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나쁜 사람이라더라” 발언
그 뿌리가 된 딸 정○○과 승마계 이야기
지난해 11월 말 이른바 ‘정윤회·십상시 문건’이 보도된 뒤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은 사실상 모두 ‘근거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12월3일 <한겨레> 보도로 촉발된 정윤회·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개입 의혹에 대해선, 검찰도 청와대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최순실씨의 한 가족은 13일 <한겨레> 기자를 만나 “조금이라도 관련이 됐으니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특정인을 지목해 “나쁜 사람이라더라”며 부처 실무자 경질을 요구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한 승마 선수의 이야기를 되짚어봤다. 지난해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등에서 ‘승마의 발레’라고 불리는 마장마술 종목에 출전해온 이 선수는 이화여대에 승마특기생으로 합격해 오는 3월 입학을 앞둔 국가대표 정○○(19) 선수다. 바로 정윤회씨와 최순실씨의 딸이다.
▶ 올림픽에 출전하는 동물은 두 종류다. 인간 그리고 말(馬). 두 달이 다 되도록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 사건에 등장하는 동물은 세 종류다. 인간, 말, 그리고 진돗개. 올림픽에선 사람도 말도 줄곧 열심히 뛰어야 하건만, 말(言)만 많았던 이번 사건에선 사람은 잘 뵈지도 않고 말(馬)은 버려진 듯 처박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세라던, 정윤회씨가 되겠다던, 진돗개만이 청와대 앞뜰을 열심히 뛰논다.
승마선수인 딸 정○○이 박근혜 덕을 본다고?
아주 어릴 적, 4살 때부터 말을 탔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서 승마장을 다니다 보니 말과 금방 친해졌다”(2012년 6월 <일간스포츠> 인터뷰)고 했다. 아버지는 “저(딸)가 워낙 동물을 좋아하더라. 어려서부터 취미로 했는데…”(2013년 7월 <한겨레21> 인터뷰)라고 했다. 그리고 어린이 승마선수가 됐다. “선수 데뷔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7년에 했다.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지만 내가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말 타는 게 다른 어떤 것보다 적성에 맞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일간스포츠>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정윤회(60)씨와 최순실(59·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딸 정○○(19) 선수 얘기다.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정○○과 마칠기삼
승마 경기는 크게 마장마술과 장애물로 나뉜다. 정 선수의 종목은 마장마술이다. 가로 60m, 세로 20m의 무엇도 설치되지 않은 평탄한 경기장(마장)에서 말과 기수가 호흡을 맞춰 전진·정지·후진·속보·구보 등 정해진 ‘과목’을 수행해 평가받는 종목이다. 성적이 오롯이 심판의 주관적 평가에 의해 결정되므로, 피겨스케이팅이나 체조처럼 선수와 관객이 판정에 불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정 선수는 2012년 고등학생이 되면서 일반·학생을 통틀어 마장마술 종목 전체 10위권에 들며 유망주로 떠올랐고, 같은 해 승마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받았다. 고3이었던 지난해에는 국가대표로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가별로 4명까지 출전해 상위 3명의 성적을 합산하는 방식인 단체전에서, 그는 한국 선수들 가운데 3위(전체 순위 5위)로 제 몫을 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꼴등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잘돼서 기분이 좋다”(<에스비에스> 인터뷰)고 말했다.
단체전의 한국팀 내 1위는 ‘에이스’로 불리는 황영식, 2위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이었다. 두 사람은 개인전에서도 1, 2위를 차지해 금·은메달을 나눠 가졌다. 개인전 결선엔 국가별로 상위 2명씩만 출전할 수 있어, 두 사람에게 밀린 정 선수는 나가지 못했다. 김동선은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개인전 결선에서 아시안게임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했지만, 본선 점수를 합산하는 평가 방식 탓에 아쉽게도 은메달에 그쳤다. 김동선은 10살 때부터 승마를 시작했으며, 최연소(17살)로 참여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때부터 3차례 획득한 단체전 금메달에 힘입어 군복무를 면제받았다.
