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극단 앙상블의 김진만 작 연출의 <다목리 미상번지>를 관람했다.
김진만(1969~)은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국문학과 출신으로 예술의전당 공연예술아카데미 극작 평론 수료, 제35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배우공모 대상 수상, 2인극 페스티벌 총감독, 딴짓축제 총감독, 현재 극단 앙상블 대표다.
<시집가는 날> <산타가 된 눈사람> <춘향전> <우중산책> <닐리리 맘보> <회심곡> <패러디 판타지아> <큐빅스 대모험> <집으로> <판도라의 날씨상자> <뮤지컬 국내성>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등을 발표 연출한 배우 겸 작가이자 연출가다.
<다목리 미상번지>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위치한 마을 집들을 통틀어 미상번지로 표현했다. 김진만의 희곡 <유년기>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제37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 작이 되었다. 연극의 배경은 1980년대를 전후해 다목리 미상번지 거주자들의 이야기다.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를 겪으며 우 편향이던 국민의 안목이 군부독재를 거치며 좌편향 안목으로 변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한국의 1980년대 정치상황은 쿠데타에 이은 오랜 군부독재가 계속되고, 군부 쿠데타 주역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구국, 애국, 민주 따위로 숭고함을 가장했지만, 이후 행적은 저항세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말살로 이어진다. 특히 예술작품에 대한 몰이해와 작위적 검열은 정통성 없는 독재 권력의 부정할 수 없는 자기표현이었다.
민중가요는 문화운동의 한 부분이었고 대학과 노동자가 연대하는 가운데 종국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역량이 결집되었다. 운동의 중심축은 대학가 운동권과 참여적인 예술인이었고, 이들이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이나 집회에 참여해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던 아마추어 대학 동아리에서 기성 대중가요를 극복하고, 민족적 음률을 찾아 당대의 민중적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마추어리즘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민중가요는 대중가요와 이분된 하나의 양식으로 존재했을 뿐 대중의 일상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5월의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80년대 대학가에서 가장 많이 불린 운동가였지만, 원곡은 프랑스의 유명 한 샹송 가수 미셸 폴라네프(Michel Polnareff)가 1971년 작사 작곡한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이고, 그 노래들이 6 25을 겪은 세대에게는 북의 군대의 군가나 행진곡과 흡사해 불쾌한 느낌이 들어 외면을 하게 되고, 향후 좌편향 정치가나 운동권에서만 부를 뿐 대중들은 현재까지도 외면하고 있는 상태다.
<다목리 미상번지>는 바로 1980년대를 전후(前後)해 강원도 다목리의 상황을 주인공 소년의 시각으로 그려낸 연극이다.
무대는 다목리 미상번지를 상 하단의 언덕으로 제작했다. 상단의 언덕길과 좌우 내리막길 그리고 무대 앞쪽의 대로 바닥에 수많은 드럼통을 가지런히 쓰러뜨려 눕히고 그 위에 단을 깔아 통로로 설치했다. 끈으로 드럼통 상단을 끌어당겨 주인공 소년의 평지에서의 각종 병 줍기, 두릅을 캐기 위해 산 정상을 향할 때의 언덕길로 설정하고, 언덕 상단 상수 쪽에는 마을 공동 안테나가 높다랗게 설치되고, 상수 쪽 하향 길만 바닥에 드럼통이 없다.
무대 하수 쪽 중앙에 의자를 놓아 마을 할머니의 자리로 마련을 하고, 공동 목욕탕은 상단 아래 지하에서 오르도록 해 욕실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연출된다. 마을에서 기르는 가축은 연극 <에쿠스>에서처럼 가축머리부분형태의 조형물을 출연자들이 쓰고 등장을 한다. 밭을 갈 때에는 무대 중앙에서 삽을 들고 밭가는 시늉을 하고, 주인공의 삼촌이 시를 쓴 종이는 백지원지를 사용하고, 군인들의 총은 모형이지만, 총성은 실제와 방불하다.
