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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의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습..
사회

어버이연합의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습

[사회] 심종완 기자 입력 2016/05/02 00:53

[뉴스프리존= 심종완기자]  보수단체의 이번 사건은 크게 두개로 나눠지는데,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수억원대 거래, 이건 이미 언론 보도로 확인이 된 상태이다.  또하나는 청와대와 국정원 등의 어버이연합 관제집회 배후 의혹 등, 두 부분 모두 검찰의 수사대상이다.



이른바 애국운동 진영, ‘아스팔트 우파’ 활동을 10년 넘게 해온 인사들은 어버이연합을 이끄는 실질적 중심인물은 추선희 사무총장이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갑자기’ 나타났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첫 활동무대가 ‘네구연’이었다. 2005년 12월 30일 출범한 이 단체는 4명의 공동대표 체제였지만 중심인물은 서울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한 김병관 대표였다. 김 대표는 피트니스클럽, 웨딩부페 등을 해온 사업가다. 네구연은 단체인 동시에 인터넷 카페다. 지금도 포털 ‘다음’에 개설된 카페가 남아 있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정식 발족했다. 이강성씨(84)는 어버이연합의 초대 회장이다. 그는 4월 29일 기자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추선희는) 재향군인회 김병관이 데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젊은 사람인데, 자동차도 있으니까 어버이연합 일을 함께 하면 좋겠소’라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전 회장에 따르면 초창기의 어버이연합은 지금의 어버이연합과 달랐다. “시작은 나라사랑 노인회였다. 내가 그 단체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종묘 정문에 들어가 보면 장기를 두는 패들을 지나 우측 솔밭에서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었고, 가질 능력도 없었다. 플라스틱 의자들을 가져다놓고 강연을 들었는데, 언젠가는 종로구청에서 그걸 싹 걷어가 다시 찾아오는 소동도 있었다. 까놓고 말해 거기 모이는 노인들이 눈도 어둡고 귀도 안 들리고 문맹률이 70~80%가 넘었다. 그런 사람들이 낮에 막걸리 먹고 걸핏하면 패싸움이나 하니,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우리 노인들도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자고 해서 신문을 읽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모임은 점점 발전했다. 연사들도 초청해 강의도 들었다. 결국 사무실도 마련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이뤄진 강의는 연사 초빙료는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 문제로 추선희 총장과 대립했다. 노인들 급식에 들어가는 돈도 돈이지만, 연사들 수고비 정도는 챙겨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추선희 총장의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기자가 ‘추선희’라는 인물을 주목하고 처음 취재를 한 것은 2008년 6월쯤이었다. “노인들이 일당을 받고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이들이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반대시위에 나올 때부터 제기된 것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가장 억울해했다. 집회에 나오는 어르신들은 10원 한 푼 받지 않으며, 용역도 아닌 ‘시민단체의 정체성’ 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가스통 할배=어버이연합’ 등식에 대해서도 억울해했다. 시위의 도구로 가스통을 등장시킨 것은 어버이연합이 아니라 HID 특수임무수행자회였다. 어버이연합은 ‘병맛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Old Soldiers naver die’(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의 never를 naver로 잘못 표기한 것) 피켓, 그리고 2011년 벌인 ‘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퍼포먼스가 회자되었다. 노란 옷을 입고 노무현 가면을 쓴 어버이연합 회원이 마이크를 잡고 “내가 추진한 한·미 FTA를 네놈들이 반대하냐”며 당시 야권 주요 인사들의 가면을 쓴 회원들을 관으로 끌고 들어가는 퍼포먼스다. 추 총장은 2010년 5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보수 속의 진보가 될 테니 정 기자는 진보 속의 보수가 되라”며 자신도 “1980년대 후반 성수동의 마찌꼬바를 전전하며 노동운동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수지역에서 활동한 당시 동부 금속노조 관계자 김정식씨는 “80년대 후반이면 가명으로 활동할 때가 아니었다”며 “남성으로서는 특이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들었으면 기억할 텐데 전혀 기억에 없다”고 밝혔다. 2012년 3월 인터뷰에서 추선희씨는 자신의 전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제주도에서 13년을 살고 올라왔다. 2000년대 초반쯤에 4·3 피해자라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우리가 살던 데가 중산간이라는 곳인데, 해안지역보다는 높은 지대라 당시 진압군은 식량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소개작전을 폈다. 진압군에 의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사람도 있지만 경찰 가족이라고 인민재판을 당해 죽은 사람도 많았다.”

