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1심 법원이 징역 5년에 벌금 50만원을 선고(7월4일)했다. 체포(지난해 12월10일)부터 판결까지 ‘이례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테러리스트’ 비유,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직접 지휘한 체포작전,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의 체포과정 생중계, 존속살인죄에 버금가는 검찰의 구형(8년), 검찰 기소를 모두 수용하고 변론 내용은 모두 배척한 법원 선고…. 지난해 조계사 자진퇴거 때 기자회견을 끝으로 한상균의 말은 국민에게 직접 전달될 통로를 갖지 못했다. 그를 중형에 처한 정부와 국가기관의 논리만 부각되고 전파됐다. 선고가 끝나자마자 한상균은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방청석을 쳐다보며 끌려나가듯 법정을 떠나야 했다. 그의 ‘허락받지 못한 말’을 <한겨레>가 옮긴다. 그는 선고 이틀 전과 당일 편지를 써서 민주노총 후배에게 보냈다. 지난해 체포 당시 상황과 구치소 생활, 검찰 구형과 선고 결과에 대한 심경과 고민을 담았다. 이 시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노동 배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도 비판했다. 편지 수신인의 동의를 얻어 한상균의 ‘옥중편지’를 띄운다. 모두·최후진술을 제외하면 재판 이후 동료 노동자들과 국민에게 처음 전하는 그의 마음이다.
“피고인을 징역 5년 및….”
판사가 형량을 말하는 순간 방청석(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 417호)에서 격한 반응이 솟구쳤다. ‘5년’이란 단어가 바늘이 되어 찌르자 선고 공판(7월4일 오후 3시) 동안 팽팽하게 차올랐던 긴장이 풍선 터지듯 폭발했다. 성난 소리에 묻혀 벌금 액수는 들리지조차 않았다. 판사가 “조용히 하라”며 판결문을 읽어나갔고, 고성과 비난이 문장을 마디마디 토막냈다.
“벌금(50만원)을 납입하지 않으면….” “5년이 말이 되나.”
“하루 10만원을 1일로 환산해….” 38억원의 벌금(조세포탈)을 미납한 전재용(전두환 차남)에겐 최근 법원이 노역 하루에 400만원을 쳐줬다.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하고….” “진짜 도둑은 안 잡고.” “재판에 불복이 있을 땐 7일 안에….” “한상균은 무죄다.”
선고를 마치자마자 재판부(심담 부장판사)는 피하듯 자리를 떴다. 법원 경비대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법정 밖으로 빼냈다.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방청석을 쳐다보며 끌려나가듯 법정을 떠났다. “위원장 함부로 하지 마.” 200여석의 좌석이 부족해 서거나 통로 바닥에 앉아 공판을 지켜본 사람들의 항의가 법정에서 끓어넘쳤다.
한상균은 지난해 12월10일 조계사에서 자진퇴거하며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직전 기자회견이 조합원들과 국민을 향한 그의 마지막 공개 발언이었다.
한상균은 선고 공판 직전인 2일과 공판 당일 민주노총 후배에게 편지를 썼다. 구치소의 검열을 거친 편지에 그는 체포 상황과 구치소 생활, 가족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았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박근혜 정권의 압박, 노동을 희생양 삼은 정부 정책을 비판했고, 민주노총의 역할과 대응 방향도 당부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장대비가 내리면 고민도 잡생각도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쉼 없이 울어대는 뻐꾹새 소리에는 죽어라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노동자 민중의 한숨 소리가 더해졌는지 슬픈 가락이 되어 들려옵니다.
(정부는) 분노가 모여 폭발할까봐 두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를 분노의 싹을 자르는 기회로 삼고자 국가 폭력은 작당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어떤 사과도 없지만 우리는 반드시 국가 폭력의 죗값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국민의 반이 노동자이고 반은 노동자의 가족과 이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지 정권의 적이 아닙니다. 민생파탄의 책임을 묻기 위해 13만명의 노동자 민중이 모여 외쳤습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민심의 물결이었습니다. 잠시 위임한 권력에 취해 제왕적 권력인 줄 착각하고 있다면 어서 깨어나 노동자 민중의 절규를 들어야 합니다. 차벽과 물대포로 민심을 가두고 싶겠지만 민심은 가둘 수도 없고 포승줄로 묶을 수도 없다는 것을 민주주의의 역사는 말합니다.
