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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맹렬 기자로 살아 온 서화숙이 부암동 마당에서..
기획

30여 년 맹렬 기자로 살아 온 서화숙이 부암동 마당에서 놀며 배운 행복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입력 2019/04/01 11:34 수정 2019.04.01 11:44
[신간도서] 나머지 시간은 놀 것

30여 년 맹렬 기자로 살아 온 서화숙이
부암동 마당에서 놀며 배운 행복

‘서화숙 칼럼’으로 문명을 떨친 한국일보 전 기자 서화숙이 맘껏 놀면서 살아보는 꿈을 부암동 마당에서 펼치고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32년 동안 기자로 살면서 일을 쉬어 본 적은 아이 셋을 낳고 주어진 출산휴가뿐이었으니, 노는 것은 그가 오래도록 갈망해 왔던 거였다. 돈 주고 사는 것들은 가급적 줄이고, 제철 식재료로 삼시세끼를 간소하게 챙겨 먹으며, 좋은 것은 직접 만들어 쓰면서, 소슬한 시골 숲길과도 같은 정원을 가꾸며 놀이와 삶이 다르지 않은 일상을 꾸려 가는 이야기가 경쾌하게 펼쳐진다.

부암동의 마당 있는 집에서 산다.
식물을 가꾸길 좋아하고 잘 키워서 마당에는 37가지 나무와 39가지 다년초, 7가지 덩굴식물이 자란다. 소슬한 시골 산길 같은 정원을 꿈꿔서 개쉬땅나무 팥배나무 참당귀 할미꽃 같은 토종식물을 많이 심었다. 북한산에서 받아 온 씨앗으로 키운 산초나무가 2미터 넘게 자라면서 귀한 긴꼬리제비나비를 마당에서 보고 있다. 동네 사람들, 지인들과 식물을 퍼 주고 나누며 산다. 동네 리사이클 가게에 헌 옷을 주고 씨앗을 받아 온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로 지냈다. 문화부장, 편집위원 등을 지내며 2005년부터 2014년까 지 ‘서화숙 칼럼’을 썼다. 2012년 서울교통방송에서 ‘서화숙의 오늘’을 진행했으며, 2013~2014년 국민TV 라디오에서 ‘서화숙의 3분 칼럼’을 방송했다. 당대의 수구세력에 대한 논리적이고 통렬한 비판으로 이름을 날렸다.

『나야 뭉치도깨비야』 『뭐하니 뭉치도깨비야』 『월화수목금토일 차분디르의 모험』을 쓴 동화작가이기도 하며, 『행복한 실천 』 『마당의 순례자』 『민낯의 시대』 『누가 민주국가의 적인가』를 펴냈다.

부암동의 킨포크 라이프

그에게 노는 것의 대부분은 마당의 식물을 가꾸는 일이지만, 5만 원짜리 중고재봉틀을 사서 원피스도 만들고, 마당에 지천으로 떨어지는 풋감으로 감물염색도 들이며, 술을 빚고 메주까지 띄워 본다. 나무 한 그루를 심기 위해 뒷마당의 시멘트를 거칠게 망치로 두들겨 깬다. 평생 펜만 쓰며 살아왔던 그가 몸을 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 오는 날을 그가 좋아하게 된 것은 정원 일을 할 수 있어서이다. 땀과 비에 흠뻑 젖도록 몸을 움직이고 나면 가라앉았던 기분도 좋아지고 뇌도 따라서 생기가 돋는다.

놀면서 지내다 보니 자신이 잘하고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돈과 직업이 매개되지 않다 보니 좋고 나쁜 취향을 분별하지 않게 되었고, 단점 또한 약점이 아닌 어떤 특성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행복은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가 아닌, 어떤 조건에서든 감사함을 찾을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식물과 함께 사람이 오다

엔지오 활동을 하는 저자의 친구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10년째 모든 일을 혼자서 한다. 택배를 부치려는데 물량이 너무 많아, 차를 빌리려면 써야 하는 4만5천 원을 아끼기 위해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짐수레를 끌고 우체국까지 혼자 다섯 번을 왕복해야 했다. 예순을 넘긴 여자가 눈발에 미끄러지면서 수레를 끌 때 아무리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누추한 기분만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날 만큼 힘들게 수레를 끌다 보니 매일같이 노동하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마쳤다고 한다.

이 친구는 식물을 참 잘 길러서 저자도 제라늄의 한 종인 구문초 화분을 얻었는데, 독특한 냄새로 날벌레를 잘 쫓는다고 구문초라는 이름을 얻은 식물이다. 실내에만 둔 화분을 봄이 되어 밖에 두었더니, 햇볕을 통으로 받은 구문초가 어린 새잎을 빼고는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을 지나며 보니 새로 난 잎은 아주 두꺼워지면서 향기도 더 진해졌다. 두꺼워진 잎은 쉽게 시들지 않고 더 많은 햇볕을 받아들여 더 강한 생명체로 커 간다. 저자는 구문초를 통해 행복 또한 갈고닦는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준 친구를 떠올린다.

그밖에도 ‘고고한 빛’이라는 뜻을 가진 고광나무를 통해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사는 친구를 소개하고, 여왕과도 같은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가졌지만 잡초처럼 강한 생명력이 있는 수선화를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한다. 식물에 특별히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꽃과 나무를 기르며 저자가 교유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인상적인 사건들을 통해 특정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타샤 튜더, 헤르만 헤세는 정원사였다

평생 아름다운 정원을 가꿨던 타샤 튜더는 92세까지 살았고, 빼어난 정원사였던 헤르만 헤세는 85세까지 살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정원사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살았다. 왜 그런 걸까? 정원을 가꾸려면 몸도 쓰고 머리도 써야 하므로 건강관리가 된다. 게다가 예쁜 꽃들을 보면서 즐겁게 하는 일이니 마음에도 좋다.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점검하려면 지난해보다 꽃이 더 피는지, 줄기는 잘 퍼지는지, 열매가 많이 달리는지 기억해야 하므로 기억력 감퇴를 예방해 준다. 토양을 탐구하기 위해 화학과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광합성을 위해서는 빛이 필수이므로 기본적인 광학 지식도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종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야 하고, 갖고 싶은 식물을 구하기 위해서 끈기 있게 정보를 탐색하고 발품을 파는 일도 마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장수 요인은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스스로가 오래 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슨 꽃이 어떻게 피나 궁금해서 내일을, 내달을, 내년을 기다린다. 올해 꽃을 못 보고 열매가 덜 달린 식물에는 이런 방법을 써 봤는데 그게 정말 맞았는지 내년에 다시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정원사이다.

바로 지금 여기의 축복을 누리는 삶

정원을 가꾸는 기쁨 중 으뜸은 향기를 누리는 것이다. 37가지 나무와 39가지 다년초, 7가지 덩굴식물이 자라는 그의 마당은 늘 향기로 가득 찬다. 마당을 가득 채우는 모란향, 인동덩굴향, 가까이 가면 느껴지는 찔레향 장미향, 멀리 있을 때 코끝을 스쳐 가는 참꽃으아리의 향, 대추나무의 매운 냄새, 회양목과 제비꽃의 분냄새 등 수많은 향기들이 정원의 선물이다. 인간의 두뇌는 모습이나 소리는 상상할 수 있어도 냄새는 상상해 내지 못한다. 오로지 맡을 때에만 실재하는 것이 냄새이다. 그래서 냄새는 꿈에도 안 나온다. 그러니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바로 지금 여기의 축복이 향기인 것이다. 저자 또한 평범한 인간이기에 여전히 과거의 일로 번민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지만, 꽃들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현재가 주는 축복만은 놓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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