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프레임은 강력하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실의 역사성이 달라진다. 일본은 특히 골라 쓴 단어로 제국 시절 만행의 의미를 축소하곤 한다. 만주사변(滿洲事變)이 대표적이다. 관동군은 1931년 선전포고도 없이 만주를 불법 침략해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웠다. '사변'이라는 단어는 불법 침략 전쟁의 의미를 내란 수준으로 축소했다. 을미사변(乙未事變) 역시 타국의 황후를 암살한 광기의 의미를 흩는 명칭이다. 한국 역시 이 영향을 받아, 한때 한국 전쟁을 6.25사변이라 칭했다.
노몬한 사건(할힌골 전투) 역시 소련군에 대패한 관동군의 불법 영토 침략 전쟁의 의미를 사건 수준으로 축소한 명칭이다. 노모한 사건은 두 차례에 걸쳐 관동군이 소련 기갑 부대에 철저히 패배한 대규모 전투다.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의미를 일부러 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본격적으로 광기어린 자멸의 길에 들어섰다. 곧이어 중일 전쟁의 수렁에 빠졌고, 노몬한 사건에서도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전선을 태평양으로 넓혔다. 이후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일제는 스스로의 목을 죄었다. 이 광기의 행진을 도중에 그만뒀더라면, 한국의 오늘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일본 내에서는 만주국의 의미를 새롭게 주목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일본의 양심적 목소리라 불리는 적잖은 이들이 비록 만주국이 괴뢰국으로 전락하긴 했으나, 건국 이념은 숭고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 중심이 '오족협화(五族協和)' 이념이다. 만주사변의 중심 인물이었던 이시와라 간지는 일본인, 한족, 조선인, 만주족, 몽고인(오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만주국을 세워, 장차 일어날 미국과 일본 간 양극 대결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 육군이 만주국을 자원 침탈을 위한 괴뢰 정부로 전락시켜, 이상은 사라졌고 일본도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뒤집어 말하면, 만주국을 일본이 당초 생각대로 잘 키웠다면, 동아시아 평화, 나아가 강력한 동아시아 문명의 상징이 되었으리라는 아쉬움이 오족협화 개념에 어렸다.
이런 시각은 일본의 적잖은 창작물에서 드러난다. 대표적 작품이 그 유명한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만화작가 야스히코 요시카즈(安彦良和)의 <무지갯빛 트로츠키>(대원씨아이 펴냄)다. 이 작품에서 몽골인 주인공은 극초반 오족협화 이상의 화신이 된다. 노몬한 사건 등을 겪으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태도가 변하며 작품은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서 긍정적 지식인으로 그려지는 일본인 일부도 오족협화 이념에 투신하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이는 당시 '깨어있는' 일본 육군 상당수의 시각이기도 했다.
제국의 어두운 면모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역사물이긴 하나, 반전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던 작가의 작품에서도 어느 정도 만주국을 긍정하는 시각이 투영된다는 건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다. 일제의 침공을 받은 누구도 오족협화의 이상 따윈 그리지 않았다. 당시 어떤 조선인이 일제와 화목하게 지내는 나라에 찬성했겠는가. 칼을 들고 남의 땅에 들어간 후, 앞으로 이상 국가를 만들자고 외친들 그 목소리에서 어떤 진정성을 찾을 수 있는가. 만주국에 관한 이처럼 '부분적 반성'의 시각은, 한 군인의 망상을 이상주의로 대체하려는 일본의 이상(異常)한 전쟁 책임 회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제의 패전 기념일인 광복절을 맞아 일제 육군을 조명하는 책 두 권이 소개됐다. <쇼와 육군>(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글항아리 펴냄)과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최용우 옮김, 글항아리 펴냄)이다. 두 책 모두 일제 군사주의의 기틀이었던 육군(이하 일본 육군)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그런데 바로 이들 책에서 일제의 피해자였던 한국인이라면 바로 만주 불법 침략 전쟁을 '만주사변'으로 뭉뚱그리려는 일본의 책임 회피가 희뿌옇게 엿보인다.
<어느 하급 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은 실제 제2차 세계 대전에 육군 하급 장교로 참전했던 일본문화론의 대가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일본 육군의 허상을 기록한 책이다. 이 기록을 통해 저자는 현대 일본 조직 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뒤틀린 일본적 조직 문화를 까발린다. 왜 일본 육군이 민간인 학살, 옥쇄 전투 등 도저히 믿기 힘든 광기어린 집단이 되었는가를 추상의 차원을 넘어,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기록했다.
저자의 눈에 비친 일본 육군의 모습은, 패망을 향해 질주하는 허실의 조직에 불과했다. 이들은 애초 미국과 전투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갑자기 대본영에서 미국과 싸울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수년 간 소련을 주적으로 삼았던 육군 일선 부대는 혼란에 빠진다. 미국과 전쟁터가 될 정글은 어떤 곳인지도, 미국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그들은 몰랐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시키는 대로 하는' 뒤틀린 군사 문화다. 지금 한국군의 정체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는 이 맹목적 충성이 일본 육군을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는 미명 하에 광기어린 자살 집단으로 만들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런 시각은 쇼와 시대(1926~1989년) 일본 육군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패망으로 질주한 일본 육군 내부의 움직임을 세밀히 추적한 <쇼와 육군>에도 이어진다.
