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 상임위원회의 청문회 개최를 활성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권”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재의결을 추진키로 했다.
20대 국회 개원을 사흘 앞두고 청와대와 야당, 입법부와 행정부가 충돌하면서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지난 13일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의 청와대 회동 이후 잠시 조성됐던 ‘협치’ 분위기는 파탄으로 가는 형국이다.
아프리카 3개국 순방차 에티오피아를 국빈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27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전자결재를 통해 재가했다고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밝혔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해 6월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이어 2번째다. 또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헌정사상 66번째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9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황 총리는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제도는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재의요구안을 재가함에 따라 정부는 이날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이날은 사실상 19대 국회 마지막 날이어서 재의요구안에 대한 본회의 재표결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이 자동폐기되는 것인지, 20대 국회가 이를 재의결할 수 있을지 논란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나선 것은 19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털어내 임기 말 국정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순방 중에 군사작전 하듯이 거부권 카드를 전격 행사한 것은 19대 국회에서 재의요구안이 처리되지 못하도록 해서 국회법 개정안을 자동폐기시키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적지 않은 역풍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여소야대’ 국회로 공감대가 형성된 ‘협치’의 판을 대통령 스스로 걷어찼다는 비판이 야권에서 나온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 개원하는 20대 국회도 대치 정국으로 시작하게 됐다.
박 대통령이 갈등과 분열을 이용한 정치공학에 능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는 지적도 부담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에 대해서만 2년 연속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입법부 권위를 무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27일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한 것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은 ‘총선에서 심판받고도 정신 못 차렸구나’라고 지탄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대통령이 일방 독주가 아니라 진정 협력하는 협치로 난국과 난제를 풀어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전화통화를 갖고 20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을 추진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