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저리 안가?" 말 붙이려다 봉변 당할 뻔..
기획

"저리 안가?" 말 붙이려다 봉변 당할 뻔

손경호 기자 입력 2016/08/17 09:36
[취재후기] 흙투성이 퇴근...목욕탕서 눈치 보며 빨래도

“아... 내일가면 안 될까?” 첫 출근하는 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눈을 끔벅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준비가 부족하단 생각에 더해, 거친 일상을 살아왔을 그들과의 부대낌이 두려웠다. 나 같은 풋내기 일꾼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한 2주간의 노동이 끝났다. 엄살 부리고 싶지 않았다. 철저하게 그들 속에서 먹고 자고 숨 쉬며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다. 쉽진 않았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배달명령 속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하루 일과와 순간순간의 생각들을 기록했다. 1일차, 2일차, 3일차...12일차. 메모장의 차수가 늘어갈수록 팔뚝이 굵어졌다. 핸드카와 손수레의 무게중심 잡기가 익숙해져갔다. 일이 조금씩 몸에 익어가자 사람들과의 대화도 늘어갔다.
 

송골송골 땀 나게 일해도 가난한 그들

      
▲ 가락시장 14일 동안 매일 입었던 비닐점퍼 차림의 손경호 기자 ⓒ 김상윤 시장사람들은 생각보다 따뜻한 면이 있었다. 준수형님은 흙먼지 날리는 작업장 한 구석에 보리차를 담은 페트병을 숨겨 놓고 “목에 좋은 거니까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동생만 마셔”라고 귓속말을 건넸다. 트럭에 파를 올릴 때 개수가 틀릴까봐 “하나에 하나, 둘에 두울, 셋에 셋이요~”하고 두 번씩 세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노숙자’ 계원씨는 탄광촌에서 갓 나온듯한 얼굴에 주름도 많았지만 옆집 사장들이 ‘숙자’라고 놀려도 항상 어린애처럼 맑은 웃음으로 받아쳤다.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으로 봉투치기에 열중하는 그들의 이마엔 늘 땀방울이 송골송골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때론 거친 부대낌도 있었다. 부족한 인터뷰를 메우기 위해 추가취재차 가락시장에 갔을 때 네거리 모퉁이에서 100~150단씩 적은 양의 대파를 팔고 있는 중도매인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사연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며 말을 붙였다. “할아버지도 처음에 배달일꾼부터 시작하셨나요?” 잠시 대답이 없던 그는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인마! 내가 배달일꾼으로 보여? 내가 이래 뵈도 사장이야. 여기서 일한다고 우습게 보여? 이게 어디서! 한 대 맞을 라고! 저리 안가?”
 
그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올려 정말 때릴 기세였다. 아니라고 해명을 하다 말고, 냅다 도망치고 말았다. 새벽까지 혼자서 몇 단씩 파니깐 자길 만만하게 본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시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말을 좀 붙여 보려고 다가갔다가 면박을 당한 경우가 꽤 있었다. ‘취재원의 마음을 여는 기자’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것인가 보다.

너무 커보였던 5천원의 가치

밤샘 일이 끝나고 퇴근할 무렵, 가게 안주인이 늘 5000원씩을 쥐어줬다. 아침을 먹으라는 뜻인데, 일종의 수당인 셈이다. 5000원이 그렇게 귀하고 커 보인 적이 없었다. 4500원, 5000원 하는 밥은 너무 아까워 주로 김밥과 토스트를 공략했다. 찜질방 근처엔 김밥이 2000원이었지만 조금 더 걸어가 1500원짜리 김밥을 먹었다. 토스트 전문점에서 3000원 하던 토스트가 다른 가게에서는 2500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몇 백 원이라도 더 남기면 정말 뿌듯했다. 어떻게 번 돈인데.......
 
퇴근 후엔 숙소인 찜질방의 화장실부터 들렀다. 비닐소재 점퍼에 물을 묻혀 흙먼지를 닦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갈아입을 바지가 들어있는 봉투를 화장실 문고리에 걸어놓은 다음 수도꼭지를 틀고 흙먼지를 쓸어 내렸다. 비가 온 날에는 세면대 위에 신발을 걸쳐놓고 진흙을 닦아내야 했다. 점퍼가 하나뿐이라 빨아 널 수가 없었다. 초봄이라도 새벽엔 날씨가 서늘했기 때문이다.
 
흙투성이로 퇴근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었던 카운터 아저씨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찜질방 생활은 할 만 했다. ‘목욕탕 내 빨래 금지’를 어기고 속옷을 빨다가 들키지만 않으면. “드르렁 쿠앙! 푸르르~”하는 옆자리 아저씨의 거친 숨소리를 제외하면. 다음날 취재를 위해 펼쳐놓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등의 책을 읽느라 감기는 눈꺼풀을 치켜떠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면.
 
시장은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전동차와 핸드카, 손수레의 부산스런 움직임은 땀 냄새를 물씬 풍겼다. 책과 신문 속에서만 세상을 보던 내가 우물 밖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 덜 고단하고, 조금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일 내 직업이 진짜 시장일꾼이었다면 결혼도, 내 집 장만도, 아이도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거친 피부에 따뜻한 속살을 가진 그들이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손경호 기자  vocally@danbinews.com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