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수용자들은 점점 매체보다 기자를 기억한다. 두터운 팬을 보유한 기자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웬만한 언론사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기자의 브랜드는 유용하다. 언론사의 자산은 기자일 수밖에 없고, 기자를 잘 키워야 언론사도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 때문이다. 자사 기자들의 브랜드가 높아지면 언론사의 브랜드 향상과 연결될 수 있다. 기자의 브랜드 강화가 구독률·시청률·후원회원 등 언론사 수익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몇몇 언론사에선 기자의 브랜드를 조직적으로 키워주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이는 주로 전문영역을 주고 전문기자 타이틀을 주는 식으로 나타나거나, 기자에게 드라마틱한 ‘특종’, ‘단독’ 스토리를 입혀 캐릭터를 부여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기자들은 전문분야를 잡고,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며, 관련 학위를 받으며 브랜드를 강화한다. 또는 팟캐스트나 페이스북과 같은 채널을 통해 취재 후기를 소개하며 뉴스 수용자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소통창구를 만든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은 “이제 기자들은 복면가왕 무대에 선 가수와 비슷한 경쟁 상황을 맞고 있다”며 “언론사도 로펌이나 MCN 같은 구조로 가야할 수 있다. 개인의 전문성에 무게가 실리는 조직이 결과적으로 언론사의 브랜드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느 매체에 속해 있느냐보다,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기사를 쓸 수 있느냐가 기자의 브랜드에 더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의미다. 미국의 복스미디어는 기자를 스타로 키운 뒤 독립된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대표적 미디어 기업이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장은 “복스미디어의 기자별 브랜드화는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자 가운데 유명세로는 주진우 시사인 기자를 따라갈 기자가 거의 없다. 2012년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보도 이전부터 주 기자의 단독·특종 보도와 수많은 소송은 ‘주진우 브랜드’의 원천이 됐다. 그는 자신의 취재과정과 문제의식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통해 드러내며 인기를 모았고, 소송경험과 취재후기를 바탕으로 쓴 단행본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주 기자의 인기에 힘입어 시사인은 18대 대선을 전후로 정기구독자가 1만 명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삼성X-파일’ 단독보도로 유명세를 탄 이상호 MBC 기자는 자신의 브랜드를 기반으로 ‘고발뉴스’라는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고 있다.
글 하나로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한 기자도 있다. 매주 화요일 기자들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중앙일보 권석천 칼럼이 공유된다. 권석천 칼럼은 매주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관통하는 칼럼으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칼럼은 단행본 ‘정의를 부탁해’로 묶여 출간됐다. JTBC에는 ‘펙트체크’ 코너를 진행하는 김필규 기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수개월간 팽목항 리포트에 나섰던 서복현 기자의 브랜드가 JTBC의 뉴스 브랜드와 함께 동반 상승했다.
언론인 개인이 갖는 브랜드는 채널 브랜드를 바꾸기도 한다. 오늘날 JTBC 브랜드는 2013년 MBC 출신의 손석희 브랜드로 재구축됐다. 언론인 개인이 언론사 브랜드 자체를 바꿔버린 예외적 사례다. 과거 공정보도의 상징이었던 MBC 언론인의 브랜드는 JTBC 뿐만 아니라 신생 종합편성채널로 ‘수혈’되고 있다.
MBN은 지난해 MBC 출신 김주하 앵커를 통해 뉴스 브랜드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기존 MBN브랜드와 김주하 브랜드 간 융화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최근 MBN은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편향 보도로 도마에 오르자 사망자 어머니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린 김주하 앵커로 비판 여론을 덮었다.
TV조선의 경우 최일구 전 MBC 앵커를 영입해 주말 프로그램 MC로 기용하고 있다. 기존 TV조선의 극우 편향적인 브랜드를 바꾸고자 유머러스하며 대중에게 친숙한 야당성향의 최일구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과거 MBC 브랜드를 상징하는 스타들이 태생부터 보수 편향 비판을 받았던 종합편성채널의 브랜드 전략에 핵심 퍼즐이 되고 있는 사실은 자못 흥미로운 대목이다.
2012년 해고된 최승호 뉴스타파 PD도 MBC ‘PD수첩’ 시절부터 이어온 성역 없는 탐사보도라는 면에서 명확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인사다. KBS 탐사보도팀에서 명성을 쌓은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도 오늘날 뉴스타파의 명성을 높인 주축들이다. 뉴스타파 기자들 개개인의 브랜드는 뉴스타파 후원회원 확대로 연결돼 현재 정기후원 3만6638명을 기록 중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이영돈 PD 역시 언론계에선 하나의 브랜드다.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이 한 마디는 이영돈 브랜드를 상징한다. KBS 출신의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이영돈 PD는 체험하고 맛보고 뛰어들며 몸을 사용하는 실증과 실험 중심의 제작방식으로 시청자의 몰입감을 자극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센세이셔널리즘이란 악명 높은 브랜드를 갖게 됐다.
언론인 개인의 브랜드를 키우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대원 언론학 박사(전 매일경제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스타 기자가 언론사에서 잘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첫째. 조직이 원하지 않는다. 김대원 박사는 “스타 기자는 곧 기자 개인이 브랜드가 된 개체가 된다. 브랜드 영향력 강화는 곧 조직 내에서의 위상 혹은 연봉 강화라는 요구로 이어진다”며 “기존 언론사 구조에서 이런 스타기자의 존재는 경영진을 성가시게 한다.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동료 기자들의 불만이다. 김 박사는 “시쳇말로 기자만큼 고스펙 집단도 드물다. 이들에게는 ‘나도 잘났기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들에게 나보다 크게 낫지 않다고 생각되는 동료가 ‘운’ 혹은 ‘조직의 필요’에 의해 스타가 되는 모습을 탐탁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절박하게 조직의 근간을 틀어 버려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는 한 언론사 구조는 쉽게 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자들에게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주문하는 경영진과 이를 받아들이는 기자 사이에 ‘동상이몽’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olinenews=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