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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개혁 백지화 논란] 종합소득세 내는 233만명..
사회

[건보개혁 백지화 논란] 종합소득세 내는 233만명

문수정. 박세환 기자 입력 2015/01/30 10:54
"피부양자로 ‘무임승차’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가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막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삽니다. 그런데 건강보험료를 매달 15만원씩 내라니 말이 됩니까.”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이모(42)씨는 월평균 소득의 3분의 1을 건보료로 내고 있다. 그의 월소득은 여름에 30만원, 겨울에 50만∼60만원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일을 위해 필요한 자동차,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재산을 일일이 따져 건보료가 매겨진다.
 

그는 29일 “온갖 명목으로 돈을 떼어가는 세상에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매달 몇 백만원씩 버는 부자들은 직장 다니는 아들의 피부양자로 들어가면 그만이라던데…”라고 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이씨가 겪는 불공평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데도 안 바꾸나…모순투성이 부과체계=건보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은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만, 지역가입자는 소득, 재산, 자동차, 가족 수, 성별과 연령에까지 보험료를 매기다 보니 생긴 일이다. 재산도 많고 연금·이자 등 소득도 있는데 직장인 배우자나 자녀의 피부양자가 되면 합법적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
 

종합소득세를 내면서 건보료는 안 내는 피부양자는 2011년 기준 233만명에 이른다. 이 중 연소득 2000만원 이상인 피부양자도 19만3000명이나 된다. 고소득 무임승차는 방치하고 ‘송파 세 모녀’처럼 연소득이 500만원도 안 되는 지역가입자에겐 까다로운 조건을 따져 건보료를 걷고 있다.
 

이런 문제도 있다. 1억5000만원 아파트에 사는 70세 동갑내기 A씨와 B씨는 소득도 재산도 비슷하다. 하지만 A씨는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보험료를 안 낸다. B씨는 지역가입자여서 아파트, 1500㏄ 자동차 등에 건보료가 부과돼 매달 16만원씩 내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비슷한데 지역가입자냐 피부양자냐에 따라 건보료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임기 중 꼭 하고 싶다”더니…말 바꾼 장관=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8일 “건보료가 오르는 일부 계층을 분명히 납득시키려면 충분한 논리가 필요하고 설득할 시간을 얻는 게 중요하다”며 “연내에 개선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건보료가 오르는 일부 고소득층 여론의 악화가 정부에 부담을 줄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하루 전에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문 장관은 당초 29일 오후로 정해진 개선안 보도 시점을 다음달 말로 미뤄 달라는 부탁을 하러 세종시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타이밍을 조절해 달라는 거다. 부과체계 개선은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것”이라고도 했다. 2013년 11월 취임해 1년2개월째 장관직을 수행 중인 그가 ‘임기 중 추진’을 말한 건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10월 14일 국정감사에서도 문 장관은 부과체계 개선을 약속했었다. 그는 “기획단 자료가 곧 나오는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당장 내년(2015년) 상반기에는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려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이 “부과체계 개편을 위해 5년간 연구용역에만 4억원을 들였다. 언제 시행될 수 있겠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는 상관없다. 전적으로 문 장관 결정”이라고 했으나, 문 장관이 청와대의 압력에 급히 말을 바꿨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압력설은 오래된 얘기다.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 위원들은 12차례 회의를 하며 복지부가 소극적 태도를 일관해 왔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정권 지지층인 고소득층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인상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기획단이 꾸려지고 첫 7개월은 회의조차 하지 않은 점, 논의 과정에 철저한 ‘입단속’을 주문했던 점, 기획단 최종안 발표를 수차례 미뤄온 점 등을 들었다. 문 장관은 지난 27일 기자들에게 “복지부 혼자선 못 한다. 청와대나 국회를 설득해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장관이 ‘오버’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청와대의 ‘기류’를 감지한 문 장관이 개선안 발표 직전 이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복지부 내부 반발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부과체계 개편 무기한 연기’를 발표하기 전에 관계자들과 회의한 걸로 안다”며 “이런 식으로 뒤집는 건 적절치 않다는 반대에도 장관이 강행했다”고 말했다.
 

◇“부자만 챙기나”…비난 여론 확산=정부는 ‘여론 악화’를 이유로 부과체계 개선을 사실상 무산시켰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이 문제에 대한 온라인 여론은 비난 일색이다. 한 네티즌은 “피눈물이 난다”고 적었고, 다른 네티즌은 “서민들이 들고 일어나 전국적으로 파업선언이라도 했으면 싶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이런 부조리가 대물림되지 말아야 하지 않나”라며 울분을 토했다.
 

직장가입자로 매달 건보료 8만원을 내던 엄모(42)씨는 지난해 여름 회사를 나와 작은 식당을 차린 뒤 ‘건보료 폭탄’을 맞았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빚내서 산 집, 중고로 산 1800㏄ 자동차, 피부양자였던 아내와 두 아이에게까지 보험료가 매겨져 월 21만원씩 내고 있다. 엄씨는 “서민 꼼수 증세라는 담뱃값 인상에는 그렇게 속도를 내더니 부자들 건보료 제대로 걷는 데는 왜 이렇게 신중하냐. 요즘 유행하는 ‘증세, 없는 복지’가 딱 맞는 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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