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의도 정치를 바꾸겠다는 의지에 있어서만큼은 하나같이 단호했다. “잘난 정치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정치를 하겠다”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부산 초량동의 한 중국집에서 이뤄졌다.
-소감이 남다를 텐데 이번 부산의 선거 결과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김영춘 “부산 시민들이 새누리당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독립선언을 한 것이라고 본다. 부산에 와서도 부산 시민들이 언제쯤 바뀔까 하는 답답함도 있었는데 역시 시민들이 위대하다. 전혀 안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변화의 에너지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전재수 “이번 선거는 니네 서로 경쟁 한번 제대로 해보라는 시민들의 명령이다. 부산 시민들이 강고한 지역주의 벽을 허물어주셨는데 두세 석을 주고 경쟁해보라고 하기에는 적은 것 같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홉 석 열 석을 주기에는 과한 것 같고, 그래서 다섯 석이 아닌가 싶다. 굉장히 절묘한 의석이다.”
-박재호 당선자는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 같은데.
박재호 “세 번 출마할 때마다 시민들이 나한테 40%가 넘게 표를 준 게 생각났다. 처음에는 원망도 들었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조금 더 잘해서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시민에 대한 미안함과 집사람에 대한 미안함에 선거운동 기간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 어쨌거나 이번 선거는 우리가 잘한 게 아니고, 새누리당이 너무 잘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겸손하지 않으면 이번 일이 무산될 수 있다.”
고 서석재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박 당선자는 ‘바보 노무현’에 반해 상도동계를 떠나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는 17대 총선(2004년)부터 시작해서 남구에서만 네 번째 출마였다. 거듭된 그의 낙선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던 부인은 지난해 11월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숨지기 전 “4년 전 그때처럼 내가 곁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며 “부디 힘내서 내년 봄에 나를 찾아올 때는 기쁜 소식 기대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전멸 위기 딛고 5명 당선
김영춘, “부산시민이 독립선언”
“한 표 차라도 이길 것 느껴”
최인호 “저는 2002년에 첫 출마 한 뒤 이긴다는 출구조사가 나온 지 세 번째 만에 당선됐다. 그동안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한 표 차라도 이긴다는 느낌이 왔다. 밑바닥 주민들에게 받는 체감온도가 그랬다.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크지만, 이번에 부산에서 야당에 다섯 석을 준 것은 선거혁명이다. 지역주의를 허물고 선진적인 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는 기틀을 시민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한 최 당선자 역시 200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부터 시작해서 이번이 4번째 출마였다. 그는 거듭된 낙선에도 부산을 떠나지 않고 15년 동안 지역구 골목골목을 누볐다. 이 때문에 ‘승학산 산신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김해영 “저는 아무런 경력이 없는 30대의 정치신인이고 상대는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재선의 각료 출신 친박 핵심이었다. 그럼에도 연제 주민들이 저를 선택한 것은 이제는 부산이 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또 정치의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인 듯하다. 제가 첫 출전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많은 선배님들이 도전하신 결과라고 본다. 선배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김영춘 “저렇게 겸손하니까 당선됐다.”(일동 웃음)
김해영 당선자는 어릴 때 고모집에서 자라면서 가출과 방황을 일삼아 고등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한 ‘흙수저’ 출신의 젊은 변호사이다. 고교 때는 직업반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김 당선자는 1년 반 전에야 더민주 연제지역위원장을 맡았지만, 그동안 모든 경로당을 두 번 이상씩 돌 정도로 지역을 훑었다. 젊고 겸손하다는 주변의 평은 그의 주요 강점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분들도 이번에는 당선될 것이라고 스스로는 예상했나?
전재수 “선거운동 기간에 엎치락뒤치락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대충 민심의 흐름을 알았다. 악수할 때 상대방 얼굴 근육에 나타나는 미세한 흔들림도 잡아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면 그런 것을 알 수 있다.”(웃음)
참여정부 때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 당선자 역시 2006년 지방선거 때 구청장 도전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18대·19대 총선에 이어 4번째 도전이었다. 선거가 없는 중간에 사업에 뛰어드는 등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그도 지난 10년간 부산을 ‘디비기’ 위해 지역에 올인했다. 그의 명함 직함은 ‘이웃사람 전재수’이다.
