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데군데 뜯기고 누렇게 색이 바랜 벽지에서 손톱만한 거미가 기어 나왔다. 급히 휴지로 눌러 잡았다. 때가 눌어붙은 장판위로 까만색 풍뎅이가 활보하기에 또 '빠지직' 눌러 잡았다. 그런데 다리가 10개도 넘는 이름 모를 벌레가 스멀스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부턴 그냥 포기해 버렸다.
설마 날 잡아 먹기야 하겠나...... 걸레로 바닥을 대충 훔치고 이불을 깔았다. 방주인이 이틀 전 고향인 강원도에 다니러 간 덕에 하룻밤 무료로 쪽방 체험을 할 기회를 얻었다. 맘 편히 발 뻗을 집이 없는 사람들에겐 하루 6천 원짜리 이런 쪽방도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가를, ‘거리의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174cm라서 '행복해'
이불 위에 누워보았다. 내 키는 174cm. 3~4cm만 더 컸더라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을 뻔했다.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려보니 오른손은 텔레비전에, 왼손은 벽에 닿았다. 침대와 책상이 들어가면 남는 공간이 별로 없는 내 방에 대해 늘 불평했는데, 여긴 내 방의 4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혼자 살아도 숨 막힐 듯한 이런 공간에 부부가 사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노래방을 하다 망하고 중병이 들어 왔다는 최(53)씨 부부.
“잘 때는 옷가지가 든 박스나 주방용품을 선반위에 올려놓고 눕지. 내 어깨에 장애가 있는데 자다가 아내의 몸이라도 닿으면, 아파서 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아.”
그들은 식사 때나 잠 잘 때 방에 들어갈 뿐, 대부분의 빈 시간을 동네 어귀 공원에서 보낸다고 한다.
이렇게 좁은 방이 서울 동자동 9-18번지의 이 건물에만 70개, 동자동 전체에 900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서울의 부촌에선 이 정도 공간에 한 가족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여긴 900명 넘는 인생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것이다.
방안을 둘러보았다. 제대로 된 전자제품이라곤 TV밖에 없었다. 그것도 ‘골드스타’라는 상표가 붙은,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낡은 TV였다. 내 휴대전화는 디지털이동방송(DMB)으로 10개 넘는 채널을 볼 수 있지만, 이 텔레비전엔 공중파 방송 3개밖에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볼 만한 화질로 나오는 것은 KBS 2채널뿐이었다.
설거지 하수물이 변기에 그대로 줄줄줄...
화장실에 가봤다. 들어가 용변을 보려면 엉덩이와 이마가 벽에 닿을 지경이었다. 재래식 변기 위에 꾸부정하게 앉아 봤더니 쓰레기통이 오른쪽 무릎에 닿았다. 물을 내리려고 했더니 버튼이나 레버가 없다. 호스로 연결된 수도꼭지로 물을 튼 후 용변을 직접 흘려보내야 했다. 몸을 좀 씻을 수 있을까 둘러봤더니 화장실과 세면장으로 함께 쓰도록 돼 있는 그 공간엔 잠금 장치가 돼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이 오래 사용할 수 없도록 일부러 그런 것인지, 낡아 떨어진 것을 수리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동자동 사랑방’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집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드물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울시 복지자활국에서 운영하는 목욕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건물로 오기 전,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이태헌(54)씨 방에 들렀을 때도 화장실 때문에 좀 놀랐었다. 12가구가 함께 쓰는 화장실은 세면대 공간과 분리돼 있긴 한데, 세면대에서 누가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용변을 보는 다리 사이 변기로 구정물이 그대로 줄줄 흐르도록 돼 있었다.
동자동 주민 모임인 ‘한울타리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 씨는 전직 재단사인데, 방 안에 미니냉장고와 전기밥솥 등을 갖추고 야외용 가스렌지로 반찬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간단하게 밥을 지어 김치하고라도 먹어야지 어떡해. 점심은 급식소에서 먹을 때가 많지만 거기는 노숙자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창피해. 우리가 이렇게 살긴 하지만 노숙자와는 다르거든.”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는데도, 옆방에서 웅얼웅얼 TV소리가 들린다. 맞은편 방에서 돼지고기 굽는 냄새도 고스란히 날아온다. 소리는 물론 냄새까지, 어떤 것으로부터도 차단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저녁에 동자동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 몇 잔을 마신게 다였는데, 그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없는 사람들만 다 죽이는 거 아니야? 개발? 그거면 다야? 우리는 어디로 가? 점점 쫓겨서 시골로 내려가라고?”
