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현충일아침 문성길 (61년 영암) 챔프와 함께 청주 수 복싱체육관 성낙준 관장(63년 청주)의 연락을 받고 청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성관장이 평소 친형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은 80년대초 배따라기 원년 멤버 가수 양현정(60년 보은)선배가 위암으로 투병중인데 복서 문성길 을 한번 뵙고 싶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이혜민과 듀오를 이뤄 노래를 불렀던 배따라기 양현정은 80년대초 비와 찻잔사이 은지 등을 히트시켰던 인기가수였다.
성낙준과 나는(필자, 조영섭) 10년전 생활 체육대회에서 알게된 친구다. 청주는 20년전 나와 문성길이 청주시 남일면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에 강의를 나갔던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또한 청주복싱 하면 빼 놓을수 없는 분이 대학 때 나의 은사님이신 1956년 멜버른 올림픽(밴텀급) 은메달 리스트인 송순천(32년 서울) 교수 이다. 이분은 1969년 청원군 미호 중학교에 교사로 재직중일 때 청주시 탑동에 남의 빈 창고를 빌려 최초의 복싱체육관인 태성체육관을 설립한 장본인이다. 대구복싱의 효시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란 시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 이라면 청주복싱의 효시는 송순천 교수 인 것이다.
이곳에서 송순천은 1971년 제2회 아시아 주니어선수권(LW급) 금메달 리스트인 정영찬(충북대)과 1972년 뮌헨올림픽(LM급) 국가대표인 임재근 1973년 전국체전 은메달 리스트인 이동기(충북대)를 배출한 청주복싱의 개척자다 특히 황충재 김주석과 함께 웰터급에서 트라이 앵글을 구축했던 정영찬(작고)은 후에 청주를 대표하는 복서 홍기호(62년 서원대)에게 매달 훈련비를 를 지급해 그가 복싱으로 국위를 선양하는데 일조를 했던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 이기도 했다.
정영찬은 당시 대표팀 김성은 감독이 당대 최고의 스킬을 지닌 복서로 평가한 역대급 복서였다 청주에서 이런 이력을 펼친 송순천은 1955년 성북고 2학년 5월에 복싱에 입문 9월초 멜버른 올림픽 1차선발전에서 일약 129일 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된후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정부 수립이후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 초창기 한국복싱의 상징적인 분이다.
그분이 강의시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단 17개월 만에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국력이 약해 억울하게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낮춰 돌아볼수 있는 평생의 교훈을 얻었다.
또한 내가 득도(得道)의 경지에 육박 할때는 상대방의 총알같은 주먹이 마치 물속에서 물고기가 유영(遊泳)하듯이 슬로모션으로 감지되었다. 송순천은 한국복싱 100년사 밴텀급 역사에서 문성길과 장규철 정신조 등과 함께 빼 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청주에 도착 성낙준 관장이 운영하는 복싱체육관에 도착하니 사범 장문을 인사 시킨다.
나이를 물으니 올해 27세라 한다 아.. 1989년 내가 트레이너로 활약할때가 27살 이였는데 새삼 감회가 새로워 진다. 낙준이는 청주동양체육관 정재룡 관장의 제자이다 정관장은 1969년 아시아 군인선수권(LF급) 금메달 리스트 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한 국가대표 출신 이다.
이런 명망 높은 관장 밑에서 수학한 성낙준은 선수로써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15년동안 음성과 청주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도 유망한 선수들도 많이 베출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복서 성낙준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유치원생 같은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그는 2009년 5월 음성에서 체육관을 운영할 때 화재현장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고립되어 있던 일가족3명을 극적으로 구출해내 표창장을 받은 전력이 있는 관장이다.
이후 청주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창출된 이윤을 쪼개 KBI 생활체육대회에 일년 4차례에 걸쳐 3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또 대회 때마다, 출전하는 선수들에게도 50만원의 장학금을 분할하여 베품과 나눔을 몸소 실행한다.
그는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맑은 영혼을 간직한 체육인 이다.
현재 위암으로 투병중인 양현정의 병원비등을 부담하는등 1인3역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성관장은 부족한 돈은 주말과 국경일에 휴식도 없이 택시 운전을 하면서 충당한다 우리 일행은 양현정과 약속장소인 체육관 최광렬 후원 회장이 운영하는 속초막회 집에서 오찬을 함께하기 위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양현정과 마주하니 멈췄던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70.80, 세대들에게 비 (雨) 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지금 창밖엔 비가내리죠,.로 시작되는 비와 찻잔사이를 부른 배따라기 이혜민 양현정 듀오 이다 안양예고 출신의 포크가수의 대표주자 양현정은 이후 솔로로 활동하면서 무교동에 코스모스 곷잎 등 다운타운에서 장덕 하남석 김정호 노고지리 전인권 등과 시공 (時空)을 초월한 추억을 함께 공유한 주역 이었다.
그는 현재 추억을 공유한 많은 이들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지만 변함없이 지켜주는 낙준이 에게는 뭐라 할말이 없을 정도로 고맙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또한 성낙준은 수년전 이고장에 정착한 현 KBI 회장이자 전 동양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이상호의 부친인 이광배옹(37년 목포)을 위해 가끔씩 초대해 식사도 대접해 드리고 노래방에 가서 여흥도 함께 즐긴다 이광배옹은 명절 때마다 찾아와 인사를 올리는 성낙준 관장에게 친자식 못지않게 잘해준다며 대견스러워 한다 예로부터 효는 만행(萬行)의 근본(根本)이라 했다.
성낙준 관장의 스승인 청주동양체육관 정재룡(46년.남산공전.육군) 관장은 현역시절인 국산탱크란 닉네임으로 서상영 유종만 박인규 이태동 안건노 박인성 정순현등 등 수많은 강타자들과 글러브를 섞으며 5차례에 걸쳐 전국을 재패한 철권이었다.
정재룡은 은퇴후 고향인 청주에 낙향하여 동양체육관을 설립 수많은 대표급 제자들을 양성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지 명절 때 찿아오는 제자들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낙준이 만큼은 선수생활은 화려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제자들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자라고 엄지손을 치켜세운다 반짝 거린다고 전부 금(金)은 아니다란 서양속담이 있다. 비록 선수생활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소리없는 봉사활동과 의로운 선행은 반드시 금강석(金剛石)처럼 반짝반짝 빛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도 가슴엔 한기를 느낀다는 중년의 나이에도 오후 6시가 넘어가자 택시영업을 해야 한다며 황급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믓한 마음 지울수 없었다.
어렵고 힘든이웃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이웃의 아픔을 자신이 거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말했다 그 어느 복서 그 어느 챔피언보다도 자랑스런 복싱인 그이름 성낙준... [조영섭?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서울 복싱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