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28일 알리바바 본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났다. 이날 양측은 의례적인 인사 정도만 나눴지만,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11번가 등 오픈몰 경쟁사들은 이르면 연내 알리바바가 한국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비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통 공룡’ 알리바바가 본격 진출할 때 생길 일들을 가상으로 엮어봤다.
2015년 말 어느 날, 알리바바그룹의 B2C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가 한국 사이트 ‘korea.taobao.com(미정)’을 열었다. 평소 해외 직구(직접 구매)에 관심이 많았던 직장인 김 모씨는 오픈마켓에서 쉽게 볼 수 없던 폭탄세일에 눈이 번쩍 뜨였다. 타오바오 메인 페이지에 ‘삼성 55인치 LED TV 30% 할인’ ‘하이얼 와인냉장고 60% 할인’이라는 이벤트 배너 광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행사 기간과 제품 수량이다. ‘행사 기간 3개월. 수량 1만개 매진 시 다른 상품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소위 ‘미끼상품’ 수십 개를 선착순 한정 판매해온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G마켓 옥션 11번가 등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 역시 이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할인 상품을 내놨지만 타오바오의 물량 공세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개인적으로 쇼핑몰을 운영해온 중소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특히 중국 제품을 수입해 판매한 소상공인들은 당장 생계가 불투명해졌다. 반면 소비자들은 신이 났다. 가입을 하면 TV 말고도 주요 가전, 의류를 30%까지 싸게 살 수 있는 쿠폰이 주어졌다. 한 번 사용하고 끝나는 단발성 쿠폰이 아니라, 역시 이벤트 기간에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다.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소상공인들은 이전보다도 훨씬 쉬운 방법으로 중국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과거에 중국 타오바오에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중국 내 타오바오 통장 개설이 필요했고 중국 현지 주소와 전화번호, 출입국 확인 사진도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국내 알리바바 물류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니 중국까지 빠른 배송이 가능해졌고 반품·교환 절차도 편리해졌다. 한국에 본사가 생기자 국내 홈페이지에 올린 상품 정보를 중국 홈페이지에 자동 등록하는 서비스도 생겼다. 무엇보다 알리바바가 한국에 본격 진출하며 계열 핀테크 업체인 ‘알리페이’가 국내 모바일·인터넷 결제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그 덕분에 중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밥솥 화장품 등의 직판(직접 판매)은 눈에 띄게 늘었다.
한번 충전해 두면 이자까지 붙는 데다 ‘원클릭’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결제시스템은 한국에도 단골을 만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에 앞서 알리바바는 인천 영종 경제자유구역에 초대형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중국에서의 ‘오전 주문·오후 배송’이라는 조건을 한국에도 그대로 가져온 알리바바의 물류 시스템은 한국 소비자에게 환영을 받았다. 여기에 알리페이를 사용하면 택배비용을 반값으로 할인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다.
알리바바가 한국에 설립한 알리바바 물류센터에는 중국 지역으로 배송되는 다양한 상품이 모인다. 알리바바는 이곳을 물류기지로 삼고 보세물류센터를 만들어 중국 지역 간 배송 상품의 중간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일반 물류센터에서는 중국에서 온 상품을 국내 소비자에게 배송하고, 국내 상공인들의 제품을 중국 소비자에게 배송해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로써 국내 소비자들의 반품·교환이 쉬워지고 상공인들도 쉽게 중국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수 있게 됐다.
알리바바는 이와 함께 우리나라 수도권 근교에 초대형 ‘알리바바 리조트’ 건설에도 착수했다. 본토 사이트에 한국 여행 전용 상품을 개설하고 한국에 세운 리조트로 중국 고객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알리바바 그룹 내 인터넷 오픈마켓 타오바오의 중국 내 회원은 4억5000만명으로 이들이 알리바바를 통해 저가 여행상품을 구매해 국내로 들어온다면 중국인을 상대하는 여행사들은 크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제품을 수입해 오던 소상공인들에게도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마진을 아무리 줄여도 타오바오를 통해 직접 구매하는 비용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할 수가 없다. 타오바오 중국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현지 제품은 1억개 이상이다.
알리바바가 한국에 온 뒤 11월 11일은 더 이상 빼빼로데이로 불리지 않는다. 솔로를 대표하는 숫자 1이 4개가 붙어 있는 ‘솔로의 날(광군제·光棍節)’은 알리바바가 지정한 ‘쇼핑의 날’이기 때문이다. 타오바오는 ‘쌍11’ 프로모션으로 주요 브랜드 상품 50% 할인을 내걸었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한 국내 홈쇼핑 대표는 “타오바오가 진출해도 우리나라에서 중국 현지 상품은 짝퉁 논란에 잘 안 팔릴 것”이라며 “예전부터 타오바오에 올라 있는 한국 상품이 인기였는데 일부러 정품 티를 내려고 한국 면세점 영수증 사진을 찍어 함께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