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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칼럼] 제천(堤川)에 살면서..
오피니언

[김병호 칼럼] 제천(堤川)에 살면서

김병호 선임 기자 입력 2018/12/31 20:34 수정 2018.12.31 20:36
김병호 부회장.

봄바람이 살랑 불어올 때면 님 생각도 함께 하고, 동지섣달 설한풍이 휘몰아칠 때면 작고하신 부모님 옷섶이 몹시 그립다.

주머니에 동전 몇 닢 달그랑 거릴 때면 부모님이 그리워지고 주린 배, 허기진 배 채우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 맬 때면 더욱 그랬다.

어머님은 밥이 부족해도 자식들 밥그릇은 언제나 풍년이며 어머님은 신발이 부족해도 자식들 신발은 넘쳐났다.

휘파람 불며 뛰놀던 고향에 돌아가면 그렇게 반기던 어머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주인 잃은 기왓장 몇 개만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필자의 고향 안동은 양반의 고장이라고 흔히 들 말한다. 낙동강 변에서 이육사님의 ‘청포도’ 싯귀를 중얼거리며 별빛이 쏟아지는 날 하얀 모래 위를 함께 걸었던 학창시절 연인이 오늘따라 기억 속에 새롭다.

그러나 요즘은 돈이 있어야 양반이고 돈 없으면 개털신세를 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주한잔 하다가도 돈 없고 궁한 소리하면 금방 분위기가 냉랭해 지면서 동행했던 일행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린다.

돈 없으면 재혼도 못한다. 돈 없으면 친구도 없다. 돈 없으면 학벌이고 뭐고 다 소용없는 세상에 우리는 반쪽짜리 인생의 슬픈 자화상을 그리며 살고 있다.

당장 밥값이 없는데 명문대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밥값이 없는데 우수한 졸업성적이 무슨 소용이 있나.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람과 고양이 꼬리를 밟은 사람의 차이 아니겠나.

‘형님’이라고 부르다가도 돈 없다고 중얼거리면 ‘아저씨’ 소리도 하지 않고 매몰차게 돌아서 버리는 현실 속에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

2018년이 하루 남았다. 이 글이 송출되는 시점은 2019년이 되리라. 저물어 가는 올해가 필자의 인생길 같아 몹시 서럽다.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천년을 자랑하던 왕조도 패망하기 마련이고 천년을 자랑하던 고목도 언젠가 고사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것은 이 지구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우선 옆에 있는 마누라를 뼈가 부서지도록 사랑하며, 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되 가급적 돈으로 포장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일부이지만 마누라도 돈 떨어지면 속절없이 떠나버린다. 자식도 돈 없으면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조강지처(糟糠之妻)’란?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라는 뜻으로, 몹시 가난하고 천할 때 고생을 함께 겪어온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요즘 조강지처가 어디 있나? 돈 있으면 미소를 머금다가도 돈 없으면 금방 저녁 굶은 시어머니 얼굴상을 하며 덤벼드는 세상을 우리는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제천시는 분지(盆地)라 그런지 겨울이면 바람도 몹시 불고 춥다. 모질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혹독한 겨울을 겪고 산다. 올겨울은 유난히 길고 바람이 세차게도 분다.

내일 새벽 산행이나 떠나볼까. 솟아오르는 태양이 혹여나 푸른빛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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