공권력의 불법을 부인하기 급급한 검찰은 8년형을 구형하면서 소요죄(경찰이 1986년 이후 처음 소요죄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검찰 기소 과정에서 제외)까지 엮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정부는) 국민소득 4만불의 선진국이 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이라 말하지만, 불안전하고 저임금 구조를 벗어날 수조차 없는 노동자가 1천만명이 되는 세계 최악의 소득불평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민중의 파업과 집회·시위는 누가 뭐라 해도 정당하고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선언입니다.
선고를 이틀 앞둔 2일 그는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글자들을 불러냈다. 떠오르는 순서대로 정리한 생각들이 단락들을 이뤄 편지지 8장 분량이 됐다.
노동자들이 무죄라 생각하면 무죄
한상균 개인은 가둘 수 있겠지만
분노한 노동자는 가두지 못할 것
정권은 2천만 노동자의 영혼까지
포승줄로 묶으려 하는 것 아닌가
반년 넘게 공소사실 공방 벌였는데
공권력의 손을 들어준다는 말뿐
노동자·민중의 절규 귀 닫은 재판부
고용불안 고려해 5년만 선고했으니
고맙게 생각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서울구치소(경기도 의왕시) 수번 120번. 이날 아침 아내 장영희씨는 면회신청서에 남편의 번호를 적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12분의 면회를 함께 했다. 최근 서울구치소는 15분짜리 면회를 없앴다. 수용자 정원(2500여명)이 1천여명 초과하면서 면회시간도 쪼그라들었다. 수감 인원의 증가는 범법자가 그만큼 많아졌거나 범법자로 만들어지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었다. 2분(이른 오전은 12분·나머지 시간대는 10분)을 더 얻기 위해 그들은 평택에서 서둘러 차를 몰았다.
투명벽을 사이에 두고 아내는 최근 세상을 떠난 지인과 입대 뒤 자대 배치 받은 아들의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감옥 안에서도 지구의 모서리로 내몰리는 노동자의 현실을 걱정했다. “서신 검열이 부쩍 강화됐다”고도 했다.
조계사에서의 마지막 순간들(지난해 12월10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급한 공권력은 서울경찰청장을 직접 보내 스님들께 최후통첩을 했고, ‘어쩔 수 없다’는 (조계사 쪽의) 이야기에 긴박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나가야 한다, 더는 보호해줄 수가 없다, 이해를 해달라, 성지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스님들의) 간곡함과, 연일 국회를 압박하는 청와대와, 총파업 배수진을 치고 있는 노동자의 입장이 충돌하는 시간인지라 극도의 긴장감이 지배했습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이신 도법 스님께 ‘노동자 민중을 진정 버리실 것입니까, 저는 노동개악을 멈추지 않는 한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나간다면 시체를 치우시게 될 것’이라며 맞섰습니다.
