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문재인 전 대표는 13일 백령도에서의 1박 2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을 찾았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 헌화한 데 이어 맥아더 장군 동상까지 찾아 ‘안보는 우(右)클릭’이란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최근 “사드 배치가 현실화돼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막아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사실상 집권 이후를 대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다만 문 전 대표 측은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조롭던 더불어민주당 당권 경쟁이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13~16일 더민주의 전대(전국대의원대회)가 ‘뜨거운 지역’인 호남(전북·광주·전남)에서 열리면서 민감한 주제들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문재인 전 대표의 경쟁력을 둘러싼 논란과 국민의당과의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다. 당 대표 후보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내년 야권의 대선 지형이 달라진다. 더민주의 당권 경쟁은 내년 대선을 앞둔 샅바싸움인 셈이다.
문재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포문을 연 건 이종걸 후보다. 그는 13일 광주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작심이라도 한 듯 “이번 전대는 문재인 대리인을 뽑는 전대가 아니다”라고 치고 나갔다. 이 후보는 “‘이래도 문재인 저래도 문재인’하다가는 문 전 대표가 무난히 대선 후보가 돼서 무난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 친문 패권집단’이라는 용어도 구사했다. 원래 당내 비주류이긴 하지만 주류와 각을 한층 더 날카롭게 세운 것이다.
이 후보는 광주 연설회 전 기자와 만나 “지금 당은 친노, 친문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여론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으로 당이 사상누각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인물의 독점적 지위를 방치하고선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없고 그러면 당은 해체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선 후보로서 문재인 전 대표의 경쟁력에 강한 의문부호를 찍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극적 긴장도를 한껏 고조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2002년 노무현 후보를 탄생시킨 국민참여경선의 2017년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손학규, 박원순, 김부겸, 안희정 등 뒤처져있는 주자들을 키워서 문재인 전 대표가 앞서나가고 있는 구도에 어떻게든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종의 ‘후발 주자 육성론’이다. 그 방법에 대해 이 후보 쪽 관계자는 “이종걸 대표가 되면 후발 주자들을 당 전면에 내세우는 등 언론 노출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며 “미국의 소수계층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 쪽은 특히 손학규 전 상임고문에 주목하고 있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손 전 고문과 직접 교감하고 있는 건 아니나 손 전 고문을 지지하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선거를 돕고 있고 지난 예비경선 통과 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종걸 후보를 돕는 의원으로는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정성호, 이상민, 안민석 의원 등이다. 김기준, 김희선 전 의원 등도 지원하고 있다.
이종걸 후보의 대척점에는 추미애 후보가 서있다. 추 후보는 합동연설회에서 “당원과 국민이 지지하는 1등 후보를 흠집내고, 상처내는 것은 공정도 아니고 혁신도 아니다”라며 “경선 후에는 후보를 끌어내리지 못하도록 ‘경선불복방지위원회’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이종걸 후보의 방식이 ‘문재인 흠집내기’에 불과하고 더민주의 고질병인 당내 분란만 가중시킨다는 판단이다. 추 후보의 전략은 문 전 대표의 지지층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종걸 후보의 접근 방식이 자칫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흔들었던 ‘후단협'(대통령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과 지난해 분당 사태의 악몽을 재연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추미애 의원을 돕는 이들은 김용익, 백원우, 진성준, 김현 전 의원 등으로 이른바 ‘친문’으로 분류된다.
추 후보는 또 이종걸 후보의 후발 주자 육성론에 대해서도 “누구나 정치적 자산을 개척해야 한다. 확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정치 자산을 가지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축한다. 추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종걸 후보의 주장은 접바둑(실력 차이가 있는 사람끼리 바둑을 둘 때 하수가 바둑돌 몇개를 미리 놓고 두는 바둑)을 두자는 건데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선 규칙만 공정하면 되지 인위적인 후보 부양은 없다는 것이다. 추 후보는 공정한 경선을 위해 경선 규칙은 외부인사를 영입해서 짤 계획이고, 경선 과정은 전면적으로 중앙선관위에 위탁할 방침이다.