보수단체 인사 ㄷ씨는 “추선희씨가 주도한 ‘튀는 퍼포먼스’는 반핵반김정일운동본부 박찬성씨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보수단체의 특징을 꼽는다면 어디서 다 한 자리 하던 사람이다. 체통이 우선되는 사람들이었다. 어버이연합이 돋보이는 것은 행동력이었다. 사실 추선희씨가 연설하는 것을 상중하로 나누면 하급이다. 그래서 피켓이나 퍼포먼스 같은 데 더 치중했는데, 박찬성씨가 그런 퍼포먼스의 귀재다. 추선희씨가 회장님, 회장님 하며 박찬성씨를 따랐다. 피켓이나 플래카드뿐 아니라 로켓 모형 같은 것도 잘 만들었다. 박찬성씨도 누구 들러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독고다이’ 성격이라 결국 맞지 않아 갈라섰지만….”

‘아스팔트 우파’로 분류되는 많은 사람들이 어버이연합을 거쳐 갔지만 결국은 다 등을 돌렸다고 이 인사는 주장했다. 어버이연합 특유의 극단적 과격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한 활빈단 홍정식씨는 “인터뷰 후에 어버이연합 사람들에게 ‘<주간경향>에 왜 나왔어. 너 빨갱이야? 빨갱이 신문에 왜 나와’라는 폭언을 들어 그 뒤로 아예 상종을 안 했다”고 말했다. ‘아스팔트 우파’의 상징적 인물인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는 추 총장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기사를 썼다. 서 본부장 측이 대북전단 활동에 뛰어들었는데, 그 자금이 일본 극우세력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실제 서정갑 본부장 등과 활동한 일본 측 니시오카 쓰토무는 위안부 부정, 새로운 역사교과서 모임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사였다. 추 총장 등은 역삼동의 국민행동본부 사무실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주간경향> 883호 ‘대북전단사업 일본 인사 참여두고 논란’ 기사 참조)

4월 25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어버이연합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지금 나온 돈만 하더라도 다 합치면 얼추 10억 가까이 되는데, 그 돈이 다 어디 갔다는 말인가. 추선희가 구속되면 어버이연합도 끝난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1인 조직이었으니까.” 그는 “박원순이 (보수우파의) 모델이 되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박원순은 이쪽(보수우파) 진영에서도 돈 모으는 데 벤치마킹해야 할 전설이다. 그렇게 했어야 한다. 유치하게 기업들을 협박해서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재단을 만들어 고상한데 쓴다고 돈을 모았어야 했다. 우리가 순진했다.”

어버이연합에 참여한 ‘어버이’들. 노인들은 정말 일당을 받고 움직였을까. 지난 8년간 취재하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이었고, 또 어버이연합 쪽에서는 가장 민감해 하는 부분이었다. 추선희씨 등 돈과 관련된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참여한 노인들은 일당과 무관했다는 것이 보수운동판 인사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앞의 ㄴ씨의 말이다. “노인들은 지하철이 공짜다. 집에 있으면 무료하니 마실 삼아 종로 사무실로 나온다. 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강의가 1시에서 2시에 있는데 딱 점심 대접받고 듣기 좋은 시간이다. 밥을 공짜로 줬는데, ‘어디 가자’ 하면 안 가겠다고 빼는 사람은 없다. 지하철이 공짜니 대부분 집회장소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가다가 지하철에서 빨갱이짓 하는 사람, 삐라 나눠주는 사람 발견하면 혼내주기도 하고…. 고함 지르면 정신건강에도 좋고 ‘으샤으샤’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전경련이 줬다는 몇 억? 누군가의 아가리에 들어 있겠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곧 5월 8일이 어버이날인데, 어버이라는 게 이번에 아주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나도 어버이인데 씁쓸하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시인하고 법적인 처벌을 받을 일이 있다면 달게 받는 것이 옳다.”

