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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회장을 억울하게 보내선 안된다. 그의 90년 생애가..
오피니언

박보희 회장을 억울하게 보내선 안된다. 그의 90년 생애가 정당히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

김승룡 기자 onlinenews@nate.com 입력 2019/01/15 07:33 수정 2019.01.15 12:57

박보희 회장이 2019년 1월 12일, 향년 90세 일기로 별세했다. 언론에서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2인자 또는 오른팔이란 말 등을 사용하면서 단신(?)으로 처리하고 있다.

▲1998년 리틀엔젤스 단장으로 평양공연 중 북한 김용순 아태평위 위원장(좌)과 함께 한 박보희 회장

1930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박보희 회장은 1950년 육사 2기 생도로 6·25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1957년 통일교에 입교하여 인연을 맺은 뒤 종교, 언론, 교육, 문화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정 종교를 떠나 박보희 회장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족적을 잠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리해 보자.

◇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약소국 한국을 대변하고 5천만을 울린 박보희 회장

“카터 이놈의 자식”

날마다 문선명 총재가 공.사석에서 당시 카터 미 대통령을 비판하고 한국의 앞날을 걱정했다. 1975년 월남 패망에 이어 전세계 공산권 도미노가 진행되는 현실에서,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은 풍전등화의 한국이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카터 행정부의 미움(?)을 받았고, 급기야 ‘통일교와 한국 CIA 밀착 의혹’을 밝힌다는 미명 하에 박보희 회장이 1978년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불려간다.

그런데 위기는 기회가 됐다.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오히려 미국인보다 뛰어난 영어달변으로 약소국의 설움을 토로하며, 시종일관 프레이저를 몰아붙인 끝에 청문회를 반전시키고 승리로 이끌어 낸다. (관련 동영상 박보희/ 美의회증언 감동적인 비화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  당시 청문회에서 열변을 토하던 박보희 회장의 영상은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제목의 비디오로 제작되어, 이를 본 대한민국 5천만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면서 ‘박보희’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박보희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시절

◇ 냉전종식의 숨은 주역, 박보희 회장

“박보희, 내일 당장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각오로 뉴스월드(워싱턴타임즈 전신) 헤드라인에 ‘레이건 압승’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실어 보내게나“

엄청난 모험을 걸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반공주의자 레이건이 압승한 비화 끝에 1980년 레이건 정부가 출범했다. 이와 함께 박보희 회장은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파트너십으로 1982년 워싱턴타임즈 창간책임자로 나서 치열한 대소압박을 가한 끝에, 드디어 1991년 소 연방 해체의 냉전종식을 이끌어 낸다.

물론 레이건 부시 대처 고르바쵸프 엘친 등 당시 표면적인 냉전종식 역사의 주역 이면에, 문선명 총재 그리고 이를 적극 뒤바침한 박보희 회장이 있었음을 역사가 결코 부인하기 힘든 팩트다.

◇ 한민족 웅지를 드높힌 진정한 한국인, 리틀엔젤스와 함께

“6.25 전쟁에서 조국을 구해준 유엔 참전국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아직도 배고프던 1962년 문선명 총재가 박보희 회장에게 리틀엔젤스 창단이 임무를 준다. 이렇게 탄생한 예술단이 바로 ‘리틀엔젤스’다. 박보희 회장은 1950년 전쟁 직후 탄생한 작은 어린이들과 함께 한국의 아름다운 선율과 태극기 하나로 세계 만방에 변방의 작은나라 ‘한국’의 이름을 알렸다. 그 실적은 실로 대단했다. 

사실 알고보면 리틀엔젤스야말로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빌보트 차트 1위에 오르고, 각종 드라마 영화가 세계를 누비는 ‘한류’의 밀알이었으며 원조였다.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가 된 오늘 한국의 위상이 바로 박보희 회장에게서 나왔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진정한 한국인이었으며, 그는 당당한 한국인의 자존심이었다.

◇ 남북화해와 통일의 큰 일꾼, 박보희 회장

“주체사상으로는 안된다. 북한의 남침을 세계 앞에 사과하라”

평양 한복판에서 그것도 북한 수뇌부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책상을 치며 불호령이 터졌다. 1991년 북한을 방문한 문선명 총재의 돌출행동에 당시 옆 자리에 앉은 박보희 총재는 “이제 끝났다”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이 역설적 행동 하나가 북한의 비핵화 서명을 받아내고, 이후 리틀엔젤스 북한공연, 평양 세계평화센터 건립, 평화자동차 운영 등 누구도 범접치 못한 남북화해의 역사를 이끌어낸다.

“압록강을 헤엄쳐서라도 조문을 다녀와야 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시엔 남쪽에서는 유일하게 박보희 회장이 조문을 다녀오기도 했다. 모두가 조문을 주저하던 때에 오직 남북화해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구국과 국익의 일념으로 말이다.

박보희 총재는 진정 남북화해의 큰 일꾼이며, 진정 화해의 한국인이었다.

◇ 박보희 회장을 억울하지 보내서는 안된다.

박보희 회장은 진정 아름다운 애국자였다. 요즘처럼 감동이 없는 시대에 박보희 회장이야말로 우리에게 ‘애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밝혀주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보희 회장 별세에 대한 국내외 언론은 차분(?)하기만 하다. 어지간한 인사도 정부포상 및 훈장이 추서됨에도 변변한 정부의 움직임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조용히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통일교’라는 색안경에 초월치 못한 단면이랄까? 특정종교를 떠나 실용적이고 합리적 접근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박보희 회장이 이러한 우리사회의 편견과 몰이해 속에서도 마치 보란듯이 세계사적인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이것이 오히려 더 크게 평가받아야 할 역사의 진실이 될 것 같다.

남겨진 자의 평가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박보희 회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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