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명심해야 할 두 가지..사과와 후계자
▶ 정명훈
서울시향 감독을 둘러싼 논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 축은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서 세금의 사용처와 책임을 투명하게 묻자는 것이고, 또 다른 축은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한 서울시향과 정 감독을 흔들지 말자는 견해다. 이번 논란이 소모적인 상호 비방을 넘어 합리적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여러 쟁점들을 짚어봤다. 음악계 원로들은 부적절한 행위가 드러난 부분에 대해선 정 감독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두 달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박현정 논란'은 어느 틈엔가 '정명훈 논란'으로 바뀌었다.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느니, 자신의 몸값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다느니,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를 바꿔야 한다느니 논란은 일파만파였다. 서울시는 1월20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계약을 1년 연장했다. 23일에는 정 감독에 대한 서울시 감사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초 박현정 전 대표의 성희롱·막말 파문 이후 정 감독을 둘러싼 논란은 되레 증폭되고 있다. 정 감독으로 대표되는 서울시향의 파행적인 운영행태를 바로잡자는 요구도 거세다.
이참에 논란의 앞뒤를 짚어봤다. 우선 서울시 감사 결과와 함께 서울시향 쪽의 입장도 듣고, 정 감독의 태도가 적절했는지도 따져봤다. 논란의 또 다른 축인 몸값 논쟁도 뜯어봤다. 이어 관리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서울시 고위 관계자를 따로 만났다. 이번 논란이 소모적인 상호 비방을 넘어 합리적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생각에서다.
그런 점에서, 클래식음악계 원로들의 쓴소리는 경청할 만하다. 국내 클래식음악계의 원로인 박수길 한양대 명예교수(전 국립오페라단장)와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지휘자협회장)의 고견이다. 원로들은 정 감독이 지난 10년간 이룩한 음악적 성과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평가하되, 그 과실이나 착오에 대해서는 엄중히 따져 생산적인 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그 첫 단추는 정 감독이 드러난 부적절 행위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감독에 대한 비판은 국내 음악계에서는 일종의 금기다. 일반 시민들이 "혈세를 개인 이익을 위해 썼다"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그럴까? 일단 국제 음악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인데다, 애써 쌓은 서울시향의 성과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자'는 입장과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한 '서울시향과 정 감독을 흔들지 말자'는 입장 사이에서 이제 논의의 시야를 한 단계 넓혀야 할 때다.
2009년 '매니저용 항공권' 가족 이용
지난 23일 서울시가 그동안 정명훈 감독에게 가졌던 의혹들에 대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시의회 등이 제기한 시향 공연 일정 변경 의혹 등을 조사한 결과, 일부 부적절한 행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기보다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 오케스트라의 감독으로서 공직 개념이 희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의 공식적인 감사 결과가 나왔지만, 정명훈 감독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측근의 해명 글이 나올 뿐이었다. 공식 답변 없이 뒤편에서 감사 결과를 반박하는 것은 정 감독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감독은 지난 21일 출국해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이에 서울시향 쪽에 감사 결과에 대해 추가설명이 필요하다면 설명하라고 주문했다. 28일과 29일 전자우편을 받았다. 감사 결과와 서울시향 쪽의 입장을 비교해 봤다.
