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적 강력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가 들쭉날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개 결정 주체나 기준도 불명확한 데다 경찰은 지금까지 신상이 노출된 피의자 현황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상 공개는 피의자와 그 가족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소지가 큰 만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지난 15일 경기 안산시에서 인질 살해극을 벌인 김상훈의 얼굴과 이름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이는 2010년 4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신설된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조항에 따른 것이다. 강력범의 신상 공개 논란은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실명과 얼굴이 일부 언론에 유포되면서 불거졌다.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끼친 강력범의 신상을 보호해 줄 가치가 있느냐는 여론이 무르익자 경찰은 이듬해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범 김길태의 얼굴을 공개했고, 곧이어 특례법까지 개정했다.
물론 신상정보 공개 조건이 법에 있기는 하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및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이다.
문제는 기준 자체가 워낙 모호한 탓에 현장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고 있어 사건마다 법 적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가령 ‘서초구 세 모녀 살해’ 사건 피의자 강모(46)씨도 사회에서 실패한 가장의 무책임한 가족 살해라는 점에서 안산 인질극 못지 않게 국민의 공분을 샀지만 경찰은 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담당 경찰서인 서초서 관계자는 “특별히 공개할 사항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을 뿐,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주먹구구식 기준에 대해 경찰은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27일 “일선 경찰서 사건 담당자가 지방경찰청과 상의해 사회적 경종을 울릴 판단이 섰을 때 신상을 공개한다”며 “수사에 미치는 영향도 적어 따로 보고를 받거나 관련 자료를 축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상 공개 조항은 임의규정이어서 수사기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강력범 신상 공개는 피의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기본권 침해 위험성이 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특례법에 의해 신상이 노출된 피의자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명예회복 등의 구제 방법이 없고, 흉악범의 가족이라는 낙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추가 범죄 예방과 신속한 체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중요 사건 수배자나 아동ㆍ청소년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피의자처럼 확실한 공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상 공개 결정의 이유와 근거 주체 등을 기록으로 남겨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인권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며 “철저한 관리가 수반되지 않으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빌미로 말초적 호기심만 충족시키는 범죄상업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