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월 이전 생명보험사들은 자살로 인한 사망도 특별히 보험금을 추가 지급할 재해특약 사유에 포함시킨 상품들이 판매했다. 이른바 '자살 보험금' 특약이다. 그동안 이 보험의 가입자가 자살로 사망한 경우 유족들이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면, 보험사 측은 자살을 포함시킨 특약은 실수였다는 이유로 자살보험급 지급을 거부했다.
12일 대법원은 이런 보험사 측의 주장을 물리치고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이 생명보험사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 판결에 따라 그동안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버티다가 보험금을 지급해야할 사건만 2000억 원대에 이른다. 또한 자살보험금 관련 생보사의 보유계약은 현재 280만 건이 넘어, 과거 자살 통계를 감안하면 추가로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보험금은 1조 원이 넘을 수 있다.
교보생명 "대법원 판결 존중, 미지급 보험금 지급할 것"
이번에 대법원이 다룬 사건은, 사망할 경우 7000만 원, 재해사망 시 특약을 적용해 5000만 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생명보험 계약과 관련한 것이었다. 보험사는 주계약에 따른 7000만 원만 지급하고 재해 특약에 따른 5000만 원 지급을 거부했다. 자살은 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특약이 무효라는 주장이다.
결국 가입자의 부모가 보험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지리한 소송이 이어졌다. 1심은 재해특약 약관이 유효하다며 보험금 지급을 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 판결은 재해특약 약관이 무효라고 주장한 보험사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재해특약 약관을 무효라고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자살보험금을 특약 문구 그대로 전액 지급하라는 취지다.
재해특약의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진행된 소송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현재 계류 중인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보험사들은 앞으로 줄줄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전망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인 회사는 ING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동부생명, 알리안츠생명, 농협생명, 메트라이프생명, 신한생명 등 9곳이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교보생명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미지급 보험금을 지급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판결이 자살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현재 생명보험사들은 2010년 4월 이후 재해특약의 약관에 피해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나 특약 보장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자살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단서를 붙이고 있다. 이는 일반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약관에 들어 있는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