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 생활정보지의 대출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봤다. ‘연 최고 39%! 연체이자, 추가비용, 수수료 무(無)’라는 문구 아래 전화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받은 중년 남자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느냐”고 확인하더니 곧바로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100만원이 급히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는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정규직인지, 월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집의 보증금은 얼마인지, 혼자 사는지 등을 숨 가쁘게 물었다. 기자가 “비정규직 경비업체에서 일하며 월 50만원짜리 셋방에 혼자 산다”고 답하자 그는 “사무실로 오면 100만원을 바로 대출해주겠다”고 말했다.
“100만원을 빌리면 선이자 40만원을 떼고 60만원을 드립니다. 열흘 후에 100만원을 갚으시면 돼요.”
실질적으로 빌리는 돈 60만원에 대한 열흘간 이자가 40만원이면 약 66%, 연이자로 환산하면 무려 2376%의 이자율인 셈이다. 열흘 후에도 원금을 갚지 못하면 열흘마다 이자가 40만원씩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대부업체 법정 최고이자율은 연 39%, 사채업자는 이자제한법에 따라 이보다 낮은 30%까지만 받을 수 있는데, 이 업자는 수십 배를 요구한 것이다. “이자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자 “급전은 원래 비싸니 싫으면 다른데 알아봐라’”며 전화를 끊었다.
유명 은행 계열사 사칭하는 대출중개업자 활개
이번엔 대출광고 문자를 보낸 곳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 동안 지인들에게 온 대출광고 문자를 모아 약 30군데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중 3곳만 전화를 받았다. 경찰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불법 대출중개업자들은 다른 사람 명의로 가입한 이른바 ‘대포폰’을 수시로 바꿔가며 영업을 하기 때문에 며칠 만에 번호가 바뀌기 일쑤라고 한다. 연결된 3곳에서도 사람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모두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연결돼 ‘핸드폰번호와 대출희망금액을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정보를 입력하면 몇 분 뒤 핸드폰으로 업자가 전화를 걸어와 대출상담을 하는 방식이다.
중개업자 : “농협캐피탈입니다. 대출문의 하셨죠? 700만원 필요한 거 맞으시죠?”
기자 : “거기 진짜 농협에서 운영하는 건가요?”
중개업자 : “맞습니다.”
자칭 ‘농협캐피탈’직원과 통화를 한 후 실제 농협 계열사인 ‘엔에이치(NH)캐피탈’에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콜센터 상담원은 “우리는 문자나 팩스를 통한 광고영업을 하지 않는다”며 “통화한 곳은 우리 상호를 무단 도용한 불법대부업체”라고 말했다. 그는 “문자를 보낸 곳이 진짜 NH캐피탈이냐는 문의전화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는다”며 “본사 개인금융팀으로 신고하라”고 권했다. 개인금융팀에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와 이름을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문자를 보낸 상담원은 찾을 수 없었다. 하도 이런 사례가 많다보니 NH캐피탈의 개인금융팀에서 신고를 받아 처리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도 금융사와 관계없이 인터넷(http://www.kisa.or.kr)과 전화(국번 없이 118)를 통해 불법대출광고 신고를 받고 있었다.
금융당국과 인터넷진흥원 등에 따르면 제도권 금융회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광고영업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농협캐피탈', ‘신한캐피탈’, ‘KB국민파이낸셜’ 등의 이름으로 오는 대출권유 문자는 모두 불법대출중개업자가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포폰 쓰고 이사 다니는 업자들 “순진한 사람은 걸려”
“저희는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해서 일해요. 직원 월급도 대포통장으로 나오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사무실도 자주 이사를 다녀요. 제가 일한 6개월 동안에도 3번이나 옮겼어요. 그 기간 동안 사장님은 한 번도 못 봤죠.”
