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에서 5.18로, 5.18에서 다시 6.10으로 이어지는 동안, 역사의 이정표가 됐던 젊은 죽음들. 그들의 순수한 정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 날을 이끌어갈 고귀한 견인차였다.
[뉴스프리존= 안데레사기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앞선 세대들의 승리의 경험은 오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젊은 세대들의 초석이 될 것이다.
6월 민주항쟁은 남녀노소,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민주주의라는 목표 아래 하나가 되어 군사독재체제를 청산하고 국민의 손으로 정부를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으로 사망했다.
전두환정권은 이를, '책상을 탁 치자 억 하고 쓰러졌다' 라고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학생들과 재야세력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었다.
80년대 중반을 지나며, 5.18 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반독재투쟁은 치열해져 있었고, 전두환독재정권은 그같은 투쟁이 거세어질 때마다, 갖가지 간첩사건들을 조작해 이를 탄압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고문은 필수적이었고, 이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1987년 4월 13일.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자, 전두환정권에서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당시는 국민들이 군사정권을 끝낼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때였다. 4.13 호헌조치는, 그러한 국민들의 열망을 무시하는 조치였다.
전국은 다시 시위로 달구어졌다.
5월 27일.
마침내 전국에 민주화운동지도자 2200여명이 함께 세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반독재투쟁세력은 하나로 결집했다.
6.9일
시위 도중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다.
6월 10일.
박종철군에 대한 고문 살인을 규탄하고 민주헌법을 쟁취하려는 대규모 시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국민운동본부의 지침에 따라, 자동차는 오후 6시를 기해 일제히 경적을 울렸고, 시민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며 이에 동참했다.
시위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고, 6월 10일 하루에만, 전국 22개 도시에서 학생과 시민 38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오늘 6.10 민주항쟁기념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 6.10 민주항쟁기념일과 기념식에 대해 보면
국민이 승리한 역사 – 6.10 민주항쟁기념일
6.10 민주항쟁기념일은 1987년 6월 10일을 정점으로 20여 일 동안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중항쟁이자 민주화 운동입니다. 6.10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는데요.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희생된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 입니다.
6.10 민주항쟁 제29주년 기념식 개최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2007년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뒤 매년 행정자치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함께 개최되고 있는데요. 올해로 어느덧 29주년을 맞았습니다.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깊은 6.10 민주항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http://www.kdemo.or.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10 민주항쟁 제29주년 기념식
일시: 2016년 6월 10일(금) 10:00~10:40
장소: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주최/주관: 행정자치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늘,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것은 1987년 6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민주 열사들의 노력 덕분이겠지요. 6월 10일 하루는 29년 전 6월 항쟁의 뜻을 마음 깊이 새겨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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