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연극촌 스튜디오극장에서 젊은 연출가전 극단 백수광부와 극단 창작상자 끈의 사에구사 노조미(三枝希) 작 린다 전 연출의 <와스레노코미(잊고 싶은 추억)>을 관람했다.
번역과 연출을 한 린다 전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대학 시절 공부보다는 연기에 빠져서 대학로를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1996년 연기자로서 좌절을 겪고 도피하듯 떠난 일본 배낭여행에서 전기를 마련했다.
"오사카에서 우연히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 무대를 보게 됐습니다. 일본 말도 전혀 알아듣지 못해 무얼 표현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갑자기 눈물이 나더군요. '저기 무대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그 길로 일본어학교에 등록을 하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년 만에 어학 과정을 마친 그는 1997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으로 발탁돼 긴키(近畿)대 문예학부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졸업 후 오사카예술대 대학원에서 예술제작과 연극무대로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같은 동 대학원에서 예술박사 1호가 됐다.
유학 시절 틈틈이 무대에 섰고 졸업 후에는 연극·영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일본에서 연극 무대만 40회 이상, 영화에도 재일동포로 또는 일본인 역할로 10여 회 이상 출연했고 직접 연출한 작품도 여럿이다.
극단 기즈나를 이끌고 춘천국제연극제, 재외동포서울예술제, 밀양연극제 등 여러 축제에 참여해 일본 연극을 한국에 알려왔다.
이 밖에도 일본 지방 방송국의 라디오 DJ, 영화제 사회와 통역, 양국 영화·연극 시나리오 번역, 한국 영화 일본인 역 연기 지도 등 전방위 활동을 벌여왔다. 일본 간사이배우협회 회원이며 일본연출가협회의 유일한 외국인 회원으로 연기와 연출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연극제에서 만난 영화배우 정만식과 2013년 12월에 결혼한 린다 전은 2014년 귀국해 양국을 오가며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희곡 '와스레노코리'를 직접 번역하기도 한 그는 "양국 무대에 서본 경험을 살려서 공연을 통한 한·일 교류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문화가 지닌 전파력은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힘이 있습니다. 양국이 정치적으로는 갈등을 빚고 있지만 연극에서는 편견 없이 오로지 작품성만을 갖고 따집니다. 뛰어난 작품에 좋은 연출과 연기가 더해지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극장 문을 두드리기 마련입니다."
<와스레노코미(잊고 싶은 추억)>은 오사카의 대표적인 희곡작가 사에구사 노조미(三枝希)가 처음부터 린다 전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와스레노코리]는 忘(와스레루)와 (노코루)로 직역하자면 “ 잊히고 남은 것” 이지만 제목을 <잊고 싶은 추억>으로 바꿨다.
중국인 처녀 샤오미는 어릴 때 아빠가 술 취해 때려서 맞은 기억이 전부이지만, 연락 두절된 아빠를 찾아서 일본으로 가 민박을 하게 된다.
민박집에는 딸이 네 명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민박집의 부친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모친 상 발인 전날이다. 네 자매 중 큰언니는 모친을 모시고 민박을 운영한다. 둘째는 독립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자기 주장이 확실한 여인이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틈에서 살다가 도피처로 이른 결혼을 선택한 여인이다. 넷째는 모친이 아직 병원에 살아계신 것으로 믿는데다가 기른 지 15년이나 되어 이미 죽은 고양이를 아직도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대신 고양이 인형을 가져와서는 기르던 고양이라 생각하며 애정을 쏟는 정신질환자이다. 혼자가 된 이모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모의 딸은 자기 엄마에 대한 불만,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가족들은 죽은 모친에 대한 추억 하나만으로 겨우 가족적 분위기를 유지할 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소중함이나 그 어떤 배려 심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둘째는 모친상을 당한 애도보다는 재산분할에만 관심을 보인다. 셋째는 두 언니 사이에서 힘들어 하고, 이모는 이들을 말려보지만 조카 모두는 들은 척도 않는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모친과의 목욕탕에서의 추억, 바닷가로 외출을 하거나, 산책을 하자는 제안도 부정적인 의견 충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넷째는 계속해서 인형 고양이에게만 관심을 쏟고,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이상 징후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족의 갈등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첫째는 그런 그녀를 감싸고 이해하려 애쓰지만 나머지 자매들은그렇지 않다. 어쩌면 이 연극은 일본작가가 발표공연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대단원에서 중국인 처녀는 민박 집 딸들의 행태를 보면서 아빠 찾는 것을 포기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경회, 박하영, 이은희, 민해심, 박하영, 린다 전, 심아롱 등 출연자 전원의 독특한 성경창출과 호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받는다.
무대 민병욱, 의상 박인선, 조명 김준태, 음악 김동욱 등 기술진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백수광부와 극단 창작상자 끈의 사에구사 노조미(三枝希) 작 린다 전 연출의 <와스레노코미(잊고 싶은 추억)>을 기억에 길이 남을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박정기 문화공연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