어찌 중생이 스님께 맞설 수 있겠습니까. 2천만 노동자를 살려 달라, 자비를 요청함을 용서해주십시오. 노동자 한 명을 잡겠다고 수천명의 공권력을 동원하고 그 치졸함을 언론이 생방송하는 제정신이 아닌 나라에서, (저의 체포를) 국민들께 직접 노동개악의 심각함을 호소하는 계기로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자승 총무원장님과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꼭 해야 될 한 마디를 못하고 나왔습니다. 군사독재보다 자본독재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2천만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노동개악은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동지들을 믿고 구속되고서야 모든 과정이 생방송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상균은 25일 만에 조계사에서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했고, 경찰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펼쳤으며, 종편 등의 생중계는 그에게 ‘흉악범’의 이미지를 씌웠다. 현시대가 노동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한국방송>의 세월호 뉴스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통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지경인데, 언론을 떡 주무르듯 하는 정권인데, 불평등·양극화·불공정·민생파탄의 본질을 보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청년들이 취직할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희망을 만들어갈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문제, 그 문제의 책임은 재벌에 있는데, 그 재벌을 통제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재벌 중심 성장 정책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언론의 기능은 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치킨집 사장들이 힘든데 파견법을 빨리 개정해야 치킨집 때려치우고 파견노동자로 살 수 있다는 대통령의 기막힌 발언(지난 4월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 “은퇴를 하고 나서는 할 수 있는 게 치킨집이라든가 뻔한데, 파견법은 자영업자들이 제조·서비스업으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근본 대책”)을 여과 없이 홍보하는 언론의 민낯을 보고 있습니다. 여소야대가 되었는데도, 반노동 정책을 심판했는데도, 폐기된 노동4법을 다시 발의(5월30일 제20대 국회 개원 첫날)한 새누리당 정권입니다. 아마도 대선까지 쭈욱 밀고 가겠다는 심산으로 보입니다.
20대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90%가 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은 위헌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노조 동의 없이 불법으로 강행하고 있습니다. 노사관계를 정부가 앞장서서 파탄 내놓고는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서 국가의 미래와 국민경제를 살리는 노력을 해달라 합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지켜온 임금·고용·노동조건을 정부 마음대로 밀어붙이면서 무엇을 양보하라는 것인지, 정치란 본래 이렇게 염치도 없고 뻔뻔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당장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퇴출제·민영화 추진을 멈추어야 합니다. 4대강, 방산비리, 자원개발, 국책은행 무능과 낙하산 경영진이 쏟아버린 국민 혈세가 수백조입니다. 무능한 정권이 또다시 혈세를 낭비하지 못하게 하는 개혁이 시급함을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무능함을 폭로하고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노동조합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정부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면 떳떳이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노동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불의한 정권은 위기 때마다 파업을 유도해 탄압의 빌미를 찾았으며 거기서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불평등, 불황, 산업재편 등 온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전략과 비전은 없고 한계점에 다다른 재벌 중심 성장에만 목매고 있습니다. 대선은 다가오고 반전의 카드가 없기에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리전을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공공기관, 조선 산업, 자동차 사업장 중 어디가 될지는 모르나 정권과 자본, 노동자와 민중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이 다가오고 있음을 담장 안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묘수는 없습니다. 나의 문제는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문제입니다.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합시다.
지금이 어머님의 소망을 이뤄낼 때라고 생각합니다. 양대 노총도 긴밀한 공조 속에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양대 노총 지도부가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전태일 열사와 열사의 어머님,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2천만 노동자와 민중을 위해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 답을 찾고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을 합시다.
더 이상 박근혜 정권을 탓하지 맙시다. 임기가 다 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연대를 게을리하면, 민주노조의 소중함을 잊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피로 찾은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으니 어찌 탓할 수 있으리오.
군사독재 시절에는 파업하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구속과 해고를 각오해야 했었습니다. 자본독재는 잡아다 고문도 구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숨을 걸지 않으면 민주노조를 지킬 수 없습니다. 궁극에는 2천만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계획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진행하고 있으니 이보다 무서운 국가폭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8년 구형은 국가폭력일까. 단결 투쟁을 회피하고 노동자가 강함을 스스로 잊어버린 시간이 주는 형벌일까.
4일 서울중앙지법(서울 서초구) 앞엔 굵은 비가 내렸다. 선고 공판 직전 민주노총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한 판결을 촉구했다. 인도에 주저앉은 노동자들은 비에 젖어 가라앉았고, 그들이 손에 든 종이팻말(“한상균은 무죄”)도 땅바닥에 달라붙었다.
검찰의 8년 구형은 존속살해 최소 형량보다도 1년이 많다. 강문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퉁겨냈다.
“8년 구형이 뭔가. 한상균 위원장 때문에 사람이 죽었나. 정작 사람(백남기)이 죽어가는 것은 경찰 때문 아닌가. 역사적 정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징역 8년은 현행법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 법대로 하자. 판사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판결하길 기대한다.”