박재호 “새누리당 공천 파동이 있은 직후에 중소기업 대표 보수적인 분들과 악수할 때 느낌이 다르더라. 과거에는 악수를 건성으로 했던 분들이 ‘이제 새누리당은 안 찍는다, 대신에 너그도 아직 안 찍겠다’고 얘기하는데 우리가 조금만 더 잘하면 우리 쪽을 찍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새누리당 ‘살려주이소’ 안 먹혀
-김해영 당선자를 빼고는 모두 세 번 이상씩 도전하는 등 오랫동안 바닥을 훑었다. 좋은 성적을 낸 것은 후보 개개인이 땀을 흘린 결과로 보이는데?
김영춘 “선거 결과는 모든 것의 종합이다. 부산시민들의 고단한 삶의 현실이 새누리당에 대한 불만을 안으로 키워왔다. 그런 상황에서 오만한 공천 파동이 분노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했다. 거기에 당이고 뭐고를 떠나서 저 사람은 고생도 오래 했고 사람도 괜찮으니 찍어주자는 마음이 들게 하는 후보, 즉 대안이 있었다. 이런 모든 게 결합해서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전재수 “새누리당은 이번에 격전지를 중심으로 살려주이소를 외쳤다. ‘우리가 남이가’의 21세기판 버전이었다. 그런데 이게 전혀 안 먹혔다. 내가 고교 때 부산 인구는 43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330만명이다. 100만이 줄었다. 첫 출마인 2006년 선거 때 덕천로터리에서 아침 7시에서 9시까지 명함을 돌리면 5천장이 나갔는데 지금은 같은 장소에서 2천장밖에 안 나가더라.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일자리가 그만큼 준 것이다. 먹고살 만할 때는 ‘우리가 남이가’ 하면 남이 아니니까 여당을 다 찍어줬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면 ‘이자들 봐라, 내가 이리 힘든데 너그들이 뭐 했는데’ 하면서 폭발했다.”
박재호 “저는 남구에서 나를 좀 살려주이소 했다.”(웃음)
전재수 “저도 상대 후보가 막판에는 전재수가 동정표를 구걸하고 다닌다면서 공격하더라. 그러나 동정표야말로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표라고 생각한다. 동정표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나오기 때문이다. 첫째는 저 사람은 사람이 됐다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 백번 떨어져도 사람 됐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절대 발동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자기가 손해보고 희생당하는 줄 알면서도 일관되게 한길을 걸어가야 한다.”
박재호 “맞다. 진실성이 있어야 유권자들이 알아준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하는 정치가 진정한 정치다. 각자 입지전적인 사연도 있고, 동정받을 만한 성실성도 있었고, 또 지역을 오랫동안 지키면서 골목골목을 다녔기에 이뤄진 결과라고 본다.”
과거 야도였던 부산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여당이 된 뒤부터는 여도로 바뀌었다. 전국적 스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부산시장 등 세 번이나 부산에서 도전했지만 거듭 외면당했다. 지역 관리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경태 의원이 17대 때부터 야당 간판으로 세 차례 당선되고, 문재인 의원도 19대에 당선됐으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였다. 정통 야당 의원이 복수로 당선된 것은 13대 총선(1988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지역주의 허물어질지는 지켜봐야
-이번 부산 선거 결과는 지역주의에 구멍을 뚫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둑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본다. 드디어 부산 시민들이 변한 건가?
박재호 “그 정도는 아니고, 이런 얘기는 하더라. 이제는 사람 보고 찍겠다, 대신에 너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겠다고 하더라. 대단히 무서운 말이다.”
최인호 “지역주의가 허물어지는 단초는 맞는데 이게 구조화될지는 더 봐야 안다. 지역주의란 상대적인 측면이 있으니 수도권과 호남 등 다른 지역의 움직임도 유심히 봐야 한다. 이번에 국민의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전략을 편 게 영남에서 우리 당을 편하게 만든 면이 있었다.”
김해영 “저도 첫 출전이지만 사실은 1년6개월간 연제를 몇바퀴 돌 정도로 발로 뛰었다.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모두 지역밀착형이다. 그런데 비례대표에서는 우리 다 10%포인트 정도씩 새누리당한테 졌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과감하게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젊었기에 지역민과 스킨십하는 데 오히려 유리한 것도 있었다. 겸손하게 다가가면 된다.”