서울시 감사관이 발표한 정 감독에 대한 특별조사 결과를 보면, 정 감독은 지난해 12월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단 공연 지휘 때문에 시향의 통영국제음악제와 '교보 외부 음악회' 등 국내 공연 3건의 일정을 바꿨다. 감사관은 "일정 변경은 서울시향 사무국과 협의해 확정됐으나, 서울시향이 공연하기로 했던 통영국제음악제 주최 쪽은 일정 변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향 쪽은 "정기음악회·우리동네음악회 등에서 공식일정 변경은 없었으며, 후원회원을 위한 무료 음악회 '에스피 콘서트'는 일정 변경 없이 정명훈 감독 대신 부지휘자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무료 콘서트에서 정 감독을 교체해 애초 목적대로 공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맞지만, 표를 사는 관객을 위한 공연 일정에는 전혀 변경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감사관은 또 "정 감독이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사단법인 미라클오브뮤직의 이사장직을 겸직하면서, 이 단체가 개최한 공연 출연료를 이 법인에 기부하고 개인사업자 경비로 공제(손비 처리)받는 등 다소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향 쪽은 "공익활동에 대해서 재단이 승인한 사항"이라고 밝혔지만 "기부 건은 (정 감독 본인이 아니어서) 답변하기 힘들다"고 했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도덕적인 비난을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감사관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정 감독의 매니저에게 연 2회 한장씩 지급되는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정 감독의 가족이 1회 2장 지급받은 것은 계약 위반이므로 서울시가 항공료 1320만원을 반환 청구하라고 통보했다. 이 부분은 정 감독이 감사에서 "매니저에게 항공권을 지급하는 것은 당시 계약조건에 명시됐던 사항으로, 2009년 건은 매니저가 건강이 악화하자 가족이 대신 그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명했다. 서울시향 쪽은 "해당 조항은 2012년 갱신 때 삭제됐다"고 밝혔다. 어쨌든 매니저용 비즈니스석을 가족이 사용한 점은 맞다.
도덕성에 관련된 부분은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음악계 원로들도 정 감독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수길 교수는 "부적절한 행위가 확인된다면 정 감독이 사과 등의 입장을 밝히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용 교수도 "드러난 도덕성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뜻을 함께했다.
"음악적 성과 정당하게 평가하되
과실이나 착오는 엄중히 따져
생산적 논의의 시발점 삼아야"
음악계 원로들 쓴소리 경청할 만
그 첫 단추는 정 감독의 사과
정 감독 연봉 고액으로 봐야 할지
유럽과 미국 기준에 따라 엇갈려
'라디오 프랑스' 상임지휘자도 겸임
서울시는 그곳 연봉은 전혀 몰라
'적정 몸값' 산정 잣대조차 없는 셈
한 해 15억 넘는 연봉 과연 적정한가
정명훈 감독에 대한 논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연봉이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지난해 말 정 감독이 2006년부터 9년간 받은 돈이 140억원이라고 밝히면서 고액 연봉 논란이 일었다. 그 말대로라면 한해 15억도 넘는 연봉을 받은 셈이다. 이런 연봉은 국제적 관례에 비춰볼 때 정 감독의 '몸값'에 걸맞은 것일까?
연봉의 적정성을 따져보기 전에 '논란의 단초'가 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치적을 위해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정 감독을 영입해온 게 이런 논란의 뿌리이다. 서울시 쪽에서도 대체로 그렇다고 판단하는 부분이다.
실제 지난해 정 감독은 얼마나 받았을까? 정 감독은 기본급 연간 2억7000만원에 지휘 횟수에 따른 지휘료가 추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는 22회(무료 5회)를 지휘해, 약 11억원을 받았다. 해마다 액수가 바뀌기 때문에 엄밀하게 연봉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서울시향은 "2012년 계약 때부터 여러 가지 사항이 보완돼 추가사항은 항공료 퍼스트 클래스 2매 이외에는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외 최고 수준의 지휘자들은 얼마를 받을까? 미국 오케스트라들이 국세청(IRS)에 신고한 자료를 보면, 2011~2012년 시즌에 가장 고액의 연봉을 받은 지휘자는 시카고 심포니의 리카르도 무티로 217만달러(약 24억원), 뒤를 이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203만달러(22억5000만원),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193만달러(21억4000만원)를 받았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샤를 뒤투아가 164만달러(18억원), 엘에이(LA)필하모닉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143만달러(15억7000만원) 등을 기록했다.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그리고 정 감독을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로 본다면, 정 감독이 서울시로부터 받는 급여가 '고액'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월호에 공개된 지휘자 연봉 자료는 내용이 좀 다르다. 프랑스의 일간신문 <르 피가로>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대도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급여수준' 자료(paiecheck.com/2012/10/19/salaire-dun-chef-dorchestre-philharmonique/)다. 이 자료를 보면, 경력 초반기 지휘자의 평균 연봉(연 15회 이상 공연 기준)은 3억4800만원(25만8000유로), 국제적 지명도를 획득한 지휘자의 평균 연봉은 5억8700만원(43만5000유로), 확고한 국제적 스타 지휘자의 평균 연봉은 9억2300만원(68만4000유로)이다.