한국은 이로써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5차례 대회에서 모두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을 한번도 놓치지 않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선 얘기가 다르다. 한국 승마는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처음 출전했지만 아직까지 메달은 없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은 출전 티켓도 따내지 못했다. 은퇴 뒤 한화건설에 입사한 김동선은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대표팀 선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승마에선 선수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말의 몫이 크다. 스포츠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남녀 구분이 없는 것도 말이 중요하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한 승마동호인은 “마장마술이나 장애물이나 90%는 말의 몫이다. 외국의 주요 대회에 출전하는 말이 몇십억씩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성적을 잘 내는 말은 비싸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아시안게임 이전에 정 선수를 지도했던 신창무 전 국가대표팀 코치(전 국가대표 선수)는 이런 시각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다. 신 전 코치는 지난달 29일 <한겨레>를 만나, “흔히 ‘마7기3’(말이 7, 기수가 3)이라고 하는데 나는 5 대 5라고 본다. 사람이 6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말의 능력을 끌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신 전 코치도, 아시안게임보다 높은 기량이 요구되는 올림픽 출전 조건을 말할 땐, “(정○○이 지금 가진 말로는 안 되고) 10억짜리 2마리는 사야 한다”며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값비싼 말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승마 선수들의 면면이 화려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경기에 출전했던 타이 대표팀의 시리완나와리 나리랏(28) 선수는 푸미폰 아둔야뎃 타이 국왕의 손녀다. 지난해 몬테카를로 장애물 대회 우승자인 샤를로트 카시라기(29)의 외할아버지는 모나코의 군주였던 레니에 3세(1949~2005, 그레이스 켈리의 남편)다. 다시 말해, 시리완나와리 나리랏과 샤를로트 카시라기는 모두 공주다.
그뿐 아니다. 지난해 롤렉스가 미국 뉴욕에서 주최한 ‘센트럴파크 대회’에서 우승한 조지나 블룸버그(33)는 거부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막내딸이다. 론진(스위스 시계 브랜드)이 여성 승마선수에게 수여하는 ‘론진 여성상’을 2013년에 받은 그리스 대표팀 아티나 오나시스(30)는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리스 오나시스(1906~1975)의 유일한 혈육(외손녀)이자 상속자다.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세계 최고 장애물 대회인 승마월드컵에 출전한 제시카 스프링스틴(24)은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딸이다.
국내에서도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때 승마선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고3 때부터 승마를 시작한 이 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89년 한해 동안 전국학생승마선수권대회 등 6개 대회에서 마장마술 9차례, 장애물 1차례 우승을 거두며 승마계를 제패했다. 이런 성과 덕에 승마기자단으로부터 우수선수로 뽑혔다. 당시 이 부회장은 국가대표들과 더불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학생승마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종합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함께 팀을 꾸린 신창무·서정균 선수가 정 선수의 전·현직 코치라는 인연도 눈에 띈다. 이밖에 현대가의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도 1972년(21살) 전국체육대회 승마 장애물 경기에 출전해 은메달을 딴 적이 있다. 오늘날 한화가의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국내 재벌의 ‘승마 애호’도 면면한 전통이 있는 셈이다.
올해 이대 승마특기생으로 들어간
최태민의 외손녀 정○○은
수억원대 호가하는 말 5마리 소유
유지비용만 다달이 2천만원 들어
경제적 바탕에 대한 추측 난무
정○○의 라이벌이 우승 차지한
2013 승마대회 뒤 승마협회 조사
이 과정서 대통령이 문체부의
국·과장 거명하며 “나쁜 사람” 운운
실제로 두 사람 갑작스레 경질
승마계 ‘돈의 리그’ 촉발시킨 주인공으로 지목
재력의 뒷받침이 필수적인 승마에서, 정 선수에겐 어떤 경제적 바탕이 있었을지에 대해선 추측이 분분하다. 2015년 1월 현재 경기도 이천 ㅌ승마장에서 맡고 있는 정 선수의 말은 모두 5마리다. 모두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말이다. 신창무 전 코치는 이 가운데 자신이 구입 과정에 관여한 3마리에 대해 “3마리 가격을 다 합쳐도 10억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을 사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말만 보더라도, 승마장 내에서 거주하는 마방의 임대료(마방비)와 말의 사료 및 비타민 등 식대(사료비)가 들어간다. 한마리당 마방비는 월 150만원, 사료비가 월 30만~50만원가량이라고 한다. 여기에 전문적인 코치를 고용해 훈련 없는 날에도 말을 놀리지 않고 꾸준히 운동시키는 비용이 마리당 월 100만원(말 코치비), 그리고 레슨 코치에게 지급하는 레슨비가 또 100만원가량 든다고 한다. 