김영춘 “김 당선자는 박재호나 전재수처럼 서너 번 안 떨어져도 국회의원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만 됐으면 최소한 한 10년씩은 노력해야 하는구나 하고 도전자들이 힘 빠질 텐데 김 당선자의 당선을 보면서 사람들이 힘을 얻을 것이다.”(일동 웃음)
-야당 험지인 부산에서 10년씩 버틴 힘이 무엇이었나?
최인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빚도 있었지만, 원래 정치를 지망했던 사람이기에 가능했다. 지역주의를 허무는 과정에서 언젠가 한번은 당선시켜줄 것이라는 시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전재수 “저는 진짜 방황을 많이 했다. 사업을 했다가 싹 다 말아먹고 내가 이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회의하는 등 방황하기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내 심장이 벌렁벌렁거리는 일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사업이 아니라 이웃들 삶 속에 있는 것이고, 대중들 속에 있을 때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2013년에 서울생활 20여년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가족들 다 데리고 내려와서 몰입했다.”
박재호 “전 당선자가 방황할 때 ‘야, 니 다음에 된다, 왜 방황하냐’고 내가 꾸짖기도 했다.”
전재수 “재호 형님이 저를 격려하기도 했는데 그런 게 큰 힘이 됐다.”
김영춘 중심으로 팀워크 형성
국민삶 앞세운 생활정치 강조
“모두가 ‘공범’, 같이 여기까지 왔다”
-대구는 사실상 김부겸 당선자 홀로 뛰었다면 부산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 것 같다.
박재호 “맞다. 우리는 끈끈하다.”
김영춘 “부산은 그런 면에서 대구와는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죽 쌓여온 것도 있다. 제가 작년에 시당위원장을 안 맡으려고 도망 다닐 때 박재호 위원장이 ‘니만 되려고 그러나, 같이 좀 되자’고 윽박질러서 할 수 없이 맡았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었고, 같이 여기까지 왔다.”
전재수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저희가 어떻게 왔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등이 간 길이 있었고, 그들이 없는 길에 미세한 흔적을 내놓은 것이 있었기에 우리가 따라올 수 있었다. 우리 앞의 많은 분들이 희생하고 눈물과 땀을 흘린 덕이다.”
김영춘 “다른 사람은 내가 부산에 와서 얼마나 고생스럽겠느냐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고향에 와서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서울에서 국회의원 할 때보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충만했다. 물론 어떤 단체 행사에 갔는데 주최 쪽이 나를 소개조차 안 했다. 보다 못한 구청장이 축사 도중에 소개해주는 등 서울에서 경험하지 못한 대접도 받았지만 나는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꿋꿋하게 활동했다. 언젠가는 꽃이 필 거다, 부산 사람들이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다.”
박재호 “나는 이번에 된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안 했고, 무엇보다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욕망이 더 컸다. 떨어지더라도 지난번 경우에 비춰 보면 이번에는 47~48% 정도는 표를 안 받겠나, 나이가 있으니 나는 이것으로 끝내도 다음 사람이 이어받을 수 있으니 의미가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
부산 당선자들은 하나같이 지난해부터 부산 사령관(시당위원장)으로 일했던 ‘김영춘의 힘’을 높이 평가했다. 김 당선자는 서울 광진갑 재선 의원(16·17대)과 야당 최고위원 등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2011년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다. 지난해 부산시당위원장을 맡은 그는 단지 얼굴마담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정치사상 처음으로 시당의 자체 연구소(오륙도연구소)를 만들어 맞춤공약 100개를 개발하는 등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선거운동을 현장 지휘했다.
-내후년 지방선거, 나아가 다음 총선에서는 더 많이 당선될 자신이 있나?
김영춘 “부산에서 독립유권자층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다. 야당 찍어도 일을 잘하는구나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우리 당이 새누리당과 부산에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상태로 한 단계 우뚝 설 수가 있을 것이다.”