이 자료의 유럽 기준으로 보면, 확고한 국제적 스타 지휘자라도 평균 연봉 10억원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이 경우 정 감독이 서울시로부터 받는 급여는 매우 많은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비교하기는 적절치 않다. 미국 국세청 자료에서는 급여를 포함한 모든 수입이 신고된 반면, 유럽 자료에선 순수 급여만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정 감독이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로만 활동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정 감독은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로도 활동 중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자료에 대해 일반적인 평가는"지휘자의 급여는 어떤 계약조건(옵션)이 포함됐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점과 "예술가를 등급으로 매기는 것부터 적절치 않지만, 우선 커리어나 국제적 위치를 봤을 때 정명훈이 좋은 등급의 지휘자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서울시가 정 감독이 '라디오 프랑스'에서 받는 연봉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정 감독과 계약을 새로 맺는 서울시로서는 급여수준인 '적정 몸값'을 산정하는 잣대조차 갖추지 못한 셈이다.
'포스트 정명훈'을 키워라
서울시향의 약한 고리 중 하나는 '스타 정명훈' 1인 체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트 정명훈'을 과연 한번이라도 고민해 봤을까? 이와 관련해 서울시의 입장은 뭘까? 시민들은 서울시가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견제장치 없이 정 감독 체제를 계속 밀고 가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정 감독 관련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한데다 계약기간도 1년으로 못박아 "할 만큼 했다"며 한 발짝 물러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29일 이창학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본부장을 따로 만나 이 부분부터 물었다. 이 본부장은 서울시향의 당연직 이사로 현재 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서울시와 시향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면, 정 감독 정도의 사람을 정 감독이 받는 수준에서 데려오기는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극동으로 오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호텔비는 기본이고, 유럽을 수시로 오가고, 부부가 같이 오니까 가족까지 다 (대우를) 해줘야 할 거다." 이 본부장은 해외 거장을 모셔오기 힘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 국내에서는? "국내에서는 여러 훌륭한 분이 계시지만, 현재 시향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은, 조심스럽지만, 없다."
결국 지금으로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1년 뒤면 정 감독과의 재계약이 끝나는데 '포스트 정명훈'의 대책이 없는 셈이다. 이 본부장은 "1년 안에 재계약을 할지, 재계약을 하면 어떤 조건으로 해야 할지를 정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계약서 보완 등을 거칠 예정이다. 이 본부장은 새로운 계약조건을 정할 '선진적 지휘시스템'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공연이나 클래식 전문가 서너분, 계약전문 변호사 등으로 6~7명 티에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향 개혁 요구의 화급함에 견줘보면, 선진적 지휘 시스템 도입은 아직 먼 얘기로 들린다.
음악계에서는 정 감독 이후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정 감독에게 '포스트 정명훈'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한다. 정치용 교수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일본의 젊은 지휘자들을 외국에 소개하고 키워줬다. 정 감독도 한국에서 대접을 받은 만큼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포스트 정명훈'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정 감독이 평생 할 것이 아니라면, 빠지고 난 다음을 대비해야 하는데, 정 감독이 한솥밥 먹으면서 곁에 두고 지휘자를 키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박수길 교수는 "정 감독이 와서 연주력이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정 감독이 음악가와 음악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깊이 봉사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정명훈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참에 '박원순 때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음악계 문제를 정치 공방으로 몰고간 것이다. 급기야 '박원순, '대선용 한 건' 위해 평양 공연할 정명훈 감쌌나'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경평축구와 남북교류는 역대 시장들의 신년사 단골메뉴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상호 비방으로 치닫는 정명훈 논란을 풀기 위해 시민사회와 음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에, 또다른 논쟁의 군불을 때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쏟아진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지금 세금의 사용처와 책임을 묻는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준 높은 예술을 향유하고픈 문화적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