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달 정년퇴임하는 이준구 경제학 교수
“세금 더 걷더라도 자원외교같은 해괴한데 말고 보육에 쓰자”
‘좌빨’ 이준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진보적인 발언과 사회경제 이슈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온 경제학자 이준구 교수(서울대 경제학부·65)가 34년간 몸담았던 대학강단을 떠난다. 다음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한겨레>가 2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자신의 블로그(http://jkl123.com/)에 사회경제 이슈에 대한 소신발언을 가끔씩 올리고 있고 블로그 글마다 1만 조회수를 넘을 정도로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시대 지식인의 책무 △젊은이들의 고뇌 △사회경제적 이슈 진단 및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 △한국 경제학자의 보수적 편향 등을 주제로 1시간 30분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우리 사회와 경제에 (글)쓸 일이 너무나 많아져 현실에 적극 개입하게 됐다”며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정책을 주창하고 확산시켜온) 직업으로서의 한국 경제학자들의 극단적인 보수 편향은 지금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자 기이한 현상”이라고 토로했다. 평생동안 정치 및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오며 전공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온 노교수는 뜻밖에도(?)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배의 추억’을 떠올리며 “젊은날 시국문제에 비겁하게 물러서 있었던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이 늘 있었는데, 이것이 점차 나이들면서 현실 문제에 적극 개입하게 된 개인적 배경이기도 하다”고 <한겨레>에 처음 털어놓았다.
“재벌 2·3세 경영권 상속
아버지가 금메달 땄다고
자녀를 올림픽대표 뽑는 것
경제학계 보수편향은 의문
분배 공정성 관심 적어
나를 진보 분류 기이한 일
김근태의원 고초겪을 때
데모 안해 죄책감 가져
그래서 5공 시국선언 참여”
-연구실 문에 내붙인, 불도저를 뒤덮으며 여기저기 피어난 쑥부쟁이 아래로 ‘끈질기게 피어라. 너희가 강의 주인이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2010년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현실 문제에 개입하는 발언들을 해왔다. 엠비(MB) 정부의 또다른 ‘31조원 자원외교’를 둘러싼 국회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는데…
=자원확보, 물론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중요한 일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느냐가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데 자원외교는 그 점을 무시했다. 당시 이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자원외교가 필요했고, 본래 그 성과는 먼 훗날에나 나온다는 식으로 변명하면서 피해가려한다. 그러나, 먼 훗날에 나올 효과도 중간에 점검해보면 올바르게 투자한 건지 지금 단계에서 판단이 나온다. 실패로 이미 거의 판명되고 있는데, 갑자기 반전되겠는가? 혹시나 원유가격이 1배럴에 5백달러로 뛰면 우리가 옳았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걸 대비했다는 건 말도 안된다. 200년 만에 한번 올지 모를 홍수를 대비했다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재정학 전공인데 정부 예산과 관련해, 지금 세간에 오르내리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동폭행 사건의 경우, 보육교사의 급여를 올려주는 방식으로 가야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어린이집 보육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매우 큰데 적절한 보수를 주는 정규직 보육교사를 늘리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이런 지출은 불황 대비책도 되고 경제성장도 견인할 수 있다. 국민들의 복지지출 관련 세금 부담이 조금 늘더라도 걷힌 세금과 정부 예산을, 자원외교나 4대강 등 해괴망측한 데 쓰지 말고 그런 곳에 유용하게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일자리 창출 관련해, 최근 청년실업률이 9%로 역대 최악이다. 대기업이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면서 경력직 채용만 선호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아무튼 취업난은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고통이자 좌절인데…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가면서 이제 고용창출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어렵고, 기업이 신규투자해도 인력투입을 최소화하는 생산방식으로 가고 있어서 근본적으로 ‘고용없는 성장’에 직면하고 있다. 청년실업 대책 중 하나로 정부가 (창조경제 관련해) 벤처 육성에 나서고 있는데 창업을 북돋는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그런 정보기술 중심의 벤처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창조적인 몇 사람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지 일반 직원을 대규모로 고용하는 기업이 아니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중소기업을 더 확장하고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른바 “연말정산 세금폭탄”을 둘러싼 월급쟁이들의 분통이 지금 터져나오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애초에 원천징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적게 해서 이런 논란이 나오는 듯하다. 월급봉투에서 원천적으로 떼는 세금 징수율을 적게해 처분가능소득이 크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닌가싶다. 이번 논란은 세율을 올려서 문제가 된 게 아니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소득구간에 따라 공제액의 변화가 발생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득계층간 부담 측면에서 볼때 세액공제로 바꾼 건 올바른 방향이다. 내가 무엇이든 정부 정책을 헐뜯는 사람은 아니다. 직장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근본적으로 정책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새해 벽두 담배값 인상도 큰 이슈가 되었다. 재정학자로서, 흡연자와 비흡연자, 부유층과 서민, 국가의 재정수입, 국민 건강 등을 고려할 때 최적의 담배값 시장가격은 존재할 수 있는가?
