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조양호 회장(70)이 8일 새벽 미국 현지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조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8일 주식시장은 장 초반 대한항공과 한진, 진에어 등 한진그룹 주가가 동반 강세를 보였다. 이날 시장은 무심하게도 조 회장의 별세를 '오너 리스크' 해소로 받아들였다.
재벌 총수 일가가 대를 이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직원들에게는 갑질을 서슴지 않는 전근대적인 경영 형태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로까지 이어지면서 대한항공의 주가는 그동안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한진그룹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의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유훈을 받들어 2세 경영을 펼쳤던 조양호 회장은 한진그룹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냈지만, 횡령·배임 혐의에 따른 재판과 가족들의 물의 등 우여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조양호 회장은 LA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으며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이 조 회장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원인은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언론에 "조 회장이 폐질환이 있어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중 대한항공 주주총회 결과 이후 사내이사직 박탈에 대한 충격과 스트레스 등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국내 총수 중 최초로 대한항공 경영권을 박탈당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는 등, 만년에 횡령배임 혐의에 따른 재판과 일가의 각종 물의로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
주주총회 당시 조양호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뉴포트비치 별장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든탑'도 내부의 가족 갑질 논란에 한순간에 '와르르'
일생이 부러울 것 없던 국내 유수의 재벌가 회장이 이국만리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수십년간 우리나라 굴지의 항공사 그룹을 이끌어온 그였지만 말년에는 일가족의 갑질 논란이 겹치면서 일생을 일군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고 검찰 수사를 통해 배임에 횡령 혐의까지 받고 경영권까지 박탈당하는 신세가 됐다.
최근 그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직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작년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이 결정타였다. 가뜩이나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는 한진 일가는 물컵 갑질이 다시 터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한몸에 샀다.
조현아 전 전무뿐만 아니라 아내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가족 일가의 또 다른 갑질을 비롯해 횡령과 밀수 등 범죄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성난 여론은 쓰나미와 같이 그룹을 덮쳤고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는 면허취소의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조 회장의 별세가 더욱 회한이 드는 것은 올해가 대한항공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경사스러운 해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물컵 갑질 이후 비난 여론과 검찰 수사까지 겹쳐 기념행사도 사내 직원들을 상대로 조촐히 치를 수밖에 없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출범한 이후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대표 '날개'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그 5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한항공이 1970년대 태평양과 유럽, 중동에 잇따라 하늘길을 열며 시장을 확대하고 19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로 지정돼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등 성장해 온 과정에서 조 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2000년대에는 국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Sky Team) 창설을 주도하는 등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공든 탑'을 무너트린 것은 전 세계를 뒤흔든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이었다.
2014년 큰딸 조현아씨의 땅콩회항으로 조 회장 일가의 제왕적 총수경영 체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조성됐다. 국민들의 뇌리에 땅콩회항이 아직 선명한 작년에 차녀 조현민 씨의 물컵 갑질로 다시금 대한항공의 가족경영 체제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이 같은 대한항공 일가의 사회적 물의가 한진그룹 전체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로 돌아왔다. 조 회장 일가는 물론, 한진그룹 주요 계열사들도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요 국가기관의 타깃이 됐다. 한진그룹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의결권을 강화하기로 한 국민연금의 첫 공격 대상이 됐다.
결국 항공 물류 신화를 써온 조 회장은 지난달 대한항공 주총에서 연임에 실패하면서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는다. 지난달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은 찬성 64.09%, 반대 35.91%로 부결됐다. 11.56%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과 20.55%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계 주주들이 연합한 결과다.
대한항공, 비상경영체제 돌입.. 이명희, 집안에서도 '갑' 조원태도 안심 못해
평균 수명이 늘어난 100세 시대에 70세라는 비교적 많지 않은 나이에 급작스럽게 타계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공석으로 회사 측은 고 조 회장의 한국 운구 준비 절차를 밟는 한편, 그룹 사장단을 중심으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한편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씨가 결혼 시작 때부터 한진가 내부에서도 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씨가 여러 차례 갑질을 행했던 것이 아니냐는 여러 추측이 잇따르고 있다.
이명희 씨는 고(故) 이재철 전 중앙대 총장의 장녀이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으로 슬하에는 장녀 조현아 씨와 장남 조원태, 차녀 에밀리 리 조가 있다. 이명희 씨의 부친인 이재철 전 중앙대 총장은 박정희 정부 당시 항공 정책을 총괄하던 교통부 차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1969년 당시 사명이 대한항공공사였던 대한항공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교통부 차관의 딸인 이명희 씨와 결혼을 하면서 대한항공공사는 그야말로 날개를 펴고 제대로 비상했다.
조양호 회장의 부친인 조중훈 회장은 대한항공공사 인수 후 사명을 '대한항공'으로 바꿨다. 항공 실세 교통부 차관 딸인 이명희와 조양호가 결혼한 이후 대한항공은 상승 기류를 탈 수밖에 없었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승승장구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렸지만, 말년에는 가족 갑질과 조 회장의 횡령·배임이 드러나 마침내 불명예 퇴진으로 영욕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은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씨의 갑질 논란과 폭행에 대해 "분노조절 장애아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희 씨의 딸 조현아 씨도 아들과 남편에 대한 막말 동영상과 땅콩 회항 등의 갑질 논란으로 대중들의 비난을 받은 가운데 대한항공의 경영을 승계할 이명희 씨의 장남 조원태 씨도 안심할 입장은 못 된다는 평이다. 모친인 이명희 씨의 영향을 받아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데서 대중들의 우려도 크다.
이날 조양호 회장의 별세 소식에 평소 오너 일가 퇴진을 강하게 요구해온 대한항공 직원들의 단톡방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글이 올라왔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오너 일가의 도덕성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조양호 회장은 우리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였던 것은 분명하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반면 경영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여전했다. 한 직원은 "조 회장의 빈자리는 외부 전문경영인으로 채워졌으면 한다"며 "이번을 계기로 진짜 달라진 대한항공의 모습을 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