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다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이다. 정치권, 언론에서 양극화 대책이니 뭐니 하면서 매일 부르짖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지만, 말만 난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작은 사람들은 서럽기만 하다. 돈 천 원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자야 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아가면서 험한 일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병은 곧 망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프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빚에 쪼들리고, 아이를 키우기도 어렵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직 압력을 받거나 책상을 치워버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벼랑 끝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모두 그 존재를 알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빈곤한 노동 현장에서,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빚과 병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다리는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런 책을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우리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처절해져 왔지만 그것을 전하고 알려야 할 문학과 저널리즘에서는 언젠가부터 리얼리즘과 치열함과 땀 냄새가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사회 비평이라는 허울 아래 인텔리의 게으른 펜 돌리는 소리만 들리는 글발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시 저널리즘과 글쓰기라는 작업에 신뢰와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 내가 스스로 찾아가서 살피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던 후미진 골목길 구석구석을 밝은 눈 맑은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신 몸을 던져서 건져온 글들이다.”(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열악하기만 한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
열악하기만 한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 1부 ‘근로 빈곤의 현장’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몸으로 겪고 기록한 것이다. 서울 가락시장의 일용직 파배달꾼으로, 온갖 푸대접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전화판촉원(텔레마케터)으로, 전국을 돌며 ‘도시의 찌꺼기’를 쓸어내는 야간청소부로, 호텔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 ‘하우스맨’으로 취업해 노동자의 삶을 기록했다. 각각 2주에서 한 달간, 때로는 감기와 근육통에 시달리며, 때로는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가며 일터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임시직,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노동환경 조건이 열악했다. 일은 험하고 어려운데 생계를 이어나갈 만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가락시장의 파배달꾼은 철야로 열두 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150만 원을 받지만 방세, 식비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건 하루 소주 한두 병 값이 전부다. 텔레마케터는 어지간한 관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100~120만 원을 벌기도 벅차며, 야간청소부와 하우스맨 또한 한 달 임금이 100만 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2009년 가구 당 월 평균 소득이 344만 3,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중위소득 50% 미만의 저소득층에 속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빈곤층이지만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빈곤층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현장을 직접 체험한 기자들의 삶도 변했다. 밥값 5,000원의 가치가 너무도 커 보여서 일부러 싼 곳을 찾아 김밥을 사먹었고, 텔레마케터의 고단한 일을 겪은 뒤에는 텔레마케터에게서 온 전화를 친절하게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 소주를 들이켜는 사람을 인생 패배자라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야간작업을 끝내고 소주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근로 빈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변해줄 노조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가장 먼저 최저임금이 현실화돼야 한다. 또 이들의 노동을 보호해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형편이 어려운 취업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다양한 사회안정망 확충도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집은 곧 인권? 인권이 없는 빈곤층의 주거 현실
하루 6,000원짜리 쪽방에서도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3,000원, 5,000원을 내고 만화방, 다방 등에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마저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지하도, 역 근처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2부 ‘빈곤층의 주거 현실’은 인간답게 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이 땅의 빈곤층의 삶을 기록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 여기에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서울의 부촌에서는 이 정도 공간에 한 가족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혼자 살아도 숨 막힐 공간에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쓰고 있고, 목욕시설은 없는 곳이다. 이런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로 내쫓기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또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이곳 쪽방에서마저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동자동 사람들은 ‘따뜻한 공동체’를 꾸려가며 스스로 터전을 가꿔나가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없애버릴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재개발의 이윤을 계산하기에 앞서 이들의 ‘생존권’도 존중되는 사회는 될 수 없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성남시 시흥동의 움막. 판교 재개발이 논의될 때, 김수연 씨는 개발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병원도 들어오는 등 환경이 좋아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개발이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이 지역에서 비닐하우스 가구공장을 하고 있던 김씨는 개발이 시작되자 제일 먼저 ‘떠나주어야 할 존재’였다. 공장이 불법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공장 철거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든 집도 비워주어야 했다. 갈 곳이 없는 그는 5년 동안 움막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초3동의 산청마을과 개포동의 구룡마을. 강남 한복판에 있는 비닐하우스촌이다. 판자벽과 비닐, 떡솜 등으로 지어진 이 집들은 불이라도 나면 삽시간에 옆집으로 번진다. 실제로 화재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만 5,000여 가구에 이른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지하수를 파서 먹어야 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늘 재개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원은 ‘현실적인 임대아파트’를 얻는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해 수십만 원씩 내야 하는 곳 말고, 가구의 소득수준에서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제공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원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리 아이 믿고 맡길 곳은 어디에, 서민들의 보육문제
정부는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제대로 키울 수가 없는 구조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3부 ‘애 키우기 전쟁’은 서민들, 저소득층의 보육에 관한 이야기다. 철거촌 빈집에 방치된 아이들은 김길태 사건처럼 범죄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친정과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아이를 보는 맞벌이 부부들도 많아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려면 부부 중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육아휴직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육아휴직을 쓰면 책상을 치워버리거나 사퇴 압력을 받게 된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더욱 힘들다. 생계와 보육을 홀로 책임지고 있는 ‘싱글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보육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행복해야 할 아이 키우기가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처럼 ‘전쟁’이 돼버렸을까? ‘낳아라’ 말만 말고 키울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취약한 보육 여건 때문에 서민들과 저소득층은 더욱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프면 망한다, 빈곤층의 의료문제
4부 ‘아프면 망한다’는 말 그대로 아픈데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들의 이야기다. 난치병에 걸려 엄청난 치료비가 들지만 정부와 사회로부터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삶을 지탱하기 힘든 가정, 환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보험회사 등을 취재하며 서민들의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난치병에 걸린 남매를 키우고 있는 엄마. 아이가 병이 나자 아빠와 시댁은 발길을 끊어버렸다. 홀로 두 아이를 간호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앞이 캄캄할 뿐이다. 정부지원금은 얼마 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 정부지원금은 많아봐야 22만 원 남짓. 우리 사회는 자폐나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치료비는 모두 부모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아이 치료비로 집 한 채를 날린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가족 중에 누군가 크게 아프면 중산층도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다가 병이 나서 모든 재산을 잃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사회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책에서는 의료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대안 제시를 하고 있다. ‘아프면 망한다’는 곧 ‘돈 없으면 망한다’와 같은 말이다.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도와주고 챙겨주는 나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저당 잡힌 인생, 서민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5부 ‘저당 잡힌 인생’은 빚에 허덕이는 저소득층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자 손에 남는 건 졸업장과 학자금 대출을 받은 빚 2,400만 원뿐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갖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비싼 등록금은 감당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했다. 저소득층에게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이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 시절에 이렇다 할 스펙 쌓기도 힘이 든다. 연애도 결혼도 꿈꿀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학자금을 낮추고 대출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늘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에는 대부업체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이 광고들을 귀찮아하며 무시하지만 돈이 급한 사람들은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덫에 걸려든 서민들이 정말 많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들은 오히려 서민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들은 급히 불법 대부업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빚의 수렁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규제완화로 저축은행을 부실하게 하고, 서민금융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게 만드는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사채’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