=세계 각국마다 정책적 의도에 따라 담배값이 천자만별이라서 어느 일국에서 적정한 담배값이 얼마인지 도출하는 건 본질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금연을 권하는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결연한지가 관건인데, 재정학에서 담배세는 일종의 ‘죄악세’로 설명하고, 나도 인상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죄악세는 세금을 무겁게 물려 사람들이 금연으로 돌아서면 건강 증진이라는 정책목표가 달성되어 좋고, 반대로 흡연자들이 버티고 계속 흡연하면 재정수입이 증대되므로 정부는 그 역시 행복한 세금이다. 그러나 왜 하필 지금 인상인가? ‘증세없는 복지’라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을 애초 정부 출범 때부터 했다. 사회복지를 대폭 확충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한데, 어떤 방식으로 증세할 것인지 놓고 건전한 토론을 거쳐 담배세 인상이 그 답이라고 찾았다면 찬성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잘못된)약속은 그대로 둔채 체면 유지하고, 세수가 궁색하니 손쉬운 담배세 인상을 선택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배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쳐매지 말라했는데 아예 배를 따려고 하는 것이 국민들 눈에 보인 것이다. 서민 생계비만 더 올린다는 부정적 측면만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게 당연하다.
-저성장, 수요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 우리 경제의 등뼈인 제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 등 한국경제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숙단계상 피할 수 없는 추세와 현상들인가?
=우리 경제는 그동안의 고도성장 동력이 소진돼가는 과정에 들어서 있다. 즉 어차피 저성장 기조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고, 여기에 겹쳐 세계 경제가 모두 저성장 기조로 가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한층 가중되고 있고 또 불가피하다. 다만 이왕 이렇게 어려울 바에는 주택경기를 띄우는 것같은 단기적 부양으로 가지 말고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경제 견실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동산경기는 반짝하고 마는 것일뿐 경제의 성장동력과는 무관하다.
-체질 개선과 견실화를 좀더 설명해달라
=경제에서의 질서, 곧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갑의 횡포를 없애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작업 등이다. 이런 경제 질서 확립이 곧 장기적으로 소득증대가 정말로 필요한 계층에게 소득이 돌아가게 하는 기초가 된다.
