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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 가락농수산시장에서 꿈을..
기획

[삶의 현장] 가락농수산시장에서 꿈을

손경호 기자 입력 2016/08/21 19:23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1부> 근로 빈곤의 현장 가락시장 파배달꾼

어둠이 짙어지면, 시장은 잠에서 깨어난다. 일꾼도 일어나야 한다. 얄팍한 매트리스 두개를 포갠 침대와 사각 티슈함 모양의 딱딱한 합성가죽 베개를 한쪽으로 밀고, 어제 탕 안에서 몰래 빨아 두었던 속옷과 양말을 챙겨 든다. 짐 가방이 들어 있는 94번 옷장을 열어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여벌의 옷을 검은 비닐봉투에 넣어 둘둘 만 뒤 옆구리에 낀다. 카운터 아저씨에게 열쇠를 맡기고, 내 숙소인 ‘거북 찜질방’을 나선다. 사장의 눈치를 받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선지해장국, 볶음밥, 라면 등 분식집 메뉴 중에 제일 빨리 되는 것을 골라 후루룩 마시듯 먹어치운다. 8차선 도로를 건너, 달음박질하듯 가락시장으로 향한다.
 
지난 3월22일부터 2주간 이 곳 가락시장에서 ‘배달꾼’으로 ‘노가다’를 했다.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을 때, 사장은 나이만 확인한 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당장 나오라고 했다. 다른 어떤 능력도 생각도 중요하지 않은, ‘쓸 만한 근육’만이 조건이 되는 일자리란 의미겠지. 첫 출근 날, 쪽파 경매사의 구성진 가락이, 여기가 삶의 최전선, ‘시장’임을 실감케 했다.
 
“힐러핼라힐~ 힐러핼라힐~ 힐러핼라히야! 김만수 육지쪽파 3만7천 원~”

    
▲ 늦은 밤 배달을 마치고 가락시장으로 돌아가는 일꾼들 ⓒ 김상윤

 
파 중도매상 일꾼의 하루는 포장으로 시작해 배달로 끝난다. 포장작업은 파를 열 단씩 비닐봉투에 넣고 파 끝부분이 모이도록 꽉 묶어서 쌓아놓는 일이다. 시장에선 ‘봉투치기’라 부른다. 두 단씩 파를 잡아 흙을 털고 단을 묶은 철사 끈이 보이지 않도록 포갠 뒤 파 밑동이 봉투 안으로 가도록 넣는다. 봉투 양 쪽을 잡아 힘을 줘 꽉 묶어 매듭을 두 번 만들고 봉투 끝이 접히지 않도록 잘 펴서 마무리 한다. 단순 반복 작업인데, 쉴 새 없이 계속하다보니 손아귀 힘이 달린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새벽 1시에 밤참을 먹을 때 숟가락으로 뜬 국물을 나도 모르게 바닥에 흘렸다. 일 시작하고 5일이 지날 때까지 손을 떨며 밥을 먹었다.
 
중간 크기 대파 한 봉투는 10kg 이상 나간다.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이것들과 씨름해야 한다. 가장 혹사당하는 것은 손가락 근육이다. 열 단 짜리 봉투는 매듭 사이에 왼손 검지와 중지를 집어넣어 옮긴다. 헬스클럽에서 두 손가락으로 10kg 짜리 아령을 12시간 들었다 놨다 하는 꼴이다. 작업이 끝난 파 묶음들은 ‘야마’를 잡는다. 작업장 내 정해진 구획에 맞춰 파를 가지런히 쌓기 위해 틀을 잡는 작업이다. 하루 작업하는 양은 어림잡아 4천~5천 단이다.
      
