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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수(數) : 이 세상은 숫자로 이뤄져 있다..
문화

운명의 수(數) : 이 세상은 숫자로 이뤄져 있다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6/04/23 17:23



“수 (number)란 삼라만상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우주 암호입니다. 수들이 품고 있는 높고 낮은 진동들과, 이러한 진동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들의 인생과 운명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수비학의 저자 Ray Lagerquist. 

 

내겐 운명이 되어버린 숫자 두 개가 있다. 1980년 대 후반 컴퓨터가 등장하던 시절, 생년월일과 이름을 넣으면 한 줄 한 줄 인쇄되어 나오던 컴퓨터 점을 본 적이 있다. 

 

내 인생의 숫자

 

A4 보다 긴 종이에 빼곡히 여러 가지 이야기가 쓰여 있었지만 내가 유독 기억하는 것은 나의 행운의 숫자가 4와 13이라는 것이었다.

 

죽을 4와 악마의 13.

 

평범한 모든 것을 유달리 기피했던 시절, 나는 오른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계를 왼손에 찬다는 이유로 불편을 무릅쓰고 오른쪽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런 내게는 모든 이들에게 미움을 받는 그 두개의 숫자가 나의 행운의 숫자라는 사실이 “나는 특이해”를 지나 “나는 특별하다”라는 기묘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 숫자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던 듯하다.

 

대학 합격 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다. 4학년 언니들이 준비했던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고 약 400~500 명의 신입생들이 넓은 강당에 참여했었다.

 

오리엔테이션 입구에는 행운권 추첨을 위한 상자가 있었고 우리는 숫자가 쓰인 쪽지 하나씩을 뽑아들고 안으로 입장하였다. 

 

그 때 내가 뽑았던 숫자가 4번이었다. 의기양양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이 숫자는 나의 행운의 수이니 오늘 행운권 1등 당첨은 나일거야.”

 

드디어 행운권 1등 추첨 시간이 돌아오고 사회자 언니는 “4번”을 외쳤다. 그 순간, 4는 더 이상의 테스트가 필요없이 나의 행운의 수로 확고히 자리매김되었다.

 

이 세상은 숫자로 이뤄져 있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숫자를 가지고 있다. 숫자가 없으면 무엇 하나 이해하거나 생각할 수 없다.” 기원전 5세기 필롤라오스가 말했듯이 정녕 인간 세상은 숫자로 돌아간다.

 

주민등록번호로 시작하여 몸무게나 키, 지능 지수, 차 번호, 전화 번호, 사업 결과, 연봉, 경쟁력, 행복지수, 거리, 등등 숫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암호이자 상징이다.

 

특히나 금융업계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기업과 프로젝트의 분석과 평가는 단연코 숫자로 나열되며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엑셀에서의 숫자 싸움을 하며 보낸다.

 

그런 내게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 두 숫자는 그 날 이후 나타날 때마다 다른 숫자, 2나 3, 8이나 9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생명력으로 다가왔고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의 확신과 믿음을 양분삼아 숫자와의 교감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특히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10여년의 세월 동안 이 숫자들은 나의 거처마다 세워져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살던 집들의 주소는 이러하다.

 

314번지,

67 번지 (6+7=13, 이렇게 각 숫자를 더하는 것은 수비학의 방식이다),

49 번지 (4+9=13),  

1291 번지 (1+2+9+1=13). 

 

그리고 내가 근무했던 건물의 층 수 역시 31 층과 67 층이었다. 

 

이렇듯 거처의 표지로서 드리웠던 행운의 수는 몇 해 전 불과 20여일의 짧은 기간 동안 집요하게 반복되었다.

 

 

‘행운의 수’가 ‘저주의 수’로  

 

40살이었던 그(남편)가 진료를 받고 입원했던 그 당시를 잊을 수 없다. 

 

그가 입원하던 날 우리는 44번의 번호표를 뽑아 13번 상담실과 4번 상담실에서 의사와 진료 상담을 하고 4월 4일 입원을 하였다.

 

그는 13일 후에 병동을 옮겼고 4일 후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입원하기 바로 며칠 전 내가 이사 간 곳의 주소가 1344-13번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행운의 수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모든 것은 잘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화장터의 제13로전실에서 기어이 재가 된 후에 경기도 한 납골당에, 그것도 4동에 안치되었다.

