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김정운 부장판사)는 이 전 회장의 이복형 이 모(56) 씨가 이 전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故) 이임용 회장의 상속재산을 두고 벌어진 1심 소송에서 셋째 아들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승소했다. 태광그룹의 장손이자 이 전 회장의 조카 이모(38) 씨 등 4명이 이 전 회장을 상대로 낸 소송 역시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경우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 자체를 끝내는 것을 가리킨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은 1999년 차명주식에 대한 배타적 점유를 시작해 공동상속인들의 상속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이 사건 소송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제기됐으므로 적법하지 않다"고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민법에 따르면 상속권을 침해받은 사람은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침해를 알게 된 시점에서 3년 또는 침해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 재판부는 두 소송 모두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씨 등은 태광산업 보통주 1541주와 대한화섬 보통주 298주를 돌려주는 것과 동시에 1억 천만 원을 달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김영학 부장판사)도 이임용 회장의 둘째 딸 이재훈(60) 씨가 동생인 이 전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청구 소송을 각하 판결했다. 앞선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상속회복청구권의 행사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다.
이재훈 씨는 지난 2012년 이 전 회장을 상대로 78억 7천여만 원과 태광산업 등 주식 33주를 인도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 씨는 당시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와 이후 공판과정에서 차명주식과 무기명 채권 등 추가 상속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전 회장이 1996년 선대 회장 사망 직후 막대한 재산을 혼자 챙겨 상속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재판부 모두 금전지급을 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각하 판결하며 이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이 전 회장은 2011년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012년 6월 간암 치료를 이유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 전 회장 사건은 대법원 3부의 판단이 남아있는 상태다.
“업무상 배임 혐의 적용될 수 있다”
입수한 진정서에 따르면, 태광산업과 흥국생명·흥국화재·티브로드 등 모든 그룹 계열사들은 강원도 춘천의 골프장 휘슬링락CC로부터 김치를 구매해 임직원들에게 한 해 두 차례씩 전달해 왔다. 배추김치와 총각김치의 가격은 10kg 한 통에 19만5000원. 시중에서 판매되는 김치 10kg이 5만원에서 10만원 선에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인 셈이다. 특히 흥국생명은 앞서 1월 가격 적정성을 검증하지 않고 고가의 김치를 수의계약으로 매입했다는 이유로 금감원으로부터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경영유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휘슬링락CC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김치를 떠넘겨온 것이다.
문제는 휘슬링락CC가 소속된 티시스가 사실상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라는 점이다. 티시스는 이호진 전 회장(51.02%)과 아들 현준씨(44.62%), 부인 신유나씨와 딸 현나씨(각 2.18%) 등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가 계열사에 김치를 판매해 올린 수익 규모는 알 수 없다. 다만 티시스의 전체 내부거래 비율과 액수가 2013년 68.6%(총매출 1175억원-내부거래액 806억원)에서 2014년 76.8%(1962억원-1508억원), 2015년 76.6%(2118억원-1623억원)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확인이 가능했다.
태광그룹 계열 주류회사인 메르뱅도 2008년 설립 직후부터 계열사들에 와인을 판매해 왔다. 이 때문에 그룹 내 판촉·감사용 선물 대부분은 메르뱅 와인으로 교체된 것으로 전해졌다. 별도의 영업조직 없이도 손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지목된다. 뿐만 아니라 메르뱅은 명절 때마다 직원들에게 와인 구매를 독려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직원들이 선결제로 와인을 구매하면, 회사 차원에서 대금을 보전해 주는 식이었다. 태광 측은 “직원들 복지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메르뱅이 신유나씨(51%)와 이현나씨(49%) 회사라는 점에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열사를 통해 하청업체에 메르뱅 와인을 강매한 정황도 나왔다. 태광산업이 울산공장 하청업체들에 보낸 ‘메르뱅 와인 판매 협조’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자세히 담겨 있다. 문건에 따르면, 와인 브로슈어 카탈로그를 담당자가 직접 거래처에 전달, 연락해 사원선물용·외부인사용·자체행사용 등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라는 지침이 나와 있다. 그러면서 거래처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강매한다는 인상을 받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당부와 달리 문건에는 하청업체명과 구체적인 구매대금을 명시해 놓는 등 사실상 강매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이는 내부거래율 변화 추이에도 나타난다. 메르뱅은 2015년 7월 신유나씨와 이현나씨 모녀가 소유해 온 또 다른 주류도매업체 바인하임과 합병했다. 그 이전까지 두 회사는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사격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해 왔다. 실제 합병 전 바인하임과 메르뱅의 내부거래율은 각각 94.2%(15억2000만원-14억3200만원)와 86.2%(7억6600만원-6억61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합병 후인 2015년 내부거래율은 64.9%(23억3500만원-15억1600만원)까지 감소했다. 내부 영업조직이 없는 메르뱅에서 이처럼 외부 매출이 증가한 배경은 하청업체 강매의 결과라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이들 회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일감 몰아주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법률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중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사 20%)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매출의 12% 이상인 경우를 규제 심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계열사 부당지원행위나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 등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며 “경영진들에게도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광 측 관계자는 “만일 문제가 있었다면 이미 당국의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며 “앞서 금감원 감사를 받은 흥국생명도 가장 약한 단계인 ‘경영유의’ 조치를 받는 선에 그쳤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회사 외에도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는 곳이 다수 있어서다. 실내건축업체 에스티임이 대표적이다. 매출 대부분이 그룹 계열사에서 나왔다. 신유나씨(51%)와 이현나씨(49%)가 지분 100%를 가진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3년 85.3%(50억1500만원-42억8100만원) △2014년 81%(56억5000만원-45억7900만원) △2015년 79.4%(24억7800만원-19억6800만원) 등에 달했다.
이 전 회장(59.77%)과 외삼촌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8.04%)이 지분 67.81%를 보유한 서한물산도 그룹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매출을 올려왔다. 이 회사 내부거래율은 △2013년 86.5%(133억원-115억원) △2014년 94%(98억원-92억원) △2015년 84.3%(84억8900만원-71억6000만원) 등이었다. 이 전 회장 보유 지분이 100%인 세광패션은 아예 매출 전체를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이 회사의 연도별 매출액은 △2013년 231억1300만원 △2014년 186억6100만원 △2015년 135억2100만원 등이었다.
김기유 티시스 사장이 서류 뭉치를 들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너가 일감 몰아주기, 이호진 의중 반영됐나
태광 측은 이런 의사결정이 대표이사 선에서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측은 이호진 전 회장의 ‘보석 경영’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전 회장은 1400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그러던 2012년 6월, 건강에 이상이 발견돼 수감 69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보증금 10억원과 이 전 회장의 거주지를 자택과 서울아산병원으로 제한한다는 허가 조건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은 회장 직함을 내려놨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경영에서 손을 뗀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현안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으며 경영을 해 왔다는 것이 태광그룹 안팎의 지배적인 견해다. 실제 시사저널이 입수한 3월29일자 동영상에는 김기유 티시스 사장이 서류 뭉치를 들고 이 전 회장의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전 회장의 서울대 동기이자 최측근인 김 사장은 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태광그룹 종합기획실장과 대한화섬 대표, 동림건설 대표, 태광관광개발 대표 등을 겸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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