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백제예술대학 백암아트홀에서 노네임씨어터의 앨런 베넷(Alan Bennett) 원작, 여지현 이인수 번역, 김태형 연출의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를 관람했다.
백암아트홀(관장 박귀재)은 아름다운 건물, 첨단시설, 국립극장보다 편안한 객석, 편리한 교통으로 해서 관객이 선호하는 극장이다.
앨런 베넷(Alan Bennett, 1934~)은 극작가이며 소설가이자 배우다. 익살스럽고 통렬한 문체와 이야기로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다. 1934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옥스퍼드에서 연극배우로도 활동했고, 수년간 중세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1963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더들리 무어, 피터 쿡, 조너선 밀러와 함께 공동으로 극본을 쓰고 출연한 시사풍자극 ‘변두리를 넘어서(Beyond the Fringe)’로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더들리 무어, 조나단 밀러, 피터 쿡과 함께 출연했다. 이후 이 작품은 런던과 뉴욕에서 공연되었다. 또한 ‘내 아버지는 로이드 죠지를 알고 있다(My Father Knew Lloyd George)’에도 출연했고, TV 코미디 드라마 시리즈 'On the Margin, 1966'에도 출연했다.
베넷의 첫 번째 연극 작품은 ‘40세에 이르러(Forty Years On), 1968’를 제작했다. 베넷은 영화, TV 드라마, 라디오 드라마, 연극, 소설, 논픽션 드라마 등의 작품을 썼고, 배우로도 활동했다.
1970년 말에 LWT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1980년 초에는 BBC TV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87년 ‘Talking Heads’ 시리즈는 후에 연극으로 1992년 런던의 코미디 씨어터에서 공연되었다. 1994년에 연극 ‘죠지 3세의 광란(The Madness of George III), 1991’은 ‘죠지 왕의 광란(The Madness of King Georg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이 영화는 4개의 아카데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연출을 한 김태형은 과학고 카이스트를 다녔다. 김태형의 별명은 똘똘이 스머프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공부뿐이었던 똘똘이는 카이스트 입학이 결정된 과학고 2학년 겨울방학, 남들 공부할 때 띵까띵까 연극반에서 놀다가 무대와의 화학반응을 체험한다. 그 뜨거움을 잊지 못하고 결국 카이스트 3학년 때 자퇴를 결심한다. 그리고 연극의 길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연출을 전공한다.
김태형은 ‘모범생들’ ‘연애시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족오락관’ ‘옥탑방고양이(초연)’ ‘오월엔 결혼할 거야(초연)’ ‘봄작가, 겨울무대 1,2,3회’ ‘아가사’ ‘내일도 공연할 수 있을까’ ‘두결한장’ ‘로기수’ ‘대학로 디바’ ‘카포네 트릴로지’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쇼케이스’ ‘히스토리 보이즈’ 등을 연출해 독특한 기량을 발휘한다. 김태형은 발전적 앞날이 예견되는 연출가임에 틀림이 없고, 이번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그 기량이 제대로 드러난다.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는 2005년 3개의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베스트 연극상과 베스트 남우주연상(리차드 그리피츠), 베스트 연출상(니콜스 하이트너)을 수상하였고, 크리틱스 서클 시어터 어워드상과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에서 베스트 남우주연상과 베스트 연극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6개의 토니 어워드 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 영화화되었다.
2004년에 발표된 ‘히스토리 보이즈’는 앨런 베넷의 학창시절을 기억하며 쓴 자전적 작품으로 1980년대 초반 영국 북부 요 크셔 지역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 Cutler`s Grammar School을 배경으로 한다. 서민가정 출신의 똑똑하지만 다듬어지지 않는 여덟 명의 대학입시 준비반 학생들은 영국의 명문대학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 지원하고 이들을 지도하는 세 명의 교사의 이야기가 학교장의 동태와 함께 펼쳐진다.
자신만의 교육법을 통해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며 독려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통해 학생들은 생각하고 토론하는 힘을 키우며 성장한다. 앨런 베넷의 <히스토리 보이즈>는 전형적인 영국의 학교 교육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 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대영제국의 팽창기에 학교교육을 그린 희곡이나 소설은 영국문학의 독특한 장르로 취급된다. 대영제국의 관리에 필요한 젊은 인재의 육성에 목적을 둔 기숙학교의 교육제도를 기본으로 그려낸 당시의 희곡의 배경 역시 기숙학교이다.