20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그중에서도 노동계 출신이 대거 포진한 환노위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합니다. 헌법을 위반한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맘대로 변경 지침은 환노위 의원 90%가 반대한다고 한 만큼 시급히 폐기시켜야 합니다.
노동기본권 보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동시간 실질적 감축,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 산별교섭, 노정·노사 간 공정한 협상 틀 마련, 청년고용 할당제, 부당노동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 등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역량을 집중할 거라 믿겠습니다. 물론 이 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도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싼 노동력으로는 중국, 인도, 베트남, 브라질 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대량해고를 대책이라 내놓고 노동자와는 대화도 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국가의 비전과 전략도 없는 조선·해양 구조조정에 대주주는 의례적인 수준의 자구안만 내놓고 정부 지원을 기다릴 뿐입니다.
비정규직 임금착취로 땅 짚고 헤엄쳐 온 결과 곳간에 부를 축적한 재벌들이 이럴 때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자청해야 함에도 재벌도 정부도 노동자의 고통 전담만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운데 무작정 파업할 노조는 없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모든 노동자의 고용을 최우선으로 지켜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노사 간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균형 있는 조정과 지원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노사의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이용하거나 파국의 길로 몰아넣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해고는 살인입니다.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3년의 감옥 생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해고된 동지들의 연이은 죽음이었습니다. 사회 안전망도 없는데, 이 사회는 해고자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받아 안지 않았습니다. 수백 군데 이력서를 내면서 살아보려고 악다구니를 써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가정은 파탄 났고 모든 인간관계는 단절됐으며, 이 절망을 받아주는 곳은 오직 한 군데, 지옥의 문뿐이었습니다.”
감옥도 사람 사는 동네입니다. 스치는 인연이 있기에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곳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진정성이 없다는 질책이 많았습니다. 하청 공화국을, 노동자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꿔내는 노력을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최저임금 1만원 이상을 요구한 민주노총에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여론이 확산되었음을 느낍니다.
지난번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독방에서 생활합니다. 지난번엔 수염을 길게 길렀고 이번엔 면도를 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의 단식은 쉬우나 복식은 여건상 매우 힘듭니다. 굶기보다 다시 먹는 것이 이번처럼 고통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변을 보는 일 또한 처절하고요. 돌덩이처럼 단단한 똥 알갱이를 손으로 빼내고 나면 상처가 나고 피가 나는 고통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굶지 말고 잘 먹고 잘 싸웁시다. 열사도 되지 말고 전사가 될 각오로 말입니다. 한광호 열사(2011년 직장폐쇄 이후 사쪽의 차별·탄압으로 고통을 겪다 지난 3월17일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노동자), 열사투쟁 승리해서 저승길 잘 모셔 보내드립시다. 장대비를 뚫고 꽃상여 100리길 어영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하고 미안하고 슬펐습니다. ‘민주노조 사수’ ‘노조탄압 분쇄’ 만장이 함께하면 저승길 조금은 맘 편히 가실 것 같습니다. 산 자의 몫입니다.
“자꾸 고생시켜 미안하네.” 2일 면회실에서 한상균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남편의 약해진 이빨을 걱정했다. 3년의 감옥 생활과 171일간의 고공농성 뒤 그는 통풍을 얻었고 이빨이 상했다. 장영희씨는 오랫동안 ‘와락’(쌍용차 해고노동자 자녀 치유센터)의 식사를 책임져왔다. 남편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 때도 음식을 만들어 송전탑 위로 올렸다. 면회실에 들어가기 전 그는 밥을 할 때마다 남편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도 전쟁이란 말이 싫습니다. 노예로 살 것인가 노동자로 살 것인가. 수많은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면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패배가 악다구니가 되어 기어이 전쟁에서 승리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가득 찬 분노를 가슴으로 끌어와 노동자의 힘이 강함을 선언할 만큼 발효시킵시다. 자본독재를 물리칠 때까지,
재판부는 검찰 기소를 모두 수용하고 한상균 쪽의 주장은 모조리 배척했다. 그의 형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2012년 이후 그가 관여한 집회·농성 13건을 병합해 유죄 처분했다. 선고 뒤 긴급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공안검사와 다를 것 없는 공안판사”라며 울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영희씨가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이틀 전 구치소를 나오며 그는 “최악의 경우 3년”을 말했었다.
