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심종완기자]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억대의 자금을 지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어버이연합 배후에 특정 세력의 비호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2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에 전경련 명의로 거액의 뭉칫돈이 들어온 지난해 9~12월을 전후해 어버이연합은 전경련 입장을 대변하는 집회를 수차례 개최했다. ‘노동관련법 처리 촉구’ 시위가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비정규직 파견 범위와 기간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노동계에선 ‘악법’으로 불리지만 통과될 경우 전경련에는 유리한 법안들이다.
해당 계좌에서는 어버이연합과 함께 활동하는 탈북어버이연합의 김모 대표에게 송금된 내역도 확인됐다.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에서 받은 돈으로 탈북자를 시위에 동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버이연합은 그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반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전교조 해체 주장, 야당 지도자 규탄 등 정치·사회적 이슈 때마다 극단적 주장을 해왔다. 이 때문에 어버이연합의 활동에는 권력기관이 배후에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 주인이 기독교 관련 재단이라는 점을 들어 국가정보원 개입설도 나온다.
한 탈북자단체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이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선교재단 등을 만들어 친정부 활동을 하는 탈북자단체에 자금을 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시사저널’은 이날 어버이연합 핵심 인사의 말을 인용해 “올해 초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과 관련해 청와대 측에서 지지 집회를 열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이같이 주장하며 ‘집회 지시’를 내린 인물로 청와대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실 모 행정관을 지목했다.
이 행정관은 경향신문에 “어버이연합은 1월6일 소녀상 근처에서 기자회견도 했다”며 “오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집회 지시 등의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야3당은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경 대변인은 “어버이연합의 탈북자 집회 알바 동원 및 전경련, 경우회의 자금 지원 의혹에 대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1일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금융실명제법 위반·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재향경우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배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찾은 서울 종로4가 어버이연합 강당 벽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이승만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태극기 주변에 걸려 있었다. 어버이연합의 역대 활동을 기념한 사진 너머로 ‘종북좌파 척결’이란 문구도 보였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5월8일 어버이날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국민에게 전파한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자금 및 회원 관리·조직 활동 등 운영에 관한 실무는 추선희 사무총장이 총괄한다.
어버이연합의 주 활동은 거리집회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관제데모’를 벌였다. 야당 인사나 진보 단체 행사에 대해서는 규탄집회를 열거나 맞불시위로 방해했다.
어버이연합은 2008년 보수정권 집권 이후 줄곧 친정부·친여당의 목소리를 내왔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친여당’을 넘어 ‘친박근혜’적 태도를 드러냈다. 어버이연합은 “박근혜 정부의 한국형 복지정책 적극 지지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환영한다” 등 박근혜 정부의 주요 결정에 지지를 보내는 집회를 개최했다. 같은 여권이지만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선 “국민 배신 정치의 아이콘 유승민 사퇴하라”란 집회를 개최했다.
어버이연합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인사에 대해서는 ‘종북 척결’ 등을 내세우며 규탄집회를 벌였다. 특히 야권과 진보단체의 집회에는 귀신같이 정보를 알고 맞불시위를 벌이는 기민성을 과시했다.
어버이연합은 지난 1월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수요시위에 맞서 인근에서 맞불시위를 열었다. 지난해 10월13일에는 야권 지도부가 벌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에 맞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세월호 참사 발생 후인 2014년 5월부터는 지속적으로 세월호 유족들을 규탄하는 ‘반세월호’ 집회를 주도했다.
어버이연합은 창립 이래 매해 평균 150회 정도의 시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인단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정보력과 기민한 대응력을 놓고 ‘배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버이연합의 자금 출처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회원들에게 1만원, 2만원씩 회비와 후원금을 받고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당은 지급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이날 올해 초 어버이연합 측이 청와대 모 행정관으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합의 타결과 관련해 지지 집회를 지시받았다는 어버이연합 간부의 주장을 보도했다. 이 행정관은 각종 시민단체를 관리하는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이다.
이 행정관은 경향신문 문의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시사저널 보도는 오보”라며 부인했다. 그는 “어버이연합은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환영했으며, 지난 1월6일 주일대사관 앞 소녀상 근처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도 했다”고 답했다.
어버이연합 관계자는 “우리는 좌파 척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데, 일을 할 수가 없다. 상황이 정리되면 우리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