김정호(53)씨는 동네 어귀 가게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얘기하다 이렇게 열변을 토했었다. 배도 고프고 잠도 오지 않아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그의 방으로 갔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이곳으로 왔다는 박철(30·가명)씨와 강릉이 고향이라는 이병호(45·가명)씨도 건너왔다. 술과 안주를 중간에 놓고 4명이 둘러앉으니 무릎과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무역회사에서 상무까지 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도 나빠져 5년 전에 이 곳으로 왔다는 김씨는 시민단체에서 주거복지개선을 위한 활동도 했다고 한다. 언어장애가 있는 듯 말이 다소 어눌한 박씨와 사업 실패 후 가족들을 고향에 놔두고 혼자 생활한다는 이씨 모두 ‘이 곳은 그래도 없는 사람끼리 다독거리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주판알 튕기는 '돈놀이'에 쫓겨나는 사람들
“아까 개발이야기를 하셨는데 여기도 재개발의 움직임이 있나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돈 얼마 쥐어주고 나가라고 하지 않겠어? 나갈 때 나가더라도 곱게는 못나가지. 여기 사람들과 최대한 막아야지.”
그와 이런 얘기를 한 것이 지난 5월 하순인데, 8월에 열린 장관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쪽방 재개발을 노리는 사람들 얘기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모 장관지명자 부인이 재개발을 노리고 서울 창신동의 쪽방 건물을 미리 사두었다는 것이었다. 동자동 쪽방촌도 주택재개발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달 초 다시 동자동을 찾았을 때, 일부 건물에선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쪽방촌 세입자들은 3개월분의 주거이전비(약 700만원)와 공공임대주택 입주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입주권을 선택하고 싶어도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거나,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지불할 만한 소득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거이전비를 받아 뿔뿔이 흩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쪽방 촌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생활의 근거를 잃고 복지수급에도 차질이 생길까봐 두려워한다. 결국 세입자들이 선택하기 어려운 대안을 놓고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보건복지부가 정의하는 쪽방은 ‘도심 인근이나 역 근처에 위치하여 1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단신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로,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별도의 부엌과 목욕시설은 없는 형태’를 말한다. ‘보통 방 크기의 반쪽밖에 안 된다’는 의미에서 쪽방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런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로 내쫓기기 직전’인 이들이다. 하루하루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 중병에 재산까지 잃고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 장애와 질병 등으로 정부의 지원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런 쪽방 거주민이 전국적으로 6천3백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이들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주거를 놓고 ‘돈놀이’의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고위 공직자의 가족까지 나서서.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원래부터 가난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좁은 방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는 최씨도 7년 전까지는 노래방과 야식집을 운영한 ‘사장님’이었다. 그런데 야식 배달 나갔던 종업원이 교통사고로 숨졌고, 노래방에 미성년자를 출입시켰다가 단속에 걸려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치료비로 재산을 다 날리고 결국 지난 2003년에 이곳까지 오게 됐다. 한동안은 재기를 꿈꾸며 막노동판에서 열심히 일했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 4~5시간을 제외하고 20시간 가까이 일하며 하루에 37만원까지 번적도 있다. 그런데 너무 무리한 노동 탓이었는지 왼쪽 어깨에 림프수종이라는 암이 생겼다. 그는 이제 정부의 기초생활지원을 받는 처지다.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치료도 아니고 검사 한번 받는데 320만원이 드니 수급 받는 처지에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
치료할 방법이 있다 해도, 돈이 없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됐다는 얘기다. 지금 안락한 중산층이라고 해도, 최씨의 경우처럼 불운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게 아닐까하는 으스스한 생각이 들었다.
한울타리회 이 대표에 따르면 이곳 동자동 쪽방 주민의 70퍼센트 정도가 이렇게 장애판정을 받고 매월 기초생활수급을 받는다고 한다. 노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부양가족 존재여부, 장애의 심각성 등에 따라 대략 월 30만원에서 45만 원가량을 지원받는다.
소소하지만 우리만의 행복이 사라지지 않기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서로 도와가며 나름대로 ‘따뜻한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한국주민운동본부의 주선으로 경기도 의왕의 주말 농장에 자그마한 텃밭을 마련해서, 매주 일요일 호박 오이 고추 등 채소를 가꾸러 간다. 서너 시간 땀 흘리며 농사일을 한 뒤 야유회를 하듯 어울려 밥을 먹는다. 이 대표는 “우리는 이런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산다”며 “우리의 터전을 노후불량주거지역이라며 대책 없이 철거하지 않았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낡고 우중충한 건물, 아프고 궁핍한 사람들. 멋지고 화려한 것들만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이들의 눈엔 한시바삐 밀어내야 할 존재로 보일지도 모른다. 재개발로 돈벌이할 궁리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쪽방 세입자들은 귀찮고 골치 아픈 장애물로만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지 고민도 대책도 없이 불도저를 들이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재개발의 이윤을 계산하기에 앞서 이들의 ‘생존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과연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김화영 기자 lionking1785@danb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