-방금 소득분배와 관련해 말했는데, 최근 한국경제가 수출 및 기업주도 성장에서 벗어나 임금 및 소득 또 내수가 이끄는 성장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임금과 소득을 높여 내수를 활성화해야 하는 건 맞다. 다만 기업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끌어안고 있는데, 배당을 더 해주라는 식으로 소득을 늘려주려는 정책은 주식을 많이 가진 부유층과 외국인투자자의 주머니만 더 두둑하게 해주는 일이다. 또 임금을 올려주라는 정책은 대기업 노동자의 보수를 더욱 늘리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시장 매커니즘에서 힘의 균형이 대기업 쪽에 가 있는데 그 힘을 발휘하지 말고 약자한테 잘해주라는 식으로 경제정책을 펴기도 어려운 점이 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정부가 개입해 직접 그 단가를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작고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같은 분들이 필요하다. 삼성과 현대차 등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좀더 관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재벌기업 오너와 2·3세의 일탈적 행동이 요즘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재벌기업 체제가 가족기업 형태인데, 오너가 마치 주인처럼 행세하면서 자기 임직원을 하인 다루듯 하는 문화는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들다. 또 회삿돈을 개인 가계부마냥 가져다쓰는 기업문화의 미성숙까지 결합되어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의 경우 우리는 여론재판으로 징벌하고 말았지만, 내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면 도대체 수많은 승객들을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당장 말했을 것이다. 승객 서비스라는 관점에 보면, 옆에서 고성 지른 조현아 전 부사장은 사무장이나 승무원에게뿐 아니라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비행기가 늦게 출발하게 된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똑똑하고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여, 우리 기업에 오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상속자본 등 세습자본주의는 우리가 미국보다 현저하다. 미국의 억만장자 중 세습은 10명 중 2~3명인데 한국은 8명 이상이라고 한다. 세습자본에 대한 피케티의 메시지가 서구에 비해 우리 사회에 더 잘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경영권 대물림은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할 때 실제로 100m 뛰어보게 한 뒤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지에 따라 뽑는 거나 다름없다.
-이번 정년퇴임 기념으로 제자들이 펴낸 <꽃보다 제자>라는 문집에 보면 한 후학이 “교육자와 연구자로서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외길을 걸으셨다. 한결같다는 것,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인가”라고 적고 있다. 한국의 여러 경제학자들이 ‘경세’를 표방하며 대학강단을 벗어나 이런 저런 정치적 조직에 몸담고 활동하는 모습을 흔히 보는데….
=나는 남들에 대해 얘기하는 걸 천성적으로 싫어한다. 다만 스스로 그런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을 전혀 열어두지 않은 건 내 자신이 그런 일에 전혀 맞지 않고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절감했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소수도 있겠지만, 교수라는 직업군에 속한 대다수는 사람을 다루고 조직을 운영하고 또 집권세력 내부에 들어가 인파이팅(기존 질서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하는 데 능력이 별로 없다. 나는 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은 학교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외부의 정치적 조직 등에 다른 일자리를 얻었다면 아마도 첫 출근하는 날부터 스스로 후회하게 될 게 뻔하다.(웃음)
-블로그에 최근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글을 올렸다. 우리사회의 소득불평등 심화와 분배의 공정성과 관련해 우리 학계에서 ‘직업으로서의 경제학자’의 책임이나 무능, 무관심 등이 그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피케티 열풍은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분배 문제에 너무 관심을 안 가져온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를 제공한 게 열풍의 한 이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주류경제학은 분배 문제에 별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 분배 공정성은 가치판단의 문제라서 경제과학적 분석의 영역을 벗어나고,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다루는데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경제학자들이 그동안 미국사회는 어느 정도 분배 공정성이 이뤄졌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최근엔 현실경제에서 급격한 분배 악화가 나타나면서 그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한국 경제학자들은 분배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미국 경제학자보다 훨씬 적다. 시장이냐 국가 개입이냐는 관점의 진보와 보수 스펙트럼에서 미국 경제학자들은 다양하게 분포하는 반면, 한국 경제학자들은 보수 쪽에 거의 쏠려 있다. 왜 그럴까? 이건 나의 오랜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한국에서 분배 공정성이 상대적으로 잘 이뤄졌다면, 또 시장이 좀더 완전해 정부개입의 필요성이 적다면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와 시장의 여러 상황을 보면 우리 경제학자들이 좀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자연스러울 듯한데 현실은 그 반대다. 우리 경제학계의 이념적 지형은 참으로 이상하다. 내가 미국에 가면 중도 밖에 안되고 ‘진보’로 불릴 수 없는데, 한국사회에선 나를 진보 경제학자로 부르고 있다. 내게 ‘좌빨’ 칭호가 붙었듯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좌빨로 매도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있긴 한데, 경제학자 그룹 속에 가봐도 나는 상당히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과정 유학할 때 미국 지도교수는 진보적인 사람이 많은 편인데, 왜 한국에 돌아와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걸까?