책에 묘사된 일본 육군의 현실은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한 군대, 탱크에 육탄 돌격하던 광신도적 군대라는 후대의 시각과 다르다. 오히려 지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망가진 조직에 가깝다. 만주사변, 노몬한 사건, 그리고 중일 전쟁의 전선을 남아시아로 확장해 미국과 전면전의 불씨를 댕긴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가 대표적이다. 세 가지 사건 모두 일선 부대의 젊은 지휘관이 제멋대로 전쟁을 일으킨 하극상이다. 그러나 세 사건에서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 군대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군이 법 위에 군림하더니, 그 교만함이 일선 지휘관의 일탈로까지 확대되어 아시아 전역을 전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참사로 이어졌다는 생각을 놓기 어렵다.
이 책 역시 한족과 조선족은 물론, 자국의 병사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일본 육군 문화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낳았는가를 본문만 무려 11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했다. 평생 일본 군부의 주요 인사 4000여 명을 취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제의 치부를 고발하는 책을 쓴 저자의 대표작인 이 책은 일본 우익으로부터 '자학 사관'이라는 날선 비판을 들었다. 그 정도로 생생하고 치밀한 설명이 가득하다. 난징 대학살에 참여했던 우노 신타로라는 노인과의 인터뷰 내용은 과거를 적극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저자의 태도를 상징한다.
"중국 전선에서도 만행이 있긴 했으나 조직적으로 벌어진 것은 저 난징 대학살부터입니다. 일본 육군은 포로를 닥치는 대로 죽이는가 하면, 강간, 방화, 약탈 등을 조직적으로 저질렀습니다. (…) 나 역시 저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당시 상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너무나도 잔혹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든가 '그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신 구조가 그 시대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그 학살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듯한 정치가나 학자의 발언 등은 그들이 일본 육군의 실태를 검증하는 데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두 저자의 책에서 일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조선인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는다. <어느 하급 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은 일본 육군의 내부 조직 체계를 감시한 책이니 그렇다손 칠 수 있다. 하지만, <쇼와 육군>은 필히 다뤄야 할 주제인 일본 육군 내 조선인의 지위, 일본 육군의 민간인 학살, 생체 실험 등의 이슈를 모두 건너뛰었다. 이 책에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중국인 학살, '옥쇄'라는 미명 하에 일어난 오키나와 현민 학살에 관한 이야기가 상세히 묘사되지만,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했다'는 이야기는 아예 저자의 기억에서 잊힌 듯 보인다.
조선인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가 부분적으로나마 등장하는 부분은 본문 마지막 장인 '제51장 남겨진 '전후 보상' 문제를 주시하며'다. 여기선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기본 입장은 ‘따져 보자’는 것에 가깝다. 일례로 책에는 일본인 9명, 조선인 4명, 중국인 2명으로 구성된 위안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중 조선인 2명은 이런 일을 하는 줄 모르고 끌려왔다. 일본인은 대부분 게이샤다. 여기서 저자는 '그 중에는 속아서 끌려온 여성도 있다'는 간단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그친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지위가 달랐다는 점은 전면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대충 겉으로 사죄만 하고 넘어가는 시늉만 해서는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한다. "일찍이 저 전쟁에서 일본군 장병에게 폭력적으로 성적 위안을 제공할 것을 강요받은 조선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여성들이 있다. 그 여성들은 그 후 고통스럽게 살아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저자는 공감한다. 그러나 저자는 한편으로 몇몇 인터뷰를 통해 획득한 자료를 바탕으로 "쇼와 육군(일본 육군)에는 그와 같은 성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발상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민간이 군에 성을 판매했고, 군은 이를 사후 관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따라서, 전후 보상 문제에 관해 저자는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분명 조선 여성은 속아서, 일방적인 착취를 당했다는 점을 저자는 인지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고민은 이 문제에서 한발 나아가 '비자발적으로 성을 착취당한 조선, 중국 여성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특정 주제로 좁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일본 여성이 포함된 종군위안부 문제로 뭉뚱그리는 데 그친다.
'일본의 진보 지식인에게 조선 식민지 문제는 언급되어서는 안 되는 주제'라는 이야기가 국내 지식인 사이에서 적잖이 나돌곤 한다. 모든 문제에 진보적 입장을 명확히 견지하는 적잖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이, 일제 강점기 문제에 관해서만은 사고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을 많이 본다는 의미다. <쇼와 육군>에서도 그와 같은 단서를 희미하게나마 포착할 수 있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실재한다면, 조선은 일본인의 집단 무의식에 각인된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소개한 두 권의 책은 읽는이의 예상보다 날카롭게 일본 육군을 비판적으로 응시한다. 일본의 과오에 관해서도 매우 철저하게 성찰적인 자세를 취한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전쟁을 경험한 이들을 하나하나 직접 만나 인터뷰한 저자의 끈질긴 태도에서 존경심이 느껴진다. 장쭤린(장작림) 폭살 사건으로 시작되는 일본의 만주 침략부터 태평양 전쟁 패망에 이르기까지, 쇼와 시대 일본 육군의 실상과 도조 히데키 등 중요 인물에 관한 평가, 일본 육군을 바탕으로 해 그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에 이르는 두 권의 책은 매우 중요한 역사서로 평가할 만하다. 광복절을 새롭게 기리는데 비교할 대상이 없는 수준의 완성도 높은 책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 발 더 나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기도 하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