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5월 9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경우 외교적 득실 논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정은은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자구책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먼저 진행할 경우 따를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2일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의 5월 러시아 방문이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은 카드”라고 진단했다. 핵안보 정상회의나 유엔총회처럼 핵이나 인권문제 등 북한을 압박하는 특정 주제를 다루는 자리가 아닌 만큼 큰 부담 없이 국제무대에 데뷔할 수 있다는 것. 해외 정상들을 상대로 양자 협상을 벌이는 자리가 아니고 여러 정상이 모이는 다자 무대이기 때문에 집권 3년 차이지만 정상 외교 경험이 전무한 김정은에게 큰 부담이 없는 안전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국제 행사에 등장하는 김정은에게 쏠릴 국제적 관심은 대내 선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북한이 잃을 것도 없지 않다. 김정은이 단순히 전승절 축하 사절단 형식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수령 체제 중심의 북한식 외교나 사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일이었다면 러시아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낼 것”이라며 “단순히 전승절 행사 참석차 러시아를 간다면 자칫 남의 잔치 축하 들러리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식 사고에 맞지 않는 행동은 통치 정당성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북-러 정상회담을 명분으로 김정은이 러시아를 찾는다 해도 평양이 떠안을 부담감도 있다. 고 교수는 “중국을 제치고 김정은이 첫 정상회담 상대로 러시아를 선택할 경우 북-중 관계가 더 나빠지게 되고 그 파장은 오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 참석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내부적으로 부정적 기류가 많지만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한다면 김정은은 박 대통령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의 만남이 성사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우선 러시아 제재로 미국이나 서방국 정상들의 참석이 불투명한 만큼 우방들과의 대북 공조를 의식해야 하는 점이 한국 정부에 부담이다. 정부가 당장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도 향후 대외 관계와 남북 대화 기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