-‘연구’와 관련해 퇴임 이후 구상은?
=두 가지다. 첫째,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관련해 그동안 내가 써온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펴낼까 한다. 그것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꿈은 마치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려 했던 것 아니냐는 착각을 갖게 한다. 영어몰입교육이나 감세정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미국을 미국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경제로 만들었는데, 우리가 이를 성찰 없이 그대로 계속 직수입하면 우리 역시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경제로 치닫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게 목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보수적이다. 이미 실패한 것이 자명한데도 세금 깎아주면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막연하게 믿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강하다. 미국에서 막대한 재정적자와 불평등 심화라는 부작용만 초래한,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된 것인데 우리 경제정책담당자와 경제학자들이 이를 알고서 답습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둘째, 과거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를 당시에 나 혼자만 두둔했는데, 종합부동산세의 죽음이 아직도 아쉽다. 그런데 부동산 과세의 경제학적 근거를 최근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새삼 발견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경제학자들이 쓴 논문을 보면 부동산 등 재산에 대한 과세가 여러 세목 중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조세를 평가하는 기준에 효율성과 공평성 이 두 가지가 있다. 조세 부과로 민간부문의 의사결정을 교란시키는, 예컨대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면 사람들이 일을 적게 하고 되고 이자소득세를 높이면 저축을 적게 하는 것인데, 부동산 과세는 그런 초과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별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이다. 즉 부동산은 이동성이 없어서 다른 나라로 옮기거나 튀어 피해갈 수 없다. 부동산 과세는 경제의 효율성도 높이고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내가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재산분포가 소득분포보다 훨씬 편중돼 있기 때문에 공평성도 달성된다. 이런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소개해보려한다.
-사실 30만권 이상 팔린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인 ‘이준구 교수’가 왜, 어떤 이유로 현실에 적극 개입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젊은 시절에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강단에서든 글로든 표현하는 건 내 스스로 극도로 삼갔다. 그런데 나이가 점차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에서 고쳐야할 점이 있다면 지식인이 이를 지적하고 문제 있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개선되기 어렵다고 느꼈다. 자기가 배운 바를 사회에 투영해 문제점이든 올바른 방향이든 지적하고 말하는 게 지식인의 큰 책무라고 자각하기 시작한 셈이다.
또 한 가지, 솔직히 말하자면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노무현 정부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용기를 내 노무현 정부를 두둔하지 않고 있었다. ‘3불 교육정책’이나 종합부동산세 등 당시 정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대목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보수 언론과 보수적 지식인으로부터 공격받고 몰매를 맞았다. 그때 나와 같은, 정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나서 발언하는 게 효과가 있을 듯해보였다. 당시 경제성장률이 4%대로 떨어진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는데 그건 단지 착시 현상일뿐 당시 경제 상태로 보면 그 정도는 견실한 성장률이라고 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부자감세와 4대강 사업 등이 터져나오면서 ‘(글)쓸 일이 너무나 많아져’ 현실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이 교수는 현실 이슈에 개입하더라도 블로그 등을 통한 활자 글을 매개로 주로 발언할뿐 인터뷰 같은 ‘말’을 중간 매체로 삼는 건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내가 2013년에 블로그에 ‘김근태 선배님의 추억’이란 글을 쓴 적 있다. 돌아가신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원이 민주화를 위해 숱한 고초를 겪었는데 나는 그 시절에 데모에 한번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해온 죄책감이 있다. 사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개헌을 요구하는 교수 시국선언에 내가 서명해 참여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 1천여명 중 참여자가 40여명 밖에 안될 정도로 서슬퍼런 군부정권 시절이었다.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과거 학생시절 나의 모습에 대한 속죄의 심정으로, (당시에)지금이라도 참여하지 않으면 비겁하게 살았다고 두고두고 후회할 것같아서였다. 현실개입 발언들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의 행동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과 입시, 우리 시대의 젊은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서 인터뷰를 마칠까 한다.