지난 2010년 11월부터 반 년 정도 한 불법대출중개업소에서 일했다는 박수철(26가명대학생)씨는 등록금 때문에 시작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그만뒀다고 털어 놓았다. 박씨는 6개월 동안 약 1000만원을 벌었고, 박씨보다 실적이 좋은 직원은 같은 기간 동안 2000만원이상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가난하고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고액의 불법 수수료를 챙기고, 때로는 욕설과 협박을 하며 빚 독촉까지 해야 하는 일이어서 괴로웠다고 한다.
“돈을 잘 갚지 않는 고객과 실랑이를 벌이다 욕도 하고, ‘앞으로 대출을 한 푼도 쓸 수 없게 만들겠다’고 협박도 했죠. 불법대출중개라고 신고를 당해도 직급이 낮은 저는 경찰에서 훈방조치 되거든요.”
박씨가 일하던 업체는 문자광고 등을 통해 돈이 급한 사람을 찾은 뒤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를 연결시켜주고 해당 대부업체와 사채업자로부터 대출금액의 5~8%를, 채무자에게서는 약 10~20%를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받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부중개업자가 중개수수료를 고객으로부터 받는 것은 불법이고, 대출 금융회사로부터만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불법중개업자들은 이런 법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돈이 급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우리한테 걸려들게 돼 있어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런 불법대출중개업자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뜯기고 피해신고를 한 건수가 2009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1만1890건, 피해액은 113억원에 이른다. 소비자가 대부업체에서 바로 대출을 받았다면 최고 연 39%에 빌릴 수 있지만 이런 대출중개업자들을 거쳐 평균 연 15%의 중개수수료를 무는 경우 금리부담이 연 54%로 늘어나는 것이다.
2011년 상반기 중 금융감독원에 대부중개실적을 제출한 합법 대출중개업체는 1017개지만 박씨는 현재 영업 중인 불법대출중개업체가 4000개쯤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객들이 불법중개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대출상담을 받은 업체명과 등록증번호를 확인한 뒤 한국대부금융협회(http://www.clfa.or.kr/)에서 제공하는 ‘전국대부업체 조회하기’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곳에서 검색하면 등록된 대부업체, 혹은 대부중개업체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TV만 켜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대출광고
돈이 급한 서민들을 유혹하는 대출광고는 문자메시지나 전화, 생활정보지 등에 그치지 않는다. 케이블 TV를 켜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대출광고를 보게 된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받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대부업 매출현황’에 따르면 케이블 TV 시청자들은 30분에 한 번꼴로 대출광고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큐티비(QTV)>의 경우 2010년 1월부터 6월까지 하루 평균 58회로 29개 케이블채널 중 대출광고를 가장 많이 편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리얼TV>는 55회, <MBC스포츠플러스>는 50.3회를 내보냈다. 전체광고매출에서 대부업 광고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채널은 <MBC게임>으로 12%나 됐다.
대부업체나 저축은행들은 고금리의 대출광고를 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유명 연예인들을 동원한다. 한 때 유명연예인의 대부업체 광고출연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면서 일부 스타급 연예인이 도중하차하고 사과한 일도 있지만 높은 출연료 때문에 여전히 많은 연예인들이 “돈 쓰세요”를 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수입 없는 대학생에게도 ‘묻지마’ 신용카드 발급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계층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카드론’ 등 고금리 대출을 쓰게 하는 카드회사들의 영업행태도 대부업이나 사채 못지않은 ‘약탈적 대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과도한 신용카드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부채보다 소득이 많고, 신용 6등급 이상인 20세 이상 성인만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게 규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전략 속에 수입이 없는 대학생 등 저신용계층도 ‘묻지마 발급’의 타깃이 돼왔다.
김소희(26여가명대학원생)씨는 몇 달 전 S은행에 예금하러 갔다가 창구직원으로부터 신용카드발급 권유를 받았다. 김씨는 몇 해 전 외국에 나가기 위해 목돈을 모아 아주 잠깐 통장에 넣어둔 일이 있는데 직원은 그 일을 거론하면서 “그 정도 요건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수입이 없는 학생인데 가능하냐고 반문하자 “한도를 작게 설정하면 된다”고 답했다.