김상곤 후보는 ‘친문-반문 논쟁’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당 대표의 역할은 대선 후보들의 경쟁력을 키우면서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에 있다”고 논쟁을 피해간다. 대신 그는 “당 대표가 되면 곧바로 집권 전략과 집권 후 국가 경영전략 마련에 착수하고, 대선 6개월 전까지 후보를 확정한 뒤 경선에 참여했던 모든 후보와 당내 역량을 결집해 예비내각을 구성할 생각이다”고 말한다. 후보보다는 당의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김상곤 후보의 캠프는 뚜렷한 색채 없이 연합군의 형태를 띄고 있다. 문재인 후보와 가까운 의원들 가운데는 윤후덕, 최인호 의원 등이 있으나 안희정 지사와 가까운 김종민 의원도 거들고 있다. 김종민 의원은 “개인적인 차원일 뿐 안 지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래도 눈에 띄는 건 김부겸 의원 쪽이다. 김부겸 의원의 조직이 김상곤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는 정황이 눈에 띈다. 김부겸 의원 쪽 관계자는 “처음에는 김상곤 후보가 망치 좀 빌려달라 톱 좀 빌려달라고 해서 하나씩 빌려줬는데 이제는 아예 공구함을 통째 넘겨주고 ‘쓰신 뒤 돌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김부겸 의원으로서는 추미애 의원이 당 대표가 될 경우 내년 대선 후보 경선 때 현재의 문재인 우위 구도를 넘기 어려울 걸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의당과 어떤 관계를 맺을 거냐는 내년 대선에서 더민주의 핵심적인 의제다. 후보로 보자면 사실상 안철수 전 대표와의 단일화 문제다. 때마침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호남 연정론’을 제기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문제도 이종걸 후보가 가장 적극적으로 의제를 던지고 있다. 이 후보는 기자와 만나 “지난 총선은 운이 좋아 이긴 것일 뿐이다. 야당이 분열해서는 내년 대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후보로서는 국민의당과의 연대와 통합이 최우선 과제다. 내년 더민주에서 누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확정된 후보가 아니다. 국민의당 후보와 결승전을 치를 예선 후보인 셈이다. 이 후보는 본선을 치르는 방식에 대해서는 “굳이 국민의당과 당 대 당 통합이 필요한 건 아니다. 과거 서울시장 후보를 결정할 때의 박원순-박영선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일반 국민의 마음이 왜곡되지 않고 온전하게 반영되는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룰 거냐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의 여론조사 방식은 믿을 수가 없고 숙의민주주의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걸 후보는 이어서 “지난번 대선 때 단일화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안철수 의원이 다시 후보 단일화 논의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안철수 의원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역시 추미애 후보가 가장 비판적이다. 추 후보는 “많은 분이 야권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당의 강력한 통합이 먼저”라며 “3자 대결을 한다 해도 이길 수 있는 강한 야당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추 후보는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대해선 “무한책임을 져야 할 분열주의자들은 통합 대상이 결코 아니다”라며 “선동에 잠깐 한눈 팔았거나 오해·좌절한 지지층은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남의 유권자들이 지난 총선에서 일시적으로 국민의당을 지지했지만, 더민주가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면 호남의 민심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종걸 후보가 상층 연합을 통한 후보 단일화라면 추미애 후보는 갈라진 지지층을 하나로 묶어서 사실상의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는 2012년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실패했다는 진단에서 비롯된다. 후보들끼리의 단일화가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고 지지층에게 자신감도 주지 못한 단일화였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끼리의 협상이 아니라 두 당 지지층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김상곤 후보는 ‘야권 통합’에 적극적이다. 이종걸 후보와 결이 비슷한 반면 추미애 후보의 방식에는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김상곤 후보는 13일 광주에서 추미애 후보를 겨냥해 “누구는 3자 필승론을 주장하면서 호남이 없이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단언컨대 정권교체는 이곳 호남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추미애 후보의 방식을 들여다보면 호남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결과적으로 ‘3자 필승론’으로 가게 돼 있다. 더민주가 영남과 전국 각지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면 호남의 지지도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호남을 종속적 변수로 보는 관점이다”라며 “호남의 이익을 대변하고 따로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를 위해서는 광주의 아들인 김상곤이 적격임을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후보는 “후보 단일화와 통합까지 열어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단은 야권의 강력한 공조와 연대부터 추진돼야 한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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