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어버이연합이 차명계좌를 통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어버이연합은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어버이연합 사무실은 차명계좌 보도 직후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면서 어수선한 상황이다.
이날 사무실에서 만난 어버이연합 관계자는 “차명계좌 기사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A씨는 “추후 해명자료를 낼 것”이라면서 “나중에 가라앉으면 그 신문사(언론사) 박살을 내버릴 거야. 박살. 알았어?”라고 격분했다. 그러면서 “방송사에다가 해명하라는 것을 보낼 거다. 그 사람들 앞으로 책임을 물을 거다”라고 말했다.
실제 어버이연합은 지난 11일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어버이연합 회계장부 관련 보도 이후 언론사 기자 2명을 ‘허위사실적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형법제309조 제2항) 혐의로 14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바 있다. 시사저널은 어버이연합 핵심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회계장부에 일당을 주고 탈북자들을 집회에 동원한 사실이 기록돼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19일 JTBC는 어버이연합이 차명계좌를 통해 지난 2014년 9월부터 약 4개월 간 3차례에 걸쳐 1억2000만원을 전경련으로부터 받은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시민사회, “자금출처 철저하게 진상규명해야”
어버이연합이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해명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일제히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통화에서 “어버이연합이 집회를 치러왔던 주요 대상이 세월호 집회나 노동자 집회가 많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본다”며 “자금의 출처가 어디인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4.16연대도 논평을 통해 “세월호 헐뜯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자금줄 의혹 전경련, 진상규명하고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경련 정관 1조는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 촉진'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건전하고 상식적인 목소리마저 종북으로 몰아 마녀사냥하고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모진 말들로 괴롭히는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전경련의 목적은 무슨 상관이 있냐”면서 “극우보수단체를 이용하여 전경련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고자 한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반민주적인 행태를 엄중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성명을 내고 “흘러간 돈이 집회·시위에 탈북자단체를 가담시키는 인건비로 활용됐다는 정황이 드러난 만큼 명명백백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며 금융실명제법 위반·조세포탈 혐의에 대한 관계기관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어 “전경련이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를 만들어가야 하는 본연의 의무를 내팽개치고 이념대결, 국론분열, 사회통합 저해 행위에 나선 것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며 “전경련은 재벌기업들의 노골적인 정치개입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당장 조직을 해체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정치권력의 편에서 민주주의를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전경련을 더 이상 순수한 민간 종합경제단체라고 볼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경련은 자유경제원이라는 계열사를 만들어서 민주주의를 깎아내고 기존 역사 교과서를 폄하하는 데 활용했다”며 “결국 소비자인 시민들로부터 부를 축적한 이들이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데 돈을 쓰고 있었다는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시민단체와 함께 전경련 고발 추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차원 진상조사"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전경련 고발 등 향후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전경련 고발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박정은 협동사무처장도 “이번 사건을 포함해 정치적 연계 고리로서 전경련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기관들까지 넓혀진다면 검찰 수사 하나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면서 “민주사회를 해치는 활동과 정권 이익에 어떤 풀로 동원되어 작동해왔는지 등을 준비해서 대응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논의 단계”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경 대변인은 20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 행사를 가로막는 범죄행위로, 그 뿌리를 철저하게 파헤쳐 발본색원해야 한다”면서 “어버이연합 등의 탈북자 집회 알바 동원 및 전경련, 경우회의 자금 지원 의혹에 대해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그동안 세월호 반대 집회,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 등 각종 친정부 집회를 열어왔다”며 “이러한 집회들이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에게 알바비를 주고 동원한 것이라는 의혹은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