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2016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홈페이지
밀양 연극촌 성벽극장에서 제16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극단 목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오태석 번안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했다.
1940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한 오태석은 연세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그의 첫 희곡 「영광」이 시민예술제 희곡 공모에 당선되어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지면서 연극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웨딩드레스」가 당선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초기에 서구의 모더니즘 희곡 형식을 실험하다가 1970년대 이후로는 전통극적 요소를 작품에 수용하면서 작가 고유의 희곡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오태석의 희곡은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다룬 부조리극 계열의 작품들과,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분류될 수 있다. 논리적인 인과 법칙보다는 자유로운 연상의 흐름에 따라 극적 서사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기발한 발상과 유희적인 상상력이 넘쳐흐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비논리적이며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태석은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도 왕성한 극작 활동과 연출 활동을 전개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가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이 관객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로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태석이 한국 현대 희곡사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사실주의 희곡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극 형식을 실험하였기 때문이다.
오태석은 현재 목화레퍼토리 컴퍼니의 대표 겸 상임 연출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육교 위의 유모차>,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초분>, <태>, <춘풍의 처>, <사추기>, <자전거>, <부자유친>, <비닐하우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백마강 달밤에>, <여우와 사랑을>, <천 년의 수인>, <코소보 그리고 유랑>, <잃어버린 강>, <지네와 지렁이>, <내 사랑 DMZ>,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만파식적>, <양화진 사랑>, <분장실> 그 외의 다수 작품을 발표 공연했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높다란 담장이 있고 그 앞으로 청기와를 덮은 대청이 무대 좌우로 펼쳐져 있다. 무대 중앙에는 낡은 천에 그린 고구려 강서고분의 벽화인 청룡(靑龍)의 그림이 자리를 잡았다. 이 그림은 평안남도 대안 시에 위치한 고구려 후기 사신도 벽화고분그림의 하나로, 사신도 벽화 가운데 가장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고구려 절정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벽화는 고분 4면 벽에 사신(四神)으로 불리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이며 제작 연대는 7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연극의 시대적 배경을 고구려 후기라고 생각하며 관람을 시작했다.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장면에 십자가 무늬가 들어간 사제복을 입은 천주교 신부가 등장한다.
한반도에 천주교가 최초로 뿌리내린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다고 해도. 그 시기는 임진왜란(1592~98) 때 일본군을 따라온 예수회 선교사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Gregorio Céspedes)에 의해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설에서부터,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의 한사람으로 잡혀갔던 소현 세자가 1645년 청나라에서 돌아오면서 독일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신부에게 가톨릭교회 서적과 지구의 등을 선물로 받아 가져와 전래되었다는 설까지 거의 100년에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추측이 존재한다.
연대가 가장 명확한 천주교 전래에 관한 기사는 1631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서양의 문물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가져왔다는 내용이다. 실학자 홍대용(1731년-1783년)이 쓴 <담헌연기(湛軒戀記)>에도 중국을 오가던 조선 사신일행에 의해 천주교가 소개되었음을 변증하는 내용이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시대적 배경을 조선왕조 중엽으로 설정한 것이려니 했다.
그러자 로미오와 줄리엣의 신방 장면에서 비단으로 보이는 흰 천과 붉은 천이 등장한다. 두 남녀 주인공이 그 천을 가지고 연기를 펼친다. 그 천이 비단이라면, 영 정조 시대에 친잠례(親蠶禮) 행사라 하여, 대궐에서 왕비와 왕실의 여자 인척, 그리고 비빈은 물론 상궁과 나인들까지 누에치고 뽕잎을 따고, 누에고치를 풀어 베틀에 비단을 짜내는 시범을 보이며 백성들에게 양잠(養蠶)을 권하던 일이 있었기에, 이 연극의 시대적 배경이 영조(1694~1776) 정조(1776~1800) 시대 이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연극에서 캐플릿 집안과 몬테규 집안 청년들의 대결에서 무기로 칼을 사용한다. 조선왕조 중엽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발발 시에는 이미 장총과 소총이 사용되었기에, 칼만 사용한다는 것도 시대적 배경을 추축하기에 미흡하다.
어쨌건 우리 한반도의 조선왕조의 개화기 이전으로 시대적 배경을 설정을 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관람을 시작했다.
출연자들은 청황색 한복이나 백색 한복을 입고 등장을 하고, 소품으로 쌀 켤 때 사용하던 키를 들여다 놓는다. 그리고 충청도 서천지방의 방언을 구사한다. 내용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따랐으나, 번안과정에서 한민족의 대사와 습성 그리고 풍물로 바꾸고, 무대 상수 쪽에 연주석을 마련하고, 우리의 악기와 가락으로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줄거리는 원작을 따랐으나, 한민족의 특성... 이미 통일 신라시기에도 백제 고구려 신라의 백성들이 통일 이후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결국 후백제 후고구려로 갈라서고 말았듯, 현재의 동서 갈등이라든가, 남북의 대결에서 보듯 화합이나 단결을 못 하는 민족적 천성이 이 극에서 그대로 연출된다.
원작에는 적대적인 양가가 대단원에서 화해와 화합을 하는 결말을 보이지만, 이 연극에서는 대결로 양가가 다 멸망하고, 현재 북에서 핵으로 남을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현실을 반영하듯, 이 연극에 마지막 장면은 양가의 대결과 자멸의 길로 종말을 맺을 즈음, 핵폭탄이 터지는 듯 천지를 진동하는 폭발의 굉음과 함께 배경의 담장이 산산조각 나 하늘로 튀어 오르고 청기와 지붕이 붕궤되는 경악할 장면과 함께 연극은 끝이 난다.
정진각, 송영광, 김준범, 윤민영, 정지영, 유재연, 천승목, 조원준, 배건일, 김봉현, 박지훈, 이준영, 김유미, 조유진, 이보다미, 임주은, 김지혜, 이신호, 김명준, 장원준, 이봉연, 최윤영, 이근환, 손현우 등 출연자 전원의 조화이룬 협연은 물론 각자의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가야금 차다혜, 대금 조이슬, 아쟁 이건우, 피리 정혜영 , 해금 송예슬, 장구 김영온 등 연주자들의 기량과 연주가 극과 어우러져 극의 분위기 상승은 물론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의상 이승무, 조명 이경천, 사진 이도희 신귀만, 컴퍼니 매니저 오준현, 기획 정지영 이병용, 안무 강은지, 악사 차다혜, 프로듀서 이혜정, 라인 프로듀서 이해인 이경빈, 홍보 김수정 박소영 등 스텝 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제 16회 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 극단 목화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오태석 번안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계적인 연극제에 내 놓아도 좋을 명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박정기 문화공연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