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는 주관을 갖고 신하를 살펴라
제나라에 이사(夷射)라는 중대부(中大夫)가 살았다. 어느 날 제나라 왕의 연회에 참석한 그는 얼큰하게 취해서 문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때 일찍이 다리를 잘린 문지기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적선을 간청했다. 이사는 화를 내며 꾸짖었다.
“벌을 받아 다리를 잘린 주제에 감히 내게 적선을 바라다니!”
이사가 간 뒤, 그 문지기는 이사가 서있던 곳에 둥글게 물을 뿌렸다. 꼭 누군가 소변을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튼 날, 제왕이 나와 그것을 보고 누가 저질은 짓이 나며 따져 물었다. 문지기는 전날 중대부 이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고해 바쳤다. 제왕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이사를 잡아 죽였다. 이사는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화를 자초했으며, 제왕도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고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위나라 왕이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미녀를 선물로 보냈다. 회왕은 대단히 기뻐했고 왕비인 정수(鄭袖)는 그보다 훨씬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수는 미녀에게 맘에 드는 옷과 노리개를 맘대로 골라 가지게 했다. 회왕은 그 광경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한번은 정수가 미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대왕은 너를 좋아하시지만 네 코는 별로 맘에 드시지 않나 봐. 앞으로 대왕을 뵐 때 코를 가리고 있으면 더 오랫동안 총애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미녀는 정수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얼마 후, 회왕이 궁금해 하며 정수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왜 나를 보면 늘 코를 가리는 거요?”
정수는 처음에는 잘 모르는 척 하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대왕의 몸 냄새가 싫은가 봅니다.”
회왕은 노기가 충천해서 그 미녀의 코를 베어버리게 했다.
군주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자칫 신중함을 잃으면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데 이건 절대로 사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군주 자신에게도 해를 끼친다. 그런 행위를 본 사람들이 그를 어리석고 잔인하다고 생각하여 점차 따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통치자는 주관을 갖고 신하들을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옳다고 할 때 덩달아 옳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할 때 역시 덩달아 틀리다고 하면 통치자는 결국 남의 조종을 받게 되며 나라도 중심을 잃을 것이다.
악한 것의 본성은 선한 것 사이에 숨어 지내길 좋아한다. 무능함은 유능함 사이에 숨고 갈등은 화목 사이에 숨어 병균처럼 기생한다. 세상에서 다툼을 일으키는 모든 씨앗은 평화의 밭에서 양분을 훔쳐 먹는다. 통치자가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무위도식하면서 그 조직이 가진 역량을 축내는 사람들이 있다. “열 명이 있으면 두 명은 놀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통치자가 시급히 할 일은 이들 쭉정이를 가려내 불태우는 것이다. 쭉정이가 자라 온 농토를 폐허로 만든 뒤라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통치자를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손가락질 받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몇몇의 참모들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사람은 늘 있어왔다. 늘 있어 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통치자는 범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쭉정이를 없애야겠다고 나서는 통치자가 훌륭할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정에 속아, 귀찮아서, 그가 인기가 있으니까, 이권에 도움이 돼서 등등의 이유로 쭉정이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그 통치자는 쭉정이 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