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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이젠 그가 할 수있는 것은 다했다...
문화

조영남, 이젠 그가 할 수있는 것은 다했다.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6/05/23 11:56
대작 논란, 사기죄 적용 안 되니 저작권법 위반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 받을 일인가

검찰이 조영남에 대한 저작권 수사를 기획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니 이제 이 말을 할 때가 된거 같다.

"조영남을 보내주자."

저작권의 원어는 copy-right이다. 즉 복제할(copy) 권리이다. 복제만 하지 않는다면 저작권침해는 없다. 용산에서 불법 DVD를 사서 보더라도 저작권침해가 아닌 이유이다.

그걸 절대로 장려하는게 아니라 법이 그렇다는거다. 저작권법은 타협이다. 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해서는 창작자들에게 무언가 독점권을 줘서 동기부여도 해야하지만 동시에 타인들이 창작물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똑같은 책/파일을 하나 더 만든다거나 (복제)크게 확대하여 여러 사람이 같이 보게 한다거나 (전시) 여러 사람 앞에서 내용을 시간적으로 펼쳐보인다거나 (공연) 여러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여준다거나 (방송) 하는 경우처럼 '창작물을 향유하는 물적 조건을 확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창작자에게 독점권을 주되 창작물의 향유 자체는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유일하게 업무상 이용이 법률위반으로 정해져 있는데 매우 이례적이다.)

조영남은 대작 화가가 그린 그림을 그대로 팔았다. 여기에 어떤 종류의 복제(copy)행위도 없으니 저작권 침해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사진을 찍거나 다시 복제해서 팔았다 할지라도 대작 화가가 돈을 받고 그려줄 때 그 정도의 허락은 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20111년 6월 광주에서 첫 개인전을 열엇던 가수 조영남씨가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열린 `畵手 조영남 회화 45년-자유로운 영혼의 반항아 일기'전 개막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저작인격권을 말하는 것일까? 저작인격권은 창작물에 어떤 행동을 취해서 창작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법적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법리인데 예를 들어 내가 쓴 책을 누가 내 앞에서 발로 쾅쾅 밟으면 내 기분이 안 좋아질 수도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물론 그것까지 저작인격권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고 저자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거나(성명표시권) 작품을 너무 변경해서 창작의도를 무산시켜 버린다거나(동일성 유지권) 등으로 한정된다. 문제는 대작 화가가 돈을 받고 그려줄 때 변경을 한다거나 자신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저작권 수사는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다.

화가가 밑그림 수준의 콘셉트를 잡았다면 그 실현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그게 문제라면 3D렌더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컴퓨터 그래픽을 만드는 사람들도 다 문제가 될 것이다. 위임의 정당성은 분야마다 다르고 ‘하청’의 정도마다 다르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재판관 이름으로 나가지만 재판관들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아도 문제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트윗을 나는 거의 오바마 아닌 다른 사람이 썼을거라고 믿는다. 반면 25년전 밀리 바닐리같이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음반녹음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또 '장군의 아들'에 나온 당시 무명배우 황정민의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서 성우로 더빙을 했던 건 문제가 없다.

디자이너는 재봉질을 거의 하지 않지만 패션쇼는 온전히 디자이너 한사람의 행사이다. 셰프도 칼질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요리라고 주장함에 있어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물방울 연작으로 유명한 김창열씨가 처음 물방울 구현법을 터득한 후 물방울 구현은 모두 조수에게 맡기고 그이후로는 컨셉만 잡았다고 해도 물방울 연작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붓질, 칼질, 재봉질의 위임이 넓게 허용되는 것은 무언가 더 단순한 차원의 노동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인가?

그런 단순화된 위임이 불가능한 문학 분야는 어떨까? 사실전달이 주목적인 자서전 같은 경우 대필을 해줬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많이 돌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상당히 있다. 번역, 시, 소설처럼 표현 하나하나가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대필은 절대로 용납되진 않는다. 중간정도인 사회과학 서적의 경우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무리 깊이 개입해도 편집자의 이름을 적지는 않는다.  

“학교 과제도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위임해도 되는거냐”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분야가 완전히 다른거다. 교육평가 분야에서 위임은 인정되지 않으며 그건 윤리적인 이유때문이 아니라 교육평가라는 분야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조영남이 조수에게 위임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였을 경우 사기 등으로 문제삼을 수도 있겠다. 포샵을 안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사진사와 같은 문제이다. 물론 ‘조영남이 자신이 100% 그렸다고 말해서 샀다, 아니라면 안 샀을 것’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사기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극명한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정황이 있다면 검찰이 저작권 얘기를 언론에 흘릴리가 없다.

대놓고 거짓말은 안 했어도 스스로 그렸을거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묻어갔다면? 우리는 그렇게까지 세세한 정황을 찾아내서 조영남을 단죄하기에는 그의 예술활동에 제대로 된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가 소위 ‘아트테이너’들의 페르소나를 소비하는 방식은 그에게 진정성(authenticity)을 요구하기에는 우리 스스로 진지함이 없었다. GD가 실제 작품채색을 스스로 하는지 사실 관심이나 가져봤나? 그가 창작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열광해온 것이 아닌가? 뭔가 필요하다면 집단적 자성이지 개인의 단죄가 아니다.

조영남을 이제 보내주자. 조영남의 그림을 산 사람들 자체도 많지 않고 사기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다. ‘아트테이너’라는 독특한 분야에 대한 낮은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다. 조영남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논문 ‘자기표절’ 정도의 문제로 다뤄주면 될 일이다. 검찰과 일간신문 1면이 관심을 기울일 일이 아니다. “피해자가 없어도 이건 사회적 사기"라며 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짜 더 큰 "사회적 사기"는 바로 전에 비슷한 지면에서 밀려난 네이쳐리퍼블릭 대표의 검찰·법원 100억대 로비 의혹이다. 검찰이 지금 저작권까지 동원하는 수준의 창의성을 발휘할 사건은 이런 것들이다.

작년 저작권 침해 기소건수가 2천건이 넘는다. (전체 범죄 기소건수의 1%나 된다. 고소는 4만건 가까이) 이렇게 많고 사소한 저작권 단속을 모두 검찰이 한다는 것도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오픈넷은 19대 국회에서 형사기소범위를 축소하는 '저작권 합의금장사 방지법'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검찰측 전문위원과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답답하다. 참고로 신경숙 표절도 박유하 명예훼손도 검찰이 개입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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