 

그 일을 겪으면서 22년 동안 굳게 믿어왔던 나의 “행운”의 수는 그저 인연이 억수로 깊은 수이거나, 외려 “저주의 수”라 여겼다.

 

어느 날 문득, 지나간 시절을 돌이키다가 그가 하늘나라로 올라간 날이 우리가 언약한 날로부터 꼭 13년 4개월이 되는 날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루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 꼭 만으로 그리 되는 날이었다.

 

지구 어딘가의 상공을 지나던 비행기 안에서 이것을 깨달은 그 때 나는 이 숫자가 내 운명의 수라 믿었고, 그 후 이 숫자들이 내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혼자만의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레고리력으로 103일째 된다는 4월 13일의 세계 역사나 인물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고, 수비학 혹은 수의 비밀과 관련된 서적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성경에서 말하는 4와 13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했다.

 

음력 4월 13일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고 하니, 이 숫자는 무언가 끔찍한 것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태국에서는 4월 13일이 한 해의 첫날이고 물로 벌이는 축제를 연다고 하니 이 숫자는 내게 새로운 시작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꼭 430년이 되는 날 이집트를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애굽기 4장 13절)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던 힘없고 약한 80세의 노인 목동, 모세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히브리력의 첫달 “아빕월에 이집트를 떠나게 되었다”고 출애굽기 13장 4절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하니 이 숫자를 따라가면 나도 언젠가 세상의 노예됨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인가. 

 

어쩌면 영혼의 해방, 자유, 이러한 것들이 이 숫자가 내게 말해주려던 메시지인 것일까.

 

위의 내 경우에서처럼 나타나는 숫자의 메시지를 당시에 간파하기는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여느 표지판처럼 이쪽 혹은 저쪽으로 가라는 방향은 주지 않고 인생의 한 지점에 덩그라니 꽂혀만 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는 4월 13일이 한 해의 첫 날이고 물로 벌이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필연을 선택하다

 

일년 전쯤 동사무소에서 '기본 증명서'라는 것을 받아볼 일이 있었다.  

 

이 서류에는 나의 출생일과 출생 주소지 그리고 그것을 신고한 날짜가 찍혀 있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부모님은 1월 생인 나의 출생신고를 내가 태어난지 3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 그해의 4월 13일 하셨기에 내 출생신고서에 역시 운명의 수 두 개가 나란히 박혀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실상 그저 차갑고 텅 빈 우연일지 모른다. 우연이라 믿는 내게는 우연이 되겠고, 필연이라 믿는 내게는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필연이라 부르고 싶음은, 살아온 불과 몇 십년의 시간 동안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전력투구하여 모아 쌓아놓은 얄팍한 지식무더기와 바람 불면 날아갈 나약한 이성 따위를 모두 내버려서라도 움켜잡고 싶은, ‘결코 허무하게 스러져가고 싶지 않은 mortal한 존재의 숙명적 갈망’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갈망이면 어떠한가.

 

그저 우연의 산물로서 아무런 의미 없는 먼지 같은 존재로 나를 정의하기보다는 우주 비밀을 감추고 있을 “수”에 기대어 나라는 사람을 태고적부터 존재했어야만 하는 숙명적 인물이며 인생이라 믿고 살고 싶다.

 

나의 인생 행로의 중요 시기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던 이 두 숫자의 자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현재 내가 어디에 서 있건 그 무언가 초월적인 힘에 의해 가야만 하는 길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의 포용의지가 불쑥 생겨난다.

 

신이 허락한 자유의지로 인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고 의지이다. 하지만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존재에게 지나온 과거를 걷고 있는 내 인생의 여정과 종착지가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신은 내 삶의 곳곳에 걱정 말고 따라가라는 ‘확신’이나, 가지 말라는 ‘경고’이거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격려’를 담아 나의 숫자들을 세워 두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혹은 이런 다정한 교류의 표지는 아니더라도 내 존재의 당위성을 확인해줄 그저 ‘널 잊지 않았다’라는 위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무한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위로도, 경고도, 그리고 격려도, ‘수’가 주려는 원초적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나의 어리석은 해석일지언정, 방향을 주지 않는 표지를 붙들고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매달릴 때, 나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insight)은 성장하리라.

 

그러기에 오늘도 나는 흔들림 없이 믿음직한 나의 숫자들을 동지 삼아서 내게 전달된 천상의 메시지를 열심히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찾을 때까지 찾으면 찾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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