파견되지 못했다. 흉노 군과 반란군은 연합하여 경공을 공격했고, 상황은 극히 위험해져갔다. 그러나 경공은 침착하게 적을 막아냈다. 경공과 병사들은 공생공사의 정신으로 뭉쳤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가죽으로 된 활집을 삶아 먹으면서도 결코 흩어지지 않았다.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완강하게 저항한 결과, 이듬해 마침내 구원병이 도착하자 적을 물리치고 개선했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은 13명이었다.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면 그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마음으로 만인의 마음을 얻어 일치단결하여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례는 매우 많다. 그래서 역대 장수들은 모두가 이를 군을 다스리고 작전에 임하는 기본 원칙의 하나로 여겼다.
통치자는 인심을 얻기 위해 이 방법을 통치영역에서 활용했다. 이 계략은 군을 다스리는 기본 규칙이지만, 평화 시기에 더욱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의의를 갖는다.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오늘의 위정자들! 특히 여야 정치인들은 2019년에는 수구퇴행 적 당리당략에 목매달지 말고, 이 ‘동감공고’의 좋은 선례들을 각심하고 현실정치에 적극 반영 보다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에서 숙고하여 백성들이 진정으로 공감동행(共感同行)하는 정치를 펼쳐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