박재호 “유권자 대다수가 싸움하지 말라, 상대가 잘한 것은 잘한다고 인정해주라고 한다. 국민의 삶을 더 낫게 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서 경쟁해야 다음에 다시 평가받을 수 있다. 한번을 하더라도 소신있게 하면 내가 안 되더라도 다음에 누군가 다시 뜻을 이어서 하지 않겠나.”
전재수 “정치를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안 한다. 나는 언제든 홀연히 떠날 각오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다. 그다음은 유권자가 판단할 것이다.”
-다들 국민의 삶을 좋게 하는 생활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부산 당선자들의 과거 경력 등으로 볼 때 친노, 친문 아니냐는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인데.
김해영 “저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장을 하면서 신문 정치면을 읽기 시작했을 정도다. 문재인 전 대표와의 인연은 실무수습 때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 것이다. 그때도 공익변호 활동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그게 고마워서 문 전 대표가 대선에 나갔을 때 부산에서 도왔다. 연제구 지역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문 전 대표 때문이 아니다. 사고 지역으로 1년 이상 비어 있던 곳을 지역당원들이 ‘우리가 열심히 도와줄 테니 해보라’고 집요하게 설득해서 받아들였다.”
최인호 “정당에서는 가치나 신념에 따라서 계파가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저희가 당선되고 여소야대를 만든 국민의 뜻은 한수 높은 정치를 해보라는 주문이다. 당 내부에서부터 어떻게 계파적인 다툼이나 계파 프레임에 빠져들지 않는 정치를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그런 면에서 말조심해야 한다. 제1당으로서의 당 위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책임감을 고도로 느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견제도 중요하고 대정부 투쟁도 중요하나 어떨 때는 대통령 숨통도 틔워주고, 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하게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전재수 “나는 친노가 맞다. 다만 견고한 지역주의에 맞서 도전하고 깨지고 도전하고 깨졌던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친노다. 그러나 언론에서 당내 역학관계상 분류하는 친노라면 나는 거부한다. 특정 대권주자의 측근이나 대변인, 호위무사, 혹은 유력 정치인의 측근이라는 얘기를 들으려고 4번 선거에 도전한 게 아니다. 정치 안 하면 안 했지 그런 짓은 안 한다.”
박재호 “서민을 위한 충심을 갖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했지만, 누구 계보니 아니니 하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다.”
-말을 듣고 보니 새로운 부산파의 탄생, 김영춘을 따르는 김영춘파인 거 같다.
전재수 “김영춘 계보라면 받아들이겠다.”(웃음)
“서병수 시장 왜 자꾸 문제 키우나”
-부산영화제가 현안인데 해법이 있나?
김영춘 “영화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은 관객이 할 일이다. <다이빙벨> 작품에 진짜로 문제가 있다면 관객들이 지적을 하고, 집행위를 비판해서 다시는 그런 일 안 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시청이 예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개입해서 검열을 하고 그러는가. 부산영화제는 초대 민선시장인 문정수 시장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결단과 원칙으로 키운 것이다. 부산의 큰 자산이다. 이게 망가지거나 훼손이 되면 시민들 손해다. 서병수 시장이 왜 자꾸 문제를 키우는지 모르겠다. 집행위에서도 운영 과정에서 실수 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대화로 풀 수 있다고 본다. 적극적인 중재 작업에 나서서 영화인들이 안심하고 영화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래서 영화제가 안정화될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재수 “잘난 정치, 똑똑한 정치를 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들한테 손가락질받고 조롱받는 것은 잘난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정치를 하겠다. 슬퍼하고 외롭고 눈물 흘리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
박재호 “사람은 사람다워야 되듯이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되고,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되고, 기자는 기자다워야 된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다운 정치를 한번 해보겠다.”
김해영 “지역구 최연소 당선자로서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 힘없고 소외된 분들의 희망이 되도록 하겠다.”
최인호 “지역구 일도 잘하고 나라 일도 잘하는 실력 있는 의원이 되도록 하겠다.”
김영춘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위기상황이라고 말한 데 동의한다. 그런 위기가 현실화할수록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다. 따라서 지금은 국민이 위기인 상황이다. 보통사람이 열심히만 하면 아이들 공부시키고 가족 부양하면서 오손도손 살 수 있는 그런 사회, 조금 더 욕심부린다면 최소한의 노후대책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 작은 꿈, 소박한 꿈조차도 이루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됐다. 정치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