▲ '봉투치기'를 하기 위해 쌓아놓은 대파 더미 ⓒ 김상윤

 

12시간 중노동, 밥 먹는 손이 떨리고 발바닥엔 불이

밤 11시부터 배달일이 시작된다. 가락시장 내 곳곳에 주차해놓은 소매상인들의 트럭에 주문량만큼 실어준다. 200 단 이하를 싣는 핸드카와 그 이상을 싣는 손수레, 그리고 목장갑이 작업도구다. 긴 대파는 세로로 두 줄씩, 짧은 대파는 가로로 네 개씩 핸드카에 싣는다. 배달 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주의력이다. 후진하는 전동차, 좁은 골목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 육중한 엔진 굉음을 내는 트럭을 피하려면 귀가 밝아야 한다. 보험도 없는 일꾼이 사고라도 당하면 끝이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무거운 핸드카를 이리저리 밀고 다니는 동안 손가락에 이어 팔뚝, 손목, 어깨, 허리 근육이 차례로 경고신호를 보낸다. 평균 배달횟수 20회. 발바닥에 불이 난다. 15년 동안 시장 일을 했다는 준수(가명) 형님에게 물었다.

“손목 아프지 않아요?”
“15년씩 이거 했는데 아플 리가 있나. 처음 보름이 고비야.”

스물아홉 된 사장 아들이 말했다.

“저 중3 때부터 이거 했어요. 파 천 단 나르는 거 우습죠. 3천 단까지 날라봤는데..."

그들의 양 손 검지, 중지 세 번째 마디에 굳은살이 선명했다. 대파를 포장하고 나르는 이곳의 하루는 ‘오감 불만족’이다. 눈이 아리고 코가 맵다. 나중엔 속이 쓰리다. 작업장은 밤 12시가 지나면 '나무 난로'를 피운다. 공사판 자재로 쓰던 나무들을 태운다. 동 틀 무렵이면 파 냄새와 나무 타는 연기, 담배 냄새, 트럭이 뿜어내는 배기가스가 어우러진 ‘뭐라 말 할 수 없는’ 냄새가 몸에 밴다. 말하자면 ‘파 배달꾼’ 냄새다.
 
둘째 날 눈과 비가 섞여서 내렸다. 파 부스러기와 흙이 뭉쳐 신발에 찰흙처럼 달라붙었다. 첫날보다 두 다리가 무거웠다. 10kg 정도 되는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았다. 대량주문을 처리하면 땀이 안경에 떨어져 흘러내린다. 맑은 날엔 입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흙이 씹힌다. 파 밑동의 흙을 털 때, 전동차와 트럭이 작업장 바닥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날린 흙먼지를 껌 대신 씹게 된다. 목이 계속 탄다. 배달 다녀올 때마다 보리차로 입을 헹궈야 한다.

    
▲ 눈,비가 섞여온날 파 작업장 풍경 ⓒ 손경호


오감불만족의 하루,  남는 건 '파 배달꾼 냄새'

대파 중도매상은 가족 회사인 경우가 많다. 삼촌과 조카, 형과 동생, 아버지와 아들이 사업을 꾸려간다. 7평 남짓한 작업장 안에서 그들은 ‘사장님’이다. 그 밑에 두 부류의 근로자가 있다. 봉투치기만 해서 일당을 받아가는 일용직, 새벽에 배달 나가는 월급제 임시직이 그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일용직은 숙련공이고 나 같은 임시직은 잡역이다. 사장은 둘째 날부터 ‘부리는 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파를 그렇게 쌓으면 어떡하나?” “파 올릴 때도 요령이 있어야지!” “거기 말고 여기다 쌓으라고!” “이리로 갖고 와!” “저리로 가!” “핸드카 들고 오라고!” 대화는 없었다. 명령만 있었다. 하루에 ‘네’만 수십 번씩 외쳤다. 일이 익숙해지기 전까진 '나무 난로' 앞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서서 숨 돌리고 있는 순간에도 ‘파 부스러기, 밀대로 밀어내라’, ‘편의점에 가서 주전자에 물 떠오라’는 명령이 이어졌다. 준수 형님은 정신없이 동동거리는 나를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힘들지? 그래도 시장일 한 달하면 어디 가서 못할 일 없어. 보름이 고비야”
“사장님이 저래 보여도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
“나머지 봉투치기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동생은 쉬엄쉬엄 해.”
 