민주노총은 100여명의 법률가가 참여하는 ‘시국 변호인단’을 꾸려 위원장 항소심과 기소된 노동자들의 재판을 지원할 계획이다. 배태선 조직실장(징역 6년 구형)과 이현대 조직국장(5년 구형), 조성덕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5년 구형)의 선고공판이 7월 중 예정돼 있다. 박준선 조직국장은 징역 1년을 선고(6월2일)받았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를 망라한 대규모 시국회의도 추진된다.
법원에서 구치소로 돌아온 한상균은 그날 두 번째 편지(2장 분량)를 썼다. 법원에서 동료에게 남긴 짧은 한마디로 편지는 시작했다. 선고 결과에 강하게 반발했고, 5년 뒤 달라져 있을 자신의 얼굴과, 아흔살을 넘길 어머니의 나이와, 그 시간만큼 더 거칠어져 있을 아내의 손을 예감했다. 세상이 ‘스마트’해지는 만큼 노동자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져 있길 한상균은 독방에 갇혀 소망했다.
노동자 민중이 무죄라 생각하면 무죄다. 개인 한상균은 5년이 아니라 평생 가둘 수 있겠지만 분노한 이 땅의 노동자는 결코 가둘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의 바람대로 슬퍼만 하고 분노를 조직하지 못한다면 이 땅의 노동자는 노예라 불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천만 노동자의 영혼까지 포승줄로 묶으려 하는 것 아닌가.
이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파업과 투쟁은 정당한 시대선언이다. 노동조합의 동의도 없이 설득조차 포기한 채 쉬운 해고와 전 국민의 비정규직화를 노동개혁과 일자리 대책, 경제위기 대책이라며 불법과 탈법을 통치행위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총칼의 군사독재보다 무서운 자본독재의 실상을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서 마주하고 있다.
재벌을 대리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은 죽느냐 사느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먼발치서 동지들의 싸움을 지켜보아야만 하지만 동지들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5년의 감옥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동지들을 뒤로하고 호송차에 앉으니 호송차의 속도보다 한결 빠르게 생각이 되살아나고 내일의 시간들이 펼쳐졌다. 판결문을 읽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반년이 넘도록 공소사실에 대한 치열한 공방을 벌였는데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빠트린 물대포는 무조건 위법했다는 당연한 판결 말고는 소요죄까지 뒤집어씌우고 싶었던 공권력의 손을 들어준다는 말뿐이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서울로 모여든 13만 노동자 민중의 절규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지 귀를 닫은 재판부였다. 민심과 민주주의를 차벽과 물대포로 가두는 게 목표였던 공권력 남용에도 눈을 감은 재판부였다. 형식을 갖추려는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양형을 결정하면서 고용불안과 임금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 요소가 있는 점을 고려하고 참작해서 5년만 선고했으니 고맙게 생각하란 말로 들렸다. 사회적 약자와 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외면한 채 민생을 파탄 낸 박근혜 정권의 노동자 민중 탄압에 면죄부를 준 판결을 역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소박한 변화는 일어나고 있을까. 최저임금으로 절망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맞아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노동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 아들과 딸들이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면서 희망을 키워가는 평범한 일상이 되돌아왔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내는 데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이 바로 부강한 대한민국의 기본임을 이 사회가 공감하고,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상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혁명의 다른 말이 아니던가.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적 약자와 한편이 되기 위한 헌신과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증오로 넘쳐나는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지고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오랫동안 지내야 할 안식처에 도착했다. 장대비가 회초리가 되어 후려친다. 너마저 국가폭력에 무릎을 꿇으려 하느냐 묻는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시대의 절망을 누가 희망으로 만들겠는가. 노동자다. 감옥에서 법정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민중이 무죄라 했으니 노동자답게 살아가리다.
서울구치소에서 한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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