주로 영국의 통치이념 또는 상위문화 즉, 심신이 강건한 기독교인, 애국심, 팀 스포츠, 공정함, 복종심, 소속감 등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전달된다. 학교는 이처럼 상위문화를 전달하는 전형적인 기관이지만 하위문화의 주체인 학생들이 공존하면서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충돌이 생긴다.
‘히스토리 보이즈’ 역시 1980년대의 주된 정치이념, 경쟁심, 애국심, 다문화주의 등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동성애 같은 성 정체성 의 문제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다루는 등 ‘히스토리 보이즈’는 상위문화와 하위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변화하는 시류를 앨런 베넷의 희곡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교장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옥스브리지' 합격자 수와 학교의 능력이 비례한다고 보는 교장은 결국 학생들의 입시 지도를 도와줄 옥스퍼드 출신의 새로운 교사 '어윈'을 영입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어윈'은 젊고, 냉소적이며, 실용적이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역사'를 비틀고 덧칠하고 뒤집어도 된다는 입장이다. 낭만적인 문학교사 '헥터'는 새 교사의 가치관이 못마땅하다. 고전을 즐겨 인용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진리와 인생의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헥터는 의식이 깨어있고 자유분방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학생들도 태워준다.
정반대되는 세계관을 가진 문학교사 헥터와 역사교사 어윈 사이에서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헥터는 영국 시인이자 비평가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만 (Alfred Edward Hausman) 의 말을 인용해 "모든 지식은 인간에게 유용하든 유용하지 않든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문학은 패배자들의 것"이라든가 "시에 나오는 건 대부분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도 학생들은 헥터의 가르침을 받아 카프카와 사르트르, W.H. 오든(Wystan Hugh Auden) 등을 자유롭게 인용하며 논다.
반면 어윈은 "종교개혁 직전 교육에 대한 답안지를 쓸 땐 예수의 음경 표피 같은 웃기는 농담을 먼저 던져라" 라고 가르치는 등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요령과 기술을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이 연극에서는 동성애가 대두된다. 학생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교사도 대상이 된다. 교장은 이런 점들을 지적하며, 명문대에 대거 합격시키기 위해, 낭만적인 문학교사를 해임시키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학생들의 실망이 커지고, 문학교사 헥터는 자포자기의 심정에 쌓인다. 결국 대학입시가 들이닥치면서 공연은 종반에 이른다.
장면이 바뀌면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전원 합격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고, 해임될 줄 알았던 문학교사 헥터는 그대로 교사직을 계속하게 되지만 역사교사 어윈은 타교로 전임발령이 난 것으로 소개가 된다. 종장은 헥터가 어윈을 모처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결국 헥터는 죽고, 어윈은 크게 다쳐 휠체어 신세가 되는 것으로 소개가 되고, 대단원에서 교장과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상복차림으로 헥터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교실이다. 정면에 책장과 칠판이 있고, 무대 좌우에 책상과 의자를 배치했다. 무대 중앙에도 긴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칠판이 천정으로 상승하면, 그 공간에 문양과 영상이 투사되고, 유명 영화의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영사막으로 사용되던 벽면을 좌우로 이동시키면 붉은 벽돌로 된 극장 벽면이 드러나고, 학교 뒤쪽 교정이 펼쳐지기도 한다. 무대 하수 쪽에는 건반악기가 있고, 악기 뒤로 희랍신화의 남성나신 석고상을 세워놓았다. 학생들이 건반악기 연주와 함께 독창과 합창을 하며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합동으로 무용을 펼치기도 한다.
최용민, 선종남, 김병희, 오대석, 곽지숙, 박은석, 이태구, 심희섭, 손승원, 이강우, 오정택, 윤지온, 이휘종, 김바다, 이동혁 등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열연과 성격창출이 제대로 공연에 드러나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터그 이인수, 편곡 배미령, 무대 여신동, 조명 촤보윤, 영상 정병목, 영상 음향감독 윤민철, 의상 이주희, 분장 헤어디자인 김남선, 무감 김태연, 기획 한해영, 소품 장경숙, 제작 이수민, 프로덕션 매니저 이수진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노네임씨어터컴퍼니의 앨런 베넷(Alan Bennett) 원작, 여지현 이인수 번역, 김태형 연출의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를 한편의 명화 같은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뉴스프리존=박정기 문화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