극의 내용은 학교성적 늘 1등을 하는 주인공 소년이 다른 급우가 마을금고에서 저축 1위상을 타는 걸 보고, 자신도 그 상을 타기 위해, 세배 돈 모으기, 병 줍기, 질경이 캐기와 더덕 캐기를 하고, 아버지가 술을 한 되 받아오라고 시키면, 반 되만 사고 물을 채우는 방법으로 남은 돈을 챙기면서 저축 1위상을 받으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 그러다가 저축 상 시상이 있기 직전 마을금고 이사장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행방을 감춘다.
그러자 마을금고가 전국규모 새마을금고 다목리 지점으로 탈바꿈을 하고, 국가 기관원 출신의 이사장이 새로 부임을 한다. 새로운 이사장은 주인공의 급우이자 친구인 지난번 저축 상 1위를 받은 소년의 아버지이고, 실적을 쌓기 위해 전번 마을금고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을 옥죄고, 닦달을 하고,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군대까지 동원을 해, 채소농사 지은 것, 가축이 새끼 낳은 것까지 강제로 매각처분을 해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받아가며, 실적 쌓고 부풀리기에 열을 올린다.
밭농사와 가축을 기르는 게 전부인 마을 사람들 중 주인공의 삼촌은 시를 짓는 인물이라, 정식으로 시인이 되려는 마음을 갖고, 시를 쓴 것을 모아 시집을 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홀로 고독 속에서 명상으로 시 짓기를 하던 때와는 달리 세상과 부대끼며 시를 짓겠노라는 결심과 함께 가출을 한다.
1980년대로 너머서면서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주화의 열풍이 일기 시작하고, 광주사태가 발발한다. 광주에 계엄이 선포되고, 동리 안테나는 뉴스 수신을 제대로 못 하도록 마을 이장이 상부의 지령을 받았는지 조종을 해 놓으니, 다목리 사람들은 외부소식과 단절된다. 거기에 새마을 금고 이사장의 다목리 사람들의 쥐어짜기가 더욱 심해지면서 다목리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은 마치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부상을 당한 주인공 삼촌의 귀향으로 작금의 현실이 다목리 사람들에게 알려지니, 삼촌은 새마을 금고 이사장에 조처로 삼청교육대로 강제 끌려가게 된다. 애써 기른 가축을 강제로 처분해야하는 다목리 사람들의 정경이 펼쳐지고, 주인공의 부모가 기른 돼지 역시 마찬가지로 강제 매각이 된다. 주인공 삼촌이 삼청교육대에서 도망쳐 나오지만, 시집만을 남기고 탈주범으로 사살을 당한다.
대단원에서 새마을 금고 이사장은 혁혁한 실적을 쌓은 공으로 서울 본부로 영전을 하게 되고, 주인공 소년을 새로 부임한 새마을금고의 이사장으로부터 저축 1위상을 수상하고 기뻐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오현철, 이동준, 이태훈, 민경진, 박정순, 김귀선, 맹봉학, 지춘성, 김미준, 김대통, 류창우, 이계영, 윤미향, 윤차연, 김동일, 김효배, 조정민, 신담수, 김연진, 장용석, 손우경, 김재민, 홍도영, 이영민 외 세종대학교 학생 출연자와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학생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은 시종일관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터그 오세곤, 프로듀서 김진희, 협력프로듀서 이훈희, 제작감독 임 밀, 음악 김민수, 움직임 이신정, 무대 김태영, 조명 전진철, 의상 김인옥, 분장 김종숙, 조연출 예지수, 연출부 김원진, 김민지, 김예영, 음악팀 김미나, 홍보라, 이하늘, 분장팀 노저와 배옥자, 구나연, 오원석, 김정화, 박소현, 강은혜, 오지윤, 박태연, 이지연, 노가영, 고민지, 김인하, 김종연, 이지연, 김재희, 기획팀 김태형, 김은혜, 사진 하형주, 디자인 찰리김 해리안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드러나, 극단 앙상블의 김진만 작 연출의 <다목리 미상번지>를 연출가의 기량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뉴스프리존=박정기 문화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