일이 몸에 밴 그는 사장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야마를 잡는 일, 파 부스러기를 밀대로 치우는 일, 트럭에 실어주는 일을 연속동작으로 처리한다. 담배를 입에 물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손은 봉투치기로 분주하다. 화장실에 갈 때도 총총걸음으로 반쯤 뛰어간다.
 
베테랑 일꾼과 유랑하는 일꾼의 충고

시장에 준수 형님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계원(가명)씨는 별명이 ‘노숙자’다. 가락시장에서 3년 넘게 일했다. 봉투치기는 물론 배달 일 등 온갖 시장 일을 다해봤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곳 저 곳을 떠돈다. 낯익은 사장들이나 일꾼들이 지나가면서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 숙자 오늘도 왔네. 열심히 해라, 열심히!”

그가 입은 검정색 솜바지는 오른쪽 허벅지 부분이 찢어져 하얀 솜이 보인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흙 때가 낀 맨손으로 작업한다. 중학생 정도 체구에 엄지와 검지엔 누렇게 바랜 반창고를 붙였다. 성남에서 식비를 포함해 30만 원짜리 고시텔에 산다고 한다. 시장 사람들이 말을 건넬 때마다 씩 웃고 만다. 그때마다 거무잡잡한 얼굴에 주름이 잡힌다. 첫날 봤는데 둘째 날엔 보이지 않았다. 넷째 날이 돼서야 다시 일하러 왔다. 그는 일을 찾아 유랑하는 시장 일꾼 중 한 명이다. 사장이 드세거나, 몸이 버텨내기 힘들거나 일이 싫증나면 다른 일을 찾아 떠난다. ‘노숙자’ 계원씨도 내게 충고 한다.

“사장이 뭐라 그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게 속 편해.”
“천천히 해. 어차피 봉투치기 잘 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니잖아. 자네는 파 끝에 누런 거 다 잡아 뜯고 먼 산 한번 보고 그렇게 쉬엄쉬엄해. 우리야 죽을 동 살 동 해야지 돈이 되니깐 빨리 하는 거고......”
 
봉투치기는 10단 짜리 한 봉투 당 200원이다. 4천 단을 하면 8만 원이다. 중도매상 사장이 파를 적게 들여오는 날엔 계원씨 일이 일찍 끝나는 대신 일당이 적다. 준수형님은 하루에 3천~4천 단씩 작업하기 때문에 6~8만 원 정도를 벌어간다. 계원씨는 대개 그보다 적게 번다. 내가 봉투치기를 열심히 할수록 그들의 벌이가 줄어드는 셈이다. 몫이 줄면 끼니를 거르거나 1천 원 하는 차비를 아껴야 한다.

    
▲ 봉투치기에 한창인 시장 일꾼 ⓒ 김상윤

지낼만한 곳을 찾는다고 말하자 계원씨는 “고시텔에 살라”며 씨익 웃었다. 아침, 저녁도 해결할 수 있고 그럭저럭 지낼 만하단다. 처음엔 함께 작업하면서 말 한마디 없던 그가 집을 구한다니까 살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고시텔에서 지낼 형편도 안 되는 이들이 찾는 건 찜질방이다. 퇴근 후 작업장 근처 편의점에서 자장 라면을 안주삼아 소주를 걸치던 노인도 집주소가 찜질방이라고 했다. 시장 맞은편 찜질방에 한 달 치 요금을 내고 생활한다고 한다. 낮 이용요금이 6천 원이니까 한달에 18만 원 정도다. 그는 편의점에서 매번 돈을 내지 않고 스포츠 신문을 꺼내 보고는 앉았던 자리에 놓고 가버려 아르바이트생과 실랑이가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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