모두 합치면 한마리당 약 400만원, 곧 5마리를 유지하려면 2000만원씩을 다달이 지출했다는 얘기다. 더욱이 선수가 고3이면 레슨비가 두세 갑절 뛰는 경우도 있어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승마협회나 승마선수 부모들 사이에서도 ‘5마리는 많다’는 반응이 나온다. 물론 말 네댓 필을 가진 선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 선수와는 환경이 다르다. 아시안게임에 함께 출전했던 황영식·김동선 선수가 해당되지만, 황영식은 아버지가 승마장을 운영하고 있고, 김동선은 자신이 오너 가족의 일원인 한화가 승마팀(한화갤러리아승마단)과 마장(로얄새들승마클럽)을 갖고 있다. 승마장이 있으면 말과 관련한 비용뿐 아니라 코치 및 레슨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아버지 정윤회씨는 기자를 만나 재력이 승마계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한탄’한 적이 있다. 2013년 7월 딸 정 선수가 참가한 경기가 열린 과천승마장에서 만난 그는, “한국마사회(KRA)나 삼성이나 한화 같은 데 당해낼 수 있겠어. 재벌들이 좋은 말 갖고 나오면”이라며 “그런데 우리 애가 깡다구가 있어”라고 말했다. 승마단과 마장을 가진 재벌처럼 ‘풍요롭지 못한’ 환경에서도 딸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아버지의 뿌듯함을 표현한 것이었다. 마치 자신은 ‘돈의 리그’에 낀 적이 없다는 듯했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은 달랐다. 지난달 초 만난 승마 관계자는 “말이 70%를 좌우하는데, 얘(정○○)는 말로 밀어붙였다. 얘가 한국 승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어”라며 “좋은 말을 다 끌어오니까, 다들 얘한테 안 지려면 덩달아 (좋은 말을) 끌어와야 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돈의 리그를 촉발한 게 정 선수의 부모였다는 것이다. 그 부모의 재산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머니 최순실씨가 서울 신사동에 100억대 건물을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씨는 생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정 선수의 승마가 승승장구했던 데는, 재력 이외에 또다른 ‘무엇’이 있었을 거란 시각도 있다. 부모가 박근혜 대통령과 한때 가까이 지냈던 게 분명한 만큼 지금도 그런 관계를 뒷배 삼아 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본다는 것이다.
그가 신인상을 받은 이듬해인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선, 경찰이 시합 직후 심판진을 두 차례나 대대적으로 조사한 일이 있었다. 정 선수가 참가했던 고등부 마장마술 경기 결과와 관련한 부정 의혹이 원인이었다. 당시 대회에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정 선수와 라이벌 관계였던 김아무개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결과에 대해 시비가 붙을 수는 있지만 경찰이 수사에 나선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아무리 논란이 있어도, 가장 전문성을 갖춘 승마협회가 먼저 나서야 할 일이었다. 경찰에 불려간 심판들은 누가 왜 수사를 의뢰한 거냐고 물어봤지만, 경찰은 ‘첩보에 의한 내사’라고만 할 뿐 고소인도 진정인도 없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우승한 김 선수의 학부모에게 무슨 부탁을 받고 점수를 잘 줬느냐”고 추궁했고, 당시 심판들은 이를 부인하며 “무슨 첩보가 경기가 끝나자마자 들어오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 수사는 결국 내사 수준으로 마무리됐지만 다음달인 5월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승마협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문체부는 조사 지시에 의아스러워했다. 승마협회는 규모가 크지 않아 평소 신경도 잘 안 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를 맡은 문체부의 국·과장은 청와대로부터 정윤회씨 부부와 가까운 승마협회 전직 간부를 만나보라는 구체적 ‘지침’도 하달받았다.
담당 국·과장은 두달가량 조사 뒤 ‘정윤회 쪽과 반대쪽 모두 문제가 많다’고 보고했다. 청와대가 보낸 ‘지침’을 따랐다면 정윤회 쪽의 잘못이 나와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직후 박 대통령은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불렀고, 두 사람의 이름을 거명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사실상 경질을 지시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한꺼번에 경질됐다. 박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자신이 지시한 체육계 비리 척결에 미적댔기 때문에 인사조처한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인사 발표는, 비리 척결 방안 발표가 나온 지 불과 한달밖에 되지 않은, 그래서 성과와 책임을 묻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점에 이뤄져 입길에 올랐다.
이렇게 미심쩍은 상황 탓에 정 선수의 대회 성적과 이에 대한 부모의 불만이 청와대가 승마협회 관련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라는 설명이 대두됐다. 당시 정 선수를 지도한 신창무 전 코치는 이를 부인했다. 신 전 코치는 “상주 시합 직후 미국에 급하게 갈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이 시합 때문에 통화를 하면서, 어머니(최순실)로부터 상주에서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만약 최순실씨 본인이 나서서 개입한 거라면 이를 왜 숨기지 않고 자신에게 알렸겠느냐는 얘기다. 또 최씨는 경기 결과에 불만도 없었다고 신 전 코치는 전했다.