=현행 대학 입시제도는 서울대를 포함해 어느 대학에서든, 입학사정관제를 중심으로 볼 때 누가 붙고 떨어질지 불확실성이 크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누가 합격하게 되는지 다소 불투명한 소지가 분명히 있다. 이에 대한 심도있는 반성이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는데, 입시제도를 선도하고 있는 서울대 내부를 포함해서 충분하고 깊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과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 주관에 의해 판단되고 있을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교수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교수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로 수많은 제자들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쓰고 있다. 학점, 행복한 삶, 진로 등을 놓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0여편을 써 올려두고 있다. 노교수로서 한마디 해주신다면?
=은퇴를 맞아 대학생들에게 따로 해주고 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요즘 학생들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큰데 “불안해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삶은 누구나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처음에 좋은 직장에서 출발했어도 앞으로의 삶은 불확실하다. 그것이 어차피 삶의 본질이다. 요즘 세대는 우리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곱게 자라서 역경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다. 다만 일반적인 인생지침서는 말하거나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책은 옳은 말들이긴 하나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이라서 다 읽고나면 허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거나 햇볕 좋은날 산보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햇볕요법도 곧잘 해주고 있다. 마음을 조금만 더 비우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그만큼 편해진다. 많은 일에서 오히려 루틴한 버릇같은 것을 만들어놓으면, 또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정해진대로 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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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땐 말없이”…기념논문집·고별강연 사양
34년간 꼿꼿한 학자의 길 걸어
이준구 교수는 한마디로 흔치 않은 지식인이다. 어느 정도 이름을 얻은 한국의 경제학자라면 흔히 맡는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제안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옛 경부고속철도평가위원 같은 일회적인 참가를 빼고는 198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 정부의 이런저런 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대에서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을 한 것을 빼면 행정조직의 보직 자리에 가서 일해본 일도 없다.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면서 명리에 물들지 않고 한결같이 살아온 34년 지식인의 역정 그 자체가 곧 우리 사회 지식인의 표상인 듯 보인다. “떠날 때는 말없이 가야 한다”며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발간도 고별강연도 마다했다. 대신 제자 27명이 애틋한 추억을 담아 쓴 <꽃보다 제자>라는 자그마한 문집 하나와 자신이 틈틈이 찍어온 서울대 교정의 사계 사진들을 넣은 달력 하나만 남겼다.
“학문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을 몸소 일깨우려는 것일까. 퇴임 뒤에도 강의실에 수백명이 듣는 초급 ‘경제원론’ 강의를 5년간 더 하고, “30만권 플러스 알파”가 팔렸을 정도로 “25년간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아 자부심이 있다”는 <미시경제학>을 비롯해 <재정학> 등 교과서(현재 4~6판)를 끊임없이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수강생이 많아 채점하기 벅차다는 이유 등으로 흔히 대학에서 시간강사에게 맡기는 과목이 초급 ‘경제원론’인데 노교수는 지난 마지막 학기까지도 ‘경제원론’ 강의를 맡았다. “경제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에서 원론은 매우 중요한 과목이고, 또 폭넓은 이해와 원숙한 이해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가르치는 게 맞아요. 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간 대학 구내식당에서 노교수는 학생들과 뒤섞인 채 긴 밥줄에 서 차례로 배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