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나 한 잔
“우리 근대 소설의 문을 연 작품”, “당시 지식청년들의 자서전”, “한국 근대문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는 소설 ‘무정’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해가 1917년이다.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해가 이듬해인 1918년이다. 이때면, 적어도 조선의 큰 도시에 사는, 월급쟁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낮술이 맥주다. 유월 경성 하늘 아래, 그 낮술이 막걸리도 아니고 과하주도 아니고 맥주, 맥주다.
“대관절 어디로 가는 길인가. 급지 않거든 점심이나 하세그려.”
“점심은 먹었는걸.”
“그러면 맥주나 한 잔 먹지.”
“내가 술을 먹는가.”
“그만두게. 사나이가 맥주 한 잔도 못 먹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자 잡말 말고 가세.”
_이광수, ‘무정’에서
이것은 왜 음식문헌이 아니란 말인가
소설 ‘무정’의 도입부 가운데 한 장면이다. 작품의 남성 주인공,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내려 쪼이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며 경성의 유력자 김 장로네로 가는 길이다. 올해 미국으로 유학가는 김 장로의 큰딸 선영의 영어 개인교사로 초빙된 까닭이다.
이 발걸음이 술 잘 먹고, 놀기 좋아하는 형식의 벗 신우선 때문에 잠시 막힌다. 신우선은 형식을“미스터 리!” 하고 불러 세웠고, 대낮에 바란 술은 “맥주”다.
상주의 교체
맥주는 개항과 함께 조선에 밀려들어온 대표적인 해외 주류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과 함께 체결된 <해관세칙(海關稅則)>에 따르면, 맥주는 저도주인 레드와인 및 화이트와인과 나란히 거론되었으며 그 관세율은 모두 10%였다.
이만한 대외 조약에 대응하기 위해, 1880년대 조선 관리들은 구미열강의 주류 제조와 판매에 관한 촘촘한 보고서를 써냈다. 주류를 거론하기 위해 구미 지리를 개관하고, 구미 산업 현황을 개관했다. 당시 조선 관리들은 맥주 강국인 그레이트브리튼은 대불열전(大不列顚)으로, 잉글랜드는 영길리(英吉利)로 분명히 구분했다. 또 다른 맥주 강국 네덜란드는 니달란(尼達蘭)이라 쓰되, 화란(和蘭)[홀란드(Holland)]은 나라가 아니라 네덜란드의 한 주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했다. 이때 조선 관리들이 맥주를 이른 말은 “상주(常酒)”다. 곧 “일상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마시는 저도주”라는 뜻이다.
유럽 상주 산업을 개관한 조선 관리들은 논의를 이렇게 이끌었다. : 유럽은 늘상 마시는 저도주인 맥주에 과세해 세수를 늘리고, 자국민 건강도 돌본다. 그러니까 우리 조선도 그렇게 하자!
그러나 조선의 맥주 환경은 뜻있는 관리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벋었다. 조선의 국정 기획이 완전히 무너진 1890년대 이후, 조선 사람들에게 퍼진 맥주는 일본에서 수입된 맥주였다. 1900년대에 이미 조선에 퍼진 일본 에비스맥주는 조선의 신문 광고에다 대고 이렇게 외쳤다.
“마시기 좋고, 좋고, 또 좋은 맥주! 맥주 마실 줄 모르면 개화한 사람이 아니라오!(可飮可飮可飮麥酒. 不飮麥酒者非開化之人.)”
이윽고 1917년쯤 되면, 맥주는 경성 하늘 아래, 사내라면 마셔야 할 음료로 몸을 나툰다. 이미 보신 대로다. 사나이가 맥주 한 잔도 못 먹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이른 여름, 얼음 한 줌
형식이 친구와 낮술을 뿌리치고 김 장로네에 가 닿으니, 김 장로가 금지옥엽 딸자식의 개인교사를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로가 책상 위에 놓인 초인종을 두어 번 울리니 건넌방으로서(건넌방에서), ‘녜’ 하고 열너덧 살 된 예쁜 계집아이가 소반에 유리 대접과 은으로 만든 서양 숟가락을 놓아 내어다가 형식의 앞에 놓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복숭아화채에 한 줌이나 될 얼음을 띄웠다.”
그렇다. ‘무정’의 시대는 제빙의 시대이고 냉동의 시대였다.
1864년 조선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시작된 그 해, 얼음이 전세계 53군데 항구를 엮은 수송망을 타고 상업화됐으며, 조선 개항 5년 전인 1871년에는 이웃나라 일본에 3500톤 규모의 얼음 저장고가 건립된다. 이윽고 1880년이 되자 세계적으로 인공빙 제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1890년대면 조선에도 현대적 얼음보관 시설이 생기기 시작한다. 1910년대에 들면, 조선 사람들이 한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 또는 빙수를 어렵잖게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또 뭐?
뭐가 아니다. 덕분에 냉면이 경성을 비롯한 대도시의 여름 음식으로 나설 여지가 생겼단 말이다. 늦가을에 메밀 거두어, 동치미에 살얼음 잡혀야 가능한 음식 냉면. 그러나 제빙기가 있다면 계절은 간단히 초월할 수 있다. 차갑게 식힌 청량음료며 빙과류는 덤이다.
중세의 얼음, 한여름에 내는 얼음이란 동서를 막론하고 일종의 전략비축물품이었다. 응급에 대응하기 위한 구급약이다.
이를 얼음물이나 셔벗에 써 먹는 사람이라면, 미식에 써먹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필시 제왕이거나 제왕에 준하는 대단한 신분일 터. 그러다 산업혁명과 함께 얼음 평등의 시대도 왔다.
김 장로네서 어여쁜 아가씨와 첫 영어 개인교수를 마친 형식이, 만날 구더기 나오는 장찌개를 끼니로 내놓는 제 하숙집으로 돌아오니 한 여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여인은 오늘의 촉망받는 영어 교사 형식을 있게 한 은사의 따님 영채. 이런저런 사정으로 영채의 아버지와 오빠는 옥중에서 목숨이 끊어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영채는 기생으로 영락한 몸이다. 저간의 사연을 털어놓고 보니 영채도 형식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콧물이 줄줄이다.
영채는 서럽게 울다 숨이 넘어갈 판인데, 자기 방에서 또한 울며 사연을 엿듣던 하숙집 노파는 거리에 나아가 빙수를 사가지고 들어와 영채를 흔든다.
“여보, 일어나 빙수나 한 잔 자시오. 좀 속이 시원하여질 테니.”
1917년 그때, 유력자 김 장로네에서나, 장독 관리 허술한 서민의 하숙집에서나 아무튼 얼음 구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화려한 복숭아화채든, 싸구려 빙수든 아무튼 얼음을 음식 재료로 써먹을 수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소설 ‘무정’은 앞으로 일본제국 교통망을 따라 최근 100년 한국 음식문화사의 만화경을 펼칠 것이다. 지면의 한계로 이번 호에서는 여기까지! 이하는 다음 호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