“○○ 엄마(최순실)가 전화통화로
상대를 ‘언니’라 부르더니 나중에
그 상대가 박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일부 승마선수 학부모들은 정○○이
박근혜 덕 본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 비선실세 의혹 불거진 뒤
정○○은 종적을 감춘 듯하다
예비입학생 프로그램은 물론
승마장에도 발길 끊고 훈련 중단
독일인 코치들까지 동남아 출국
말 목장 지으려 했던 강원도 평창 땅
그러나 다른 승마선수 학부모들은 달랐다. <한겨레>는 취재 과정에서 “○○ 엄마(최순실)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상대를 ‘언니’라고 부르더니, 나중에 그 상대가 박 대통령이었다고 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복수의 학부모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한 학부모는 “○○ 엄마가 박근혜를 앞세워 목소리 높인 건 오래된 일”이라고도 했다. 반면 최순실씨의 한 가족은 “내 앞에선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학부모들은 적어도 정 선수가 부모를 통해 박 대통령의 덕을 본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윤회·최순실 부부는 다른 학부모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않았고, 딸인 정 선수도 다른 또래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ㅌ승마장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학부모·선수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많지만, 정윤회·최순실·정○○ 가족이 들어간 사진은 한장도 없다.
논란 속에서도 부모는 딸의 승마를 꿋꿋이 후원했다. 비록 지난해 7월 이혼한 부모이긴 하지만, 정○○은 정윤회씨가 41살, 최순실씨가 40살 때 본 늦둥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줄곧 ‘비선 실세’ 의혹이 제기돼 대중 노출을 삼갔던 정윤회씨도 딸의 경기 때면 승마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육영재단 분규 이후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최순실씨도 딸의 경기장엔 나왔다. 더러는 부부가 같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학부모들과 인사 정도만 나눈 뒤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다, 휴식 시간이면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이 딸의 컨디션을 챙기러 쫓아가곤 했다.
강원도 평창군의 땅(23만431㎡·6만9705평)도 딸을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엔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3 대 7 비율로 소유했다가, 2011년 이후 최순실·정○○ 모녀 5 대 5 비율로 명의 구성이 달라진 이 땅에 대해, 2012년 대선 직전 <오마이뉴스>는 정·최 부부가 2009년께 이곳에 말 목장을 지으려다 중단했으며 공사 중단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정씨가 대표이사인 회사 ‘얀슨’은 1994년 ‘승마장업’을 신고하기도 했다. 2013년에 만난 정윤회씨는 평창 땅의 용도에 대해 “내가 은퇴하고 가서 살려고 준비했는데, 거기도 언론에 나오고 하니까 못 간다”며 “내가 동물을 좋아한다. 소나 키우고 말이나 키우고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 선수는 지난해 9월 실시한 2015학년도 이화여대 수시전형에 승마 특기로 합격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수능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 전형이었다. 원서 접수 마감이 9월15일이어서 닷새 뒤 20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의 금메달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가 졸업할 예정인 서울 청담고 쪽은 “다른 학생들처럼 모두 6곳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이대를 포함해 2곳에 합격했다”며 “아시안게임이나 전국체전 참가와 관련해서 승마협회의 요청 공문에 의해 결석한 것 빼고는 모두 학교에 출석하는 등 특혜를 받은 것도 없다”고 밝혔다.
앞으로 계속 승마할지는 불투명
그러나 항간에는 그의 이대 입학도 각종 특혜로 얼룩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이대 사상 최초의 승마특기생’ 논란이다. 승마특기생의 전례가 없다시피 한 이대가 왜 정 선수에게 처음 문을 여느냐는 의문이지만, 확인해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이대 쪽은 “1989년 승마 특기로 입학했다가 같은 해 9월 영국 런던에서 전지훈련 중 교통사고로 숨진 박훈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승마 특기가 처음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고 박훈 선수는 두산가 박용민 전 오비베어스 단장의 딸이다. 학교 쪽은 또 “재작년까지 8~9개 종목만 뽑다가 각계의 요구로 지난해부터 대한체육회 등록 44개 종목 가운데 단체전을 뺀 23개 종목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선수는 수시 합격생들이 입학 의사를 못박기 위해 납부하는 예치금 50만원도 낸 것으로 보아, 2월 초 정식 등록한 뒤 3월엔 이대 건강과학대학 체육과학부에 정식 입학할 전망이다.
한껏 대학생처럼 멋부리며 새로운 삶에 빠져들고 싶어할 때이건만, 지난해 11월 말 아버지 정윤회씨에 대한 ‘비선 실세’ 의혹이 불거진 뒤 딸은 종적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대가 예비입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각종 프로그램에 전혀 등록을 하지 않았고, 승마장 쪽 얘기로는 휴대전화 번호마저 바꾼 채 발길을 끊어버려 훈련도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딸 정○○의 말을 관리했던 독일인 코치 부부도 ‘휴가’를 이유로 동남아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관련 사건 직후부터 딸은 어머니 최순실씨와 함께 국외에 머물고 있다는 등 소문만 무성하다. 이 상태로는 과연 승마를 계속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겨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정윤회씨 및 최순실씨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정씨가 지난해 12월2일 전화통화에 한 차례 응한 뒤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