직원의 계속되는 권유에 이씨가 신청서를 작성하자 직원은 ‘카드 심사 전화 대처요령’도 설명해 주었다. 카드사에서 전화가 오면 ‘곧 결혼할 예정’이라고 답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틀 뒤 전화가 왔고 이씨는 직원이 일러준 대로 답했다. 며칠 후 카드가 집으로 우송됐다.
카드회사들은 내부적으로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정해놓고 있지만 카드발급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구조 때문에 창구에서 편법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업계 관계자들을 말하고 있다. 대학원생인 몇 달 전 평소 거래하는 한 은행에서 신용카드 발급을 시도해 봤다. “고정 수입이 없는 학생이지만 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하자 바로 신청서를 내주었다. 담당 직원은 건네받은 신분증으로 조회를 해보더니 “발급 가능 여부를 당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며칠 내 회사에서 전화가 간 뒤 심사에 통과하면 발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 회사에서 심사 전화는 오지 않았다. 대신 ‘카드 배송이 시작됐다’는 문자가 왔다. 기자는 형식적인 심사 절차도 없이 신용카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렇게 신용카드를 쉽게 발급받은 뒤 급한 돈이 필요할 때 카드론 등으로 대출을 받아쓰고 갚지 못해 곤란을 겪는 대학생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인당 신용카드 보유량과 사용액 세계 최고 수준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카드를 남발한 결과 지난 2003년 국가적인 ‘카드대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신용카드 발급 건수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3년 당시 신용카드 누적발급건수가 9433만매였는데 이후 수년 간 하락세를 보이다 2010년 현재 1억1658만매로 다시 늘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수는 2003년 4.1장에서 2010년 1분기 현재 4.5장으로, 카드대란 당시보다 많아졌다 지난해 1월 취업·인사 포털사이트 인크루트에서 대학생 6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7.6%가 신용카드를 갖고 있고 한 달 평균 카드 지출액은 30만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의 박종호 총괄본부장은 “카드사들이 직원들에게 실적할당식으로 발급을 종용하다 보니 무리하게 남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이런 영업 관행 탓에 백화점, 마트, 영화관 등에서도 카드 발급이 이뤄지고 은행, 증권, 카드사 등 금융권 창구마다 신용카드 발급을 권하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신용카드를 많이 쓰는 나라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신용카드 이용 비중은 2007년 현재 41.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반해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체크카드 이용 비중은 1.9%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신용카드 이용 비중이 15.2%, 체크카드 비중이 8.6%이며 영국은 각각 8.1%와 16.5%다.
법정 이자 더 낮추고 대부업체 등 꼼꼼히 규제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업계의 신용카드 남발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짝’ 규제하는 데 그치지 말고 ‘빚’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 신용카드 사용을 지속적으로 억제하면서 체크카드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연 39%인 대부업 법정이자를 더 낮춰 주이용자인 서민층의 상환부담을 낮춰주고 사채업자와 불법대출중개업자들의 횡포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곤궁한 서민들의 처지를 악용, 좋은 조건에 빌려주는 것처럼 꾀어서 터무니없는 고금리와 가혹한 상환조건으로 채무자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약탈적 대출’이 더 이상 횡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저서 <대출천국의 비밀>을 통해 대부업체들의 횡포를 고발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은 대부업체의 TV광고를 규제하고 법정이자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사무처장은 “수많은 대부업체가 인허가 없이 광고를 해도 정부가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강한 책임감을 갖고 대부업체 마케팅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또 “시장금리가 15%대였던 시절에 법정최고 이자율이 25%였는데, 시장금리가 5~6%에 불과한 현재 법정최고이자율이 39%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법정최고 이자율을 과거처럼 25%로 낮춰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20%이내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업계에서는 법정이자율을 더 낮출 경우 대부업 등의 대출 규모가 줄어 서민들이 더 자금난을 겪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민생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도 대부분 법정이자율 상한선을 10~20%대로 설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금리가 서민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일을 막으면서, 생계곤란 수준의 빈곤층에 대해서는 재정과 공적금융을 통한 긴급지원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