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전투에선 승리,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
[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박근혜 정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유자적(悠悠自適) ‘백호야 내 배 다칠라’ 속이 편할까. 하기야 아무 생각도 않는 것이 가장 속이 편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럴 형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마에서 진땀이 날 것이다. 땀도 너무 흘리면 병이 된다.
원래 여론조사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정치판에서는 꽤 신경을 쓴다. 그걸 전재로 지난달 31일 지지율은 박근혜 대통령이 20%대인 29.4%로 떨어졌다. <리얼미터>가 조사한 일간 지지율로는 집권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종전의 최저치는 새누리당의 413 총선 참패 직후인 지난 4월 26일의 29.6%였다. 일반적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0%대 지지율'을 레임덕으로 분석한다. 레임덕이란 말을 집권자는 제일 싫어한다. 박근혜 대통령인들 다를 게 없다. 세월은 가고 지지율은 떨어지고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을 치는 이유는 아는가 모르는가. 대통령이야 워낙 대범해서 ‘까짓 지지율’ 그럴지 모르지만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다. 이럴 때 신발 끈 졸라매고 뛰어도 안 되는데 ‘우병우 구하기’에만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국민은 믿고 있다. 아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심각하다.
정부 안에는 대한민국을 손안에 쥐고 있다는 민정수석 우병우를 비롯한 다양한 인재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인재들은 귀와 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국민의 소리는 영 듣지를 못하는가. 아니면 지금 이 나라를 요순(堯舜)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치가 잘못되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 밑에서 보좌하는 인물들의 잘못이 크다.
총리는 뭐 하는 사람이며 비서실장은 뭐 하는 인물인가. 한숨만 쉬는 것이 비서실장의 할 일이 아니다. 점퍼 벗어 뺑뺑이 돌리며 소리치던 이정현은 뭐 하고 있는가. 국가 안보에 운명이 걸려 있는 것처럼 법석을 떨고 있는 사드는 갈팡질팡 국민만 갈라놓고 있다. 엿장수 가위질인가.
우병우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얼마나 머리 좋은 우병우인가. 좋은 머리에는 판단력도 포함된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생각지 못하는가. 판단이 안 되는가. 방송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라. 왜 그토록 초라하게 보이는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병우의 나이가 이제 49세다. 철들 나이도 됐다.
나라 꼴이 지금 이 지경으로 망가지는 이유가 우병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대통령은 왜 우병우를 그토록 감싸고 있는가. 떠도는 소문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가 없다.
우병우의 비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공정한 처리를 위해서는 그는 민정수석을 내놔야 한다. 대통령이 우병우에게 꽉 잡혀 있다는 해괴한 여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은 우병우의 것이 아니고 국민의 것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두 곳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와의 전투, 그리고 이석수 특별감찰관과의 전투다. 그러나 전투는 전쟁의 일부일 뿐이다. 정치의 영역에 군사 용어를 끌어오는 관행을 마뜩찮게 생각하지만, 전투와 전쟁만큼 정치 영역에 대한 비유로 적합한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바둑 용어가 유독 정치 해설에 많이 쓰이는 것도 바둑이 전쟁을 본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권력 투쟁은 치열하고 살벌하다.
전투의 결과는 깔끔하다. <조선일보> 사주의 신임을 듬뿍 받아온 '공세의 필봉'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초라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패자 앞에 놓인 것은 출국 금지와 검찰 수사다. '암행어사'에 비유될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마패를 빼앗기고 사무실을 탈탈 털렸다. 청와대의 '익명의 관계자'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그리고 <MBC> 보도의 3각 공조로 거물 언론인과 특별감찰관제도가 무력화됐다.
청와대는 이번 전투로 '박근혜=우병우'의 등식을 완성시켰다. 일종의 '커밍아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박 대통령은 내년 대선 기준으로 임기가 1년 반 남은 상황에서 권력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했던 박 대통령은 대통령을 흔드는 일부 세력들, 그것이 자신이 임명한 감찰관이든, 대한민국 '1등 신문'이든 할 것 없이 시퍼런 칼날로 쳐 냈다.
전투가 끝나면 전투 평가를 한다. 전투 평가는 전투 피해 평가, 무기 효과 평가 및 재공격 건의 여부 결정으로 이뤄진다.
피해? 없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도 거의 없다. 우 수석이 변호에 참여했던 효성그룹 조현문 전 부사장 사건에 박수환 씨가 연루돼, '박수환 게이트'에 우 수석이 간접적으로 엮이게 됐고, 검찰이 우 수석 가족의 화성 땅 의혹을 들여다보겠다고 하면서 '황제 수사'에 흠집이 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것은 '눈속임'일 수 있다. 검찰은 공정하지 못하면 공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식 '법치'의 속성이다. 기본적으로 우 수석은 사정 라인의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자리에 있다. '우병우 사단'은 이미 경찰, 검찰, 국정원을 장악했다. 정보전에서 앞선다면, 전투에서는 70% 정도는 이기고 들어갈 수 있다.
