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배가 아파." "인마, 눈이라도 피하고 있어." "응. 잘 가, 형."
서울 중구 방산시장 거리에 눈이 소복이 쌓이던 지난 18일 밤.
시장 상인 장진기(47·가명)씨가 평소 더 어린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조경식(57·가명)씨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경식씨는 다음날 오전 3시45분께 장씨의 가게 옆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경식씨의 사인은 저체온사. 몹시 추웠던 날, 칼바람을 피할 수 없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밤을 버티다 세상을 저버린 듯했다.
1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식씨는 우리나라에서 대만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대만 국적을 가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족의 품에서 지내지 못하고 혼자가 됐다. 주변인들에게는 가족 얘기를 잘 꺼내지 않았고 자신을 고아라고 말하고 다녔다.
장씨가 경식씨를 알게 된 건 28년 전이다. 장씨가 청계천 주변에서 종이와 비닐을 취급하는 회사에 다닐 때였다.
당시 경식씨는 인사동 쪽방촌에 살며 파지를 주워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종이 1㎏을 모아봤자 고작 30∼40원을 손에 쥘 뿐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10여년 전 경식씨는 방산시장까지 나와 파지를 주우며 시장 상인들과 안면을 텄다. 경식씨는 친분이 쌓인 상인들이 딱하게 여겨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다.
특히 시장의 한 식료품가게 사장은 경식씨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챙겨줬다. 경식씨 역시 형님처럼 따르며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2년 전 퇴직하고 시장에 가게를 차린 장씨도 경식씨를 도왔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레 경식씨의 생활도 힘겨워졌다.
결국 방값이 밀려 지난해 10월 쪽방촌에서 쫓겨난 경식씨는 이불을 싸들고 자신을 늘 따뜻하게 맞아줬던 식료품가게 앞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하지만 식료품가게 사장 내외는 이미 장사를 접고 시장을 떠난 뒤였다.
갑작스레 집을 잃은데다 의지했던 사장 내외와 헤어지게 된 경식씨는 술이 급격히 늘었다. 장씨를 비롯한 시장 상인들이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보니 경식씨는 어느새 시장의 '골칫거리'가 돼 있었다. 경식씨를 잘 모르던 상인들은 더럽고, 냄새 나고, 늘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그를 경계했다.
장씨는 경식씨를 노숙인 시설에 보내 보려고도 했지만 외국인이라서 받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물론 경식씨 스스로 시설에 들어가길 꺼리기도 했다.
결국 길에서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은 경식씨의 시신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안치됐다.
주한 대만대사관이 경식씨의 유족을 찾는 중이지만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한다. 결국 유족을 못 찾으면 구청이 간소하게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경식씨가 세상에 남긴 것은 언제부터 썼는지 가늠이 안 될 만큼 누레진 이불과 꼬깃꼬깃 접힌 지폐 2만3천원, 그리고 빈 소주병뿐이다.
"안타까워요. 무슨 기구한 운명인지… 그날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그게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경식씨를 허무하게 떠나보낸 장씨가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었다.