어버이연합의 활동이 추선희 사무총장 개인이 좌지우지하는 단체라는 데는 거의 대부분 보수 쪽 인사들의 시각은 일치한다. 이번처럼 탈이 난 데는 어버이연합의 외연이 확대되면서부터다. 박완석 어버이연합 부총장은 과거에는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외대연대) 간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했었다. 어버이연합으로 들어와 활동을 하다 2014년 10월 뉴코리아여성연합 이소연씨(탈북자) 등과 함께 한겨레청년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불법체류자 반대’ 운동과 어버이연합의 활동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박 부총장이 어버이연합에 합류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ㄹ씨는 “한 단어로 말하면 돈”이라고 말했다. ‘돈이 되는 판’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박 부총장은 현재 어버이연합 쪽을 떠나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씨 병역비리를 주장하는 우파단체 쪽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선희 총장과 박 부총장은 여러 차례 연락을 했으나 닿지 않았다.

ㄹ씨는 나중에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와 이렇게 말했다. “우파의 사정을 폭로(?)한 것에 대해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자정의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다. 돈 문제와 관련한 한 좌파나 우파 단체나 자유로울 수 없다. 어버이연합이나 추선희 총장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럴까. 4월 29일, 자유교육연합 등 28개 단체는 ‘건전한 공익활동에 참여하는 우파풀뿌리시민단체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보내 왔다. 성명에서 이들은 “‘어버이연합’은 공익활동을 주로 하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다”라며 “시민을 위해 공익활동을 하는 건전한 시민단체를 ‘어버이연합’과 같은 단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행위가 과연 공정함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자세인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추선희 총장 개인에 대한 비난도 눈에 띈다.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처신 또한 질책 받아 마땅하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이 시민단체들 다 걔(행정관) 손에 의해서 움직이는 건 맞지“라거나 ”자기네들끼리도 경쟁이 붙었으니까“라고 답했다는 녹취도 경솔하고 어이가 없다.(…) 이런 자질의 사람이 우파단체의 집회를 이끌고 있으니 이런 사단이 나는 것이다.” 이들은 언론 보도에서 기존 ‘좌파’ 시민단체 지원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과거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아온) 좌파 시민단체에는 면죄부를 부여하고 티끌만한 우파단체에 대한 과오를 보수·우파 전체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단체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 봤을 때 관련 법, 세법 등에서 하자 없이 투명하게 원칙에 따라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발한 것이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사무총장의 말이다. 경실련은 4월 21일, 어버이연합과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 측을 배임과 금융실명제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차명계좌를 통해 지원한 것이었고, 그랬을 경우 돈을 준 쪽, 전경련도 출처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총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경실련의 경우 기부금은 지정기부금 법인을 통해 받으며, 절차에 따라 신고한다. 불법자금을 받거나 차명계좌를 활용하지 않는다. 후원금의 경우도 10년 전부터 어떤 개인이나 집단, 조직도 1000만원이 넘는 돈은 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번 어버이연합 사건과 종전의 시민단체들과 다른 핵심적 차이는 그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게 운영되었느냐는 것이다.” 참여연대도 마찬가지다. 홈페이지조차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대부분의 보수단체와 달리 참여연대는 매달 수입·지출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수단체 인사들이 말하는 ‘피장파장 논리’는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한국대학생포럼에 전달한 어버이연합 후원금 출처는


어버이연합 추선희‘를 통해 들어온 돈은 어디로 흘러나갔을까. 이번에 공개된 계좌에 등장한 이름은 추씨와 추씨의 부인, 그리고 추씨의 아들 등이다. 어버이연합 측은 “노인들 점심 접대 재료비로 사용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해명했다. 과거 ’어버이연합‘이 후원금을 전달하는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다. 2011년 5월의 일이다. 한국대학생포럼이라는 단체다. 영상에서 후원금 액수가 얼마나 지출되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후원금은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거둬 마련한 것일까. 당시 이 단체의 대표인 윤주진씨는 4월 27일 “후원금 규모 등의 질문에 왜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대학생포럼의 행사 내역을 보면 2박3일 스키캠프 등의 행사에서 ’전경련 후원‘이라는 것이 또 등장한다. 현 대표를 맡고 있는 최세훈씨는 “전임 회장 때 일이고 아직 인수인계를 받지 않아 얼마나 후원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전임 여명 회장은 “수업 중이라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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