무기 효과 평가? 우수하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본인은 청와대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호화 접대' 의혹 제기로 목줄을 잡았고, 검찰은 착실하게 후속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청와대는 정부 지원을 받는 언론사를 이용, 익명의 '제보자'로 나서 이번 싸움을 '부패한 언론 권력' 대 '누명을 쓴 착한 권력'으로 프레임을 짰다. 청와대의 폭로, 혹은 제보는 어떤 고발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심지어 친정권 인사가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방송국도 동원됐다. 전투 초반 선제 공격에 허우적대던 모습의 우 수석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전열을 정비했고, 타겟을 정확히 설정했으며, 강한 화력으로 효과적 타격을 가했다. 우병우는 마치 이스라엘 같았다.
이쯤 되면 두 곳의 전투는 완승에 가깝다. 다음은 재공격 건의 여부다. 현재까지 기세로 보면 청와대는 이쯤에서 적당히 멈출 것 같지 않다. 지금 언론사에는 각종 '지라시'가 쏟아지고 있다. 특정 신문의 사주 아들에 관한 뒷 얘기부터, 모 대학, 모 기업의 모 인사에 대한 특정 신문의 로비 의혹이 돌아다닌다. 특히 기업은 너댓 곳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하나같이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고 그 내용도 개연성을 가장한 '풍문' 수준에 그치는 것 같지만,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송 전 주필 관련 사건을 다룬 '지라시'가 우연찮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허위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뿌려 적의 잠재적 우군을 무력케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 만도 하다. 지라시 10개를 뿌린다고 했을 때, 1개에만 사실을 담아내면, 나머지 9개의 지라시에 대한 대중의 판단력은 교란된다.
물론 이런 '더티 워'(dirty war)에 청와대나 국정원이 관여하고 있다는 상상은 보류해야 한다. 하도 세상이 영화같으니 <찌라시 : 위험한 소문>과 같은 영화도 현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마지막, 청와대의 재공격 여부? 아직은 모른다. 다만 반격을 차단하려는 노력들은 여기 저기에서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익명의 관계자를 통해 직접 송희영 전 주필의 연임 로비 실패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것이 한 예다. 이는 일종의 경고 사격이다. 승전기를 올리고, 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일자 신문에 청와대의 한 참모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주필 겸 편집인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감안하면 '송 전 주필의 행동은 개인적인 일탈일 뿐이고 취재는 아무 의도 없이 정당하게 진행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태도는 아닌 것 같다"고 31일자 조선일보의 '1면 사과문'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전투에서 패배한 세력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다. 이미 패배한 전투에 매달리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청와대에 맞선 세력의 피해는 막심하고(송희영 전 주필 사임), 선제공격에 동원된 무기의 화력은 강하지 않았으니(우병우 처가와 넥슨의 땅 거래 의혹), 재공격은 무의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전장'을 바꾸는 방법이 최선이다. 전투에서 졌지만, 최종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장을 만들고 새판을 짜려 할 것이다. '부패 언론'의 프레임이 있다면 '부패 권력' 프레임도 가능하다. 몇 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조선일보>는 프레임 짜기의 귀재다. 반격은 다른 곳에서 있을 수 있다.
언젠가는 전쟁의 참상을 보게될 지 모른다
'박근혜의 전선'은 크게 두 곳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붕괴를 앞두고 있다는 북한 김정은과의 전선, 그리고 <조선일보>와의 전선이다. "대통령을 흔들면 나라가 불안"하기 때문에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지만 "고난을 벗 삼아" 돌파해 내겠다는 의지로 국민들에게 '내 편에 서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부패한 언론이 죄없는 권력자를 학대하고 있다는 인식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다. 무차별적 갈라치기다. 국민은 따라 줘야 한다. 따르지 않는 국민은 필요 없다.
'정치부 기자를 사회부(미디어) 기자로 만들었다'는 자조나, '종군 기자가 된 것이냐', '정치 기사를 무협지 쓰듯 쓰냐'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보수 진영 내전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참모 우병우 수석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범보수 진영의 두 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현 시점에서 청와대의 승리로 귀결될 것 같지만, 이번 전투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승패 여부는 내년 12월 대선에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내전' 와중에서 특정 전투에 다걸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신경써야 할 국정 운영에는 구멍이 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청문회를 보이콧하고 있고, '신속도가 생명'이라던 추가경정예산 처리는 밀리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국가보훈처장 감싸기, 부실 인사 임명 밀어붙이기, 거리로 야당 의원들 내몰기 등의 정치가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식이면 청와대가 밀고 있는 노동시장 개편, 전기 가스 민영화, 의료 영리화 등에 대한 야당의 협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우군이라는 새누리당의 반응도 냉랭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진태 의원이 3선을 포기한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출처도 불분명한 정보에 의한 폭로전에 어느 누가 동참하고 싶어할까. 새누리당은 송 전 주필에 대한 그 흔한 논평 하나 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언론 권력은 사주가 있지만, 정치 권력은 임기가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나 김무성 전 대표는 우병우 수석 사퇴 입장을 지속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내년 초 힘 있는 차기 대선 후보가 나타나면 그 쪽으로 쏠릴 것이고, 허약한 차기 대선 후보가 나타나면 분열할 것이다.
'사라예보의 총성'은 울려퍼졌고, '집권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청와대 문을 꼭꼭 걸어잠근 박 대통령이 임기 말, 명예회복에 성공한 우 수석을 놓아주려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보통 전쟁은 승자를